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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홀로서기

Part 2, 엄마의 시간, 엄마라는 묵묵한 산

by 김리사


예순 셋에 세상을 떠나신 아빠. 백세 시대를 사는 요즘 아빠의 짧은 생이 가슴 아프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아빠를 지켰다. 아빠의 사십 대 초반에 위암 투병을, 그리고 몇 해 후에 위암 재발을, 그리고 엄마 자신의 유방암 투병, 그리고 이제 아빠는 소세포 폐암을 다 겪어내셨다. 아빠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와 재해 사고들이 일 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서 엄마 마음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엄마도 큰 교통사고를 겪으시면서 8개월간 다리뼈 골절로 병원 생활을 하셨고 병중 일기를 책으로 내면 아마 수십 권은 나올 것이다. 이런 엄마의 삶 속에서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늘 긍정적인 말을 담던 엄마의 마음 습관 덕분에 엄마의 오늘이 있다.



엄마는 모든 사고 앞에서 더 크게 다치지 않아 감사하다고, 감사를 말씀하셨다. 마음이 어린 나로서는 그런 엄마가 신기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사를 하다니. 이런 상황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수없이 엄마의 위기 극복 과정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얼굴을 한 가장 센 사람을 찾으라면 여기 있다고 얼른 제보하고 싶다. 엄마는 누가 뭐래도 세상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다. 늘 '이만하길 다행이다. 좋은 날이 온다' 다 잘 될 것이라며'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아빠를 떠나보내고 홀로서기를 한다. 엄마는 40년이 넘게 자식을 낳고 동고동락하던 아빠를 보내고서 한동안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우리 자식들에게 말로 다 하지 못한 느낌들을 나는 가끔 느꼈다. 지나가는 한 마디에, 붉어진 눈시울에, 엄마는 아마도 아빠를 그리워하기도 하셨던 것 같다. 아무리 엄마를 긴 시간 힘들게 한 남편이라도, 사랑과 증오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부의 인연은 특별하다. 긴 시간 세 자녀를 같이 키워내는 부모로서 역할을 하면서 느꼈을 수많은 뿌듯함과 사랑, 기쁨의 시간이 고스란히 그와 녹아들어 가 있다. 술을 마시고 폭언을 하고 집을 망가트리는 엉망인 남편도 때로는 한없이 자상하고 사랑하고 사랑을 주고받은 그들만의 언어와 시간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부부 사이란 남들이 섣부르게 평가하고 재단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이다.



나는 이런 아빠와 애증관계와 미운 정 고운 정의 시간을 엄마가 그리워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엄마의 부부의 세계가 깨어지고 이제 엄마 혼자 남은 시간이 찾아왔다. 엄마는 그야말로 홀로서기를 사십 년 만에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이 시기를 이렇게 이름 지었다. '엄마의 삶에서 가장 엄마 다운 시간' 가장 엄마가 '엄마로서 평온하게 살아가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그동안은 늘 아빠를 위해 헌신을 하는 엄마였다. 아빠를 책임지고 돌보러 이 세상에 온 사람인 것 마냥 엄마는 아빠를 돌보며 살았다. 그렇게 엄마는 아빠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엄마는 엄마의 모든 남은 힘을 다해 아빠를 보내드렸다. 병상의 아빠는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아빠의 시간을 속죄도 하고 감사도 표현하면서 그렇게 고통 속에 머무르다 가셨다.



엄마의 홀로서기 시간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놀란다. 엄마는 정말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마음으로 당당하고 멋있게 하루하루를 사신다. 배움을 놓지 않으시고 늘 유튜브로, 다른 채널들로 강의를 듣고, 배움의 즐거움을 가장 큰 기쁨으로 두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늘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그런 지적 욕구는 타고나는 것 같다. 엄마는 동네의 구멍가게를 하면서도 시를 쓰시고, 자신의 지적 목마름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또 다른 엄마를 발견했다. 어쩌면, 우리는 깊이 친하다고 여긴 한 사람을 제대로 다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나의 엄마일지라도 말이다.


엄마는 행복하게 성장중이다. 일흔에도 성장이 멈추지 않는 엄마의 삶을 존경한다. 배움의 목마름은 이렇게 엄마가 난생처음 맞는 남편 없는 시간의 허기를 대신 채워주고 있었다. 엄마의 여러 편의 동시와 같은 시들이 우리를 위로하고 밝은 마음을 가져다준다.


그중 좋아하는 시를 한 편 소개한다.



<친구>


송옥례


친구야, 우리 못 만나지 50년이 넘었구나.

삶이 우리를 멀게 만들었을까..

꼭 한번 만나서 서로 마주 마주 보며

손잡고 폴짝폴짝 뛰며 환하게

웃어 보자꾸나.

헤어질 때도 꼭 안고 토닥토닥

잘 살아줘서 고마워

잘 지내줘서 고마워

우리 남은 인생 자주 만나며

아름다운 인생 가꾸어 보지 않으렴?




친구와 못 만난 지 5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엄마의 그 시절 그리움을 만나는 것 같아 마음이 서걱 서석 하는 것 같다.엄마가 우리 가족들과 아빠를 위해서 삶에 헌신하며 사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일흔에도 소녀같은 감성으로 시를 쓰는 엄마가 자랑스럽다. 엄마의 영혼은 늘 그렇게 맑다. 엄마의 시 처럼 말이다. 그런 엄마가 이제라도 옛 추억과 그리움을 다 채워가며 즐겁게 살아가시면 좋겠다. 일흔이라는 나이는 청춘이다. 요즘엔 말이다. 엄마 다리가 성하실 때 더 많이 여행을 다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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