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정윤은 술을 마시고 몸이 힘들면 입버릇처럼 말한다. "죽어야 된다고, " "사라져야 된다고."
정윤의 "사라지고 싶다"는 "몸이 힘들다"는 이야기였고, "삶이 고되다"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윤은 스물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으며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제대로 공부를 한 것이 없어서 정윤이 돈을 벌기 위해 한 일은 미장이 되어서 집을 짓는 일이었다. 소위 말하는 '막일'을 업으로 하면서 일당을 받고 가족을 부양했다. 아내는 정윤의 어머니가 물려준 동네에서 조그만 부식가게를 물려받아서 하였다. 장사를 하는 삶을 꿈꿔 본 적이 없었을 정윤의 아내는 그렇게 부식가게 아줌마가 되었다.
삶이 팍팍하니 밤마다 정윤을 위로한 것은 아내가 맛있게 만들어 준 음식들이다. 손맛이 좋은 정윤의 아내의 음식은 고된 막일 하루살이 중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 음식들을 안주삼아 소주 한잔을 들이켤 때면 정윤의 뻥뚤린 가슴의 헛헛함이 다 채워지는 것만 같다. 정윤의 내면 아이는 그제야 허기진 사랑을 채운다. 술을 마시고 술버릇이 좋지 않은 정윤은 자신의 나쁜 술버릇을 알면서도 술을 끊을 수가 없다. 술을 마시면 온 세상이 평안하다. 마음이 느긋해지고 슬픈 내면 아이의 폭주도 멈추는 것 같다. 그러나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날은 괜찮은데 일을 한 후 임금이 체불이라도 되어서 돈을 떼이고 온 날은 내면 아이의 슬픔이 술과 함께 터져 나온다.
그렇게 정윤은 술을 먹기 전 정윤과 취한 후의 정윤으로 이중 자아를 안고서, 늑대의 시간과 양의 시간을 오갔다. 그렇게 정윤은 마흔셋의 나이에 위암 3기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았다. 아내의 지극한 보살핌의 따뜻함과 한참 공부해야 할 나이인 세명이 자식들의 똘망한 눈망울을 보고서 힘을 내어본다. 정윤은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과 마주한다. 늘 힘이 들면 '죽어 버려야지, 사라져 버려야지, ' 하던 그의 말이 다시 되돌아와서 후회를 남긴다. 정윤은 죽어버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그저 아프지 않다는 것, 통증이 없다는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 아내의 맛있는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정윤이 태어나 처음으로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폭주가 없이 제대로 살아본 시기가 그 이후였다. 큰 수술 후 그는 술을 끊었으며, 2~3년 동안 정말 양처럼 살았다. 아내의 부식가게 일을 전심으로 돕고, 수시로 산으로 채집을 다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한글도 잘 모르던 그가 운전면허증에 도전해서 합격을 했다. 글자를 잘 모르는 정윤에게 운전먼허 필기시험은 고시 공부와도 같았고 3번의 낙방 끝에 그는 필기시험 합격이라는 성공을 거뒀다. 그의 아내도 정윤이 서울대 입학이라도 한 듯 뛸 듯이 기뻐한 그날을 정윤은 예순세해동안의 그의 삶에서 잊지 못할 날도 기억한다. 그저 정윤이 원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었고 그의 성취에 온 마음으로 기뻐해 주는 아내의 축하는 정윤을 살게 했다.
그러나 암수술 후 서서히 몸이 회복되며 다시 술과 함께 악한 늑대가 되살아 났다. 다시 폭군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정윤은 생각한다. 그가 하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미장의 일인데 미장일을 하면서 몸이 많이 망가지고, 수시로 불합리한 거지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돈을 떼이고, 사람에 데이고, 제대로 된 인격적인 대접을 받지 못해 마음이 상한다. 술이 친구가 되고 위로가 되고 정윤이 술을 먹고, 술이 정윤을 먹는 수술 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 쓸쓸한 정윤이 거기 있었다. 그 사이 아내까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모든 힘든 일들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만 같고, 정윤은 아내의 암 발병이 그의 잘못인 것만 같아서 고통스럽다. 그에게 다시 슬며시 '사라지고 싶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윤은 세상 밖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버지도 그렇게 사라지고 싶었던 것일까? 어린 나이의 자신을 두고 세상을 등진 아버지를 그토록 그리워하고 원망했는데, 나도 똑같은 어른이 되어 자식들과 아내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려고 했구나.. 그제야 정윤은 아버지를 용서한다. 그리고 살아야겠다고, 더 악착같이 살아내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이다. 아픈 아내를 보살피고, 자신을 추스른다. 청소년이 된 자식들 셋이 정윤보다 더 크게 자라서 이제 정윤을 내려다보게 되는 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내가 유방암 수술 후 회복을 하면서 안도감을 가지는 시간을 지나, 다시 그의 위암이 재발하는 천청벽력 같은 일을 겪었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또 일어났다. 아직, 그가 사라질 때가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사라지고 싶음'은, 결국 '사람답게 잘 살고 싶음'이었음을 이해했다. 차가운 수술 대위에서 크고 작은 수술을 수없이 겪으면서 그는 누구보다 살고 싶었던 것이다. 사라지고 싶다고 하던 정윤의 새빨간 거짓말은 그렇게 모두에게 들통이 났다. 단지 신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너무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저를 좀 아픔으로부터 구해주세요.' '몸이 너무 아프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요..'
빛으로 돌아간 정윤이 그 시간을 회상하며, 스스로도 참 대견하고 훌륭했다고 마음으로 껴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 동안 정윤이 먹은 마음들이 결국 우리가 삶을 지켜내는 힘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 자신의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자기 포용의 순간이다.
가장 약하고 여린 지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누구나 자신만의 꽃을 힘겹게 피워내는 순간을 모두가 환호하며 감탄하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 모든 꽃들이 그렇게 아름답다. 정윤이라는 꽃도 그렇게 아름답게 피었다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