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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Nov 30. 2023

정병산은 처음이라/이번 생은 처음이라

리사의 love yourself

산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왜 산을 좋아하나요?



창원 국제 사격장 입구 회차로 푯말에서 우회전하면

정병산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주차를 하고 천천히 길을 따라가본다.

친구와 함께 가을 산행을 하며 그날의 추억을 남긴다




산을 좋아하게 된 나, 원래는 바다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답답하면 바다를 찾는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바다를 보며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 잦았다 그런데 요즘은 산이 참 좋다. 거의 매일 낮 무렵에는 산에 잠시 가서 30~40분가량 오르막 코스를 오르며 심장을 데운다. 내 심장소리에 내가 놀란다. 내 안에 누군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 좋다


이따금 숨이 차게 오르고 걸으면 살아 있는 느낌이다. 달리기를 하려니 관절도 좋지 않고 뭔가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산행은 할만했다. 그저 내 속도대로 오르면 되니까 누군가의 압박도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산에서 받는 초록 자연과 발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참 예쁘다. 그래서 산을 찾는가 보다. 늘 그곳에 가면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가 그냥 핀 것이 없이 그냥 자라는 것이 없이 웅장한 생명력으로 나를 맞는다



오름코스를 선택하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꽃과 풀들이 잘 들어온다. 지면과 내 눈 사이의 각도가 적어지면서 사물들이 더 가까운 느낌이 좋다.



 "아 너 거기 있었구나, 반갑다."

"그런 곳에서 꽃 피우느라 고생했겠다."


혼잣말을 한다. 무언의 말들을 마음속으로도 속삭인다. 나무와 교감하는 시간, 하늘을 응시하는 시간엔 내 몸은 없다. 그저 내 의식이 자연과 하나가 될 뿐이다. 이런 느낌이 좋아서 산을 탄다. 이번에 친구가 안내해서 간 정병산은 처음 가 본 산이다.



비음산과 대암산에 비유하자면, 핵 매운맛이다. 거의 중반쯤에서 계속 천국의 계단이 펼쳐진다. 이쯤 되니 친구가 미워진다.


"네가 나를 죽이려고 이런 곳에 데려 왔구나"




친구가 웃는다. 무슨 의미인지 안다. 힘들어도 다 오르고 정상에서 보면 참 뿌듯할 것이었다. 물론이다. 산행은 중턱에서 이렇게 숨이 막히게 걷다가 그 고비를 넘기고 숨이 차분해지고 정상의 미친 풍경이 나에게 안기는 순간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정병산은 아주 오랜만에 내게 큰 성취감을 주었다. 한동안 산행이 좀 할만했었는데 정병산은 아니었다. 계속 말했다.



"나 이 산은 다시는 안 올 거야.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그런데 재밌게도, 나는 중턱에서 헐떡거리며 하던 이 말을 다시 집어넣었다. 아니, 나는 다시 또 갈 것 같다. 그 느낌을 기억하니까. 정말 끝이 없게 느껴지던 그 천국의 계단들은 끝이 있었고, 삶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인생도 결국 마지막 계단 앞에 닿을 것을 안다. 등산은 내게 삶을 계속해서 비추게 한다.


어느 순간 문득 내 삶이 정병산 오르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병산은 처음이라, "

아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참 많이 헤매고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하였구나..


처음이라 낯설고, 오르막에 정신을 못 차리며 어느 순간 왜 이런 힘든 곳에 와 있는가  한탄한다. 한탄하다가 그제야 가쁘던 호흡을 멈추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저 아름답고 찬란하다. 숨이 차면 잠시 멈추면 되고 힘이 나면 또 오르면 된다. 오르다 보면 또 올라가는 힘으로 더 오르고, 친구가 잠시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한다.



내 발로, 내 힘으로 오르는 것이 핵심.



산의 길을 안내해 줄 수는 있어서 결국 올라야 하는 주체는 바로 나다. 정상에 도착하니 친구가 직접 싼 김밥을 건넨다. 정말 꿀맛 같다. 김밥을 먹으며 발아래의 그 모든 풍경들을 껴안는다. 사람 살이가 이렇게 장난감 세상 속 일 같다. 멀리서 보면 참 조그맣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조그마한 점들에 지나지 않는 우리들이 마치 거대한 우주에 하나뿐인 것처럼 그곳에는 온갖 희로애락이 꿈틀대며 역동하는 곳


지구별 세상



정병산 정상에서 나는 마음을 먹었다.



더 자주, 더 많이 정상을 만나자고.



더 자주 더 많이 삶 속으로 뛰어들자고



어쩌면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나를 여기저기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친구의 김밥과 같은 선물, 그리고 성취감. 그 모든 삶 속의 선물들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하고, 또한 내가 나눌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산은 사람을 참 작고 겸손하게 만든다. 사람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잠시 산이 사람을 품어주는 기분을 느끼고 오면서 우리도 결국 자연 그 자체일 수 있겠다는 안도감으로 포근하였다.



정병산, 또 찾을게..

잠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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