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향의 절친한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오랜 친구.. 그 시절 나의 부모님을 알고 우리 고향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알 법한 그런 친구 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오고 철없이 나뭇잎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깔깔대던 십 대 시절을 함께 했다. 첫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며, 취업을 하기까지 방황의 이십 대를 거쳐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우리가 만난 그 시절, 그 나이가 된 아이들의 엄마가 된 우리가 되었다. 삶에 쫓겨 살며 정신이 없을 때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날아든 믿기지 않는 소식이 나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런 그 친구가 대장암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의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모든 충격적인 소식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 가끔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병으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 앞에 놓이는 것인지.. 누구라도 예외 없는 생로병사 앞에서, 예측불허의 삶 앞에서 다시 숙연해졌다.
누구에게나 어른이 되는 것,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고행의 길이다. 부모가 되는 것은 더더욱 우리 자신의 한계를 만나게 한다. 그렇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떠밀리듯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친구의 아픈 소식은 나를 털썩, 주저앉게 했다. 두려움에 떠는 내면 아이를 다시 만났다. 이미 내 삶에는 아빠와 엄마의 암 소식과 투병 과정이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관통해서 슬픈 심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는 늘 헤어지는 두려움에 떠는 내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이별을 떠올리며 먼저 두렵고 슬픈 마음이 든다. 아빠를 잃을까 두려웠고 엄마 없이 사는 삶의 끔찍함을 그리며, 오지도 않은 미래의 상실감을 먼저 느낀 아이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친구의 비통한 소식으로 삶을 다시 돌아보았다. 우리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릴 수도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친구가 수술을 잘 받고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그 힘든 항암을 거쳐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살아가게 될지 나의 부모님의 삶을 비춰보면서 먼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친구도 우리 부모님처럼 완치되어 잘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긍정 확언을 했다. 두려울 때 내가 하는 그 확언들이 이번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늘 그렇게 힘든 시간은 지나간다..
"결국 다 지나간다. 힘든 시간도 좋은 시간도 결국 다 지나간다. 결국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 뜻대로 될 것이다. "
친구는 첫 수술을 하고 2년 정도 건강을 회복한 후 안타깝게도 다시 재발해서 한 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힘든 항암치료를 마치고 마음의 여유를 찾은 친구는 현재 다시 건강 관리와 회복에 애쓰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오랜 친구들과 다시 함께 여행을 하고 나들이를 떠났다. 그렇게 어린 시절 우리가 되어 웃으며 놀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그냥 예전의 우리가 되어 마냥 즐거웠다. 친구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아야겠다고.' 현재가 주는 소중함을 더 치열하고 더 적극적으로 누리며 살아야겠다고 말이이다. 이제라도 우리 '새로운 아침이 오는 신비와 감사를 잃지 않기를 어느 때 보다 깊이 바란다.
사소함에 감동해야 한다. 어쩌면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긴 시간 동안 과거에 사로잡혀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산다.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오늘의 기쁨을 계속해서 미래를 위해 유보하고 있다. 현재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미래에 편안하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허상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현재를 낭비하고 있다. 나의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렇게 유한한 삶을 손에 쥐고, 언제 멈출지 모르는 저마다의 생의 시간을 살아간다.
친구가 준 삶의 깨달음이 나를 다른 자아로 살아가게 한다. 친구는 누구보다 열심히 '오늘'을 살았고, '현재'만이 그녀에게 존재할 뿐이었다. 그 어린 시절, 나뭇잎만 보아도 깔깔대며 웃던 우리들은, 어느새 모든 것을 다 짊어진 듯, 무겁게 살았고 있었다. 그런 삶은 우리 자신에게도, 가족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마음이었다.
아이처럼 가볍고, 때론 무모하고, 때론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이제야 말을 해주었다. 가정 형편에 그 시절 상황에 나 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며 나를 죽이고 살아왔던 시간을 거쳐, 이제 진정한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마흔이 되었다. 나답게 살아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낯설기만 한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 삶의 풍파를 헤쳐나가며 나다워진다.
오늘 하루의 가치는 얼마인가?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떤 설렘으로 하루가 시작되는가? 나는 친구를 통해 배운 삶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되뇐다. 감사를 잃지 않으려고 눈을 뜬 나에게 속삭인다. "오늘도 눈을 뜨고 하루가 시작됨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오늘도 즐겁게 잘 살아보자."
눈 뜬 아침, 화장실에서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어준다. 하이파이브를 해본다. 내가 나에게 따뜻해지기로 한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가치를 더 많이 깨닫게 해 준 친구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친구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건강하다. 나라면 그렇게 잘해 나갈 수 있었을까? 친구의 해내고자 하는 모습 속에서 그 시절 우리 엄마를 떠올린다.
우리 엄마도 암을 극복하고 지금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시고 있다. 내 사랑하는 친구도 분명 잘 해낼 것이다. 가장 먼저는 가족들의 얼굴이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시선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닌, 그녀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꿈들을 발견하고 한껏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 사소한 욕구라도, 가득가득 채워도 괜찮으니 마음껏 정말, 나답게 한번 살아 보자.어쩌면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그말들이 가득 쏟아지는 날이다.
가족들도 엄마가 스스로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아갈 때 마음 가볍게 또 각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우리 엄마가 그렇게 살아가시니 딸로서 세상 감사하고 편안할 수 없다. 엄마가 행복해지고 편안해져야, 자식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옳은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