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아마도 아빠의 암투병으로 삶과 죽음에 좀 일찍 눈을 뜨게 된 것 같다. 아빠가 아프시니 생각이 마지막엔 아빠의 죽음으로 달려간다.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지? 어린 나는 늘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다가 또 아빠의 술이 도를 지나쳐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바꿀 때면 생각이 확 바뀐다. 한 사람의 죽음이 고통스러운 순간의 종말이라면, "하느님, 아빠 좀 데려가세요. 우리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어린 나는 이중 자아를 가진 채, 죽음과 친한 아이가 되어 살았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빠의 인생 시계는 시작되었다 멈췄고 아빠라는 책이 펼쳐졌다가 덮였다. 삶이 무엇인지 더 깊이 파고들게 된다. 종국에는 죽음으로 귀결될 인간의 삶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물음표를 안고 오랫동안 방황했다.
류시화 작가님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책을 보면서 인도인들의 삶의 모습과 세계관이 인상 깊었다. 우리의 삶이 이 지구별에 여행을 온 것이라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었다. 아빠의 고된 삶과 죽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우리는 누구나 지구별에 잠시 왔다가 여행하듯 살며 배우며 사랑하다가, 각자의 인생 시계에 맞게 떠나간다. 온 곳으로 말이다. 그것이 삶의 전부다. 이렇게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니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험들이 축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고통스러운 삶의 프레임에서 인생은 즐기고 누려야 할 축제라는 프레임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본 수많은 현인들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재를 생생하게 즐기며 살라는 것. 강렬하게 현존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삶의 태도라는 것'말이다.
나의 세계관이 바뀌어 가면서, 고통스럽기만 하던 죽음에 대한 관념이 편안해진다. 우리의 존재를 물방울과 바다에 비유한 법상 스님의 말씀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마음공부에 스승이신 에카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도 나를 단단하게 세워 준 잊지 못할 분이고 작품들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의 물방울이다. 하나의 물방울로 존재하며 삶이라는 현실을 살아간다. 사건을 겪고 파도 속에서 춤을 춘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한다. 온갖 경험들을 하며 물방울은 착각을 한다. 나는 홀로 떨어진 외로운 존재라고 말이다. 하지만 한 방울의 물방울 속에는 바다가 깃들어 있다. 바다에서 온 물방울은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으며 언제고 바다와 함께 바다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바라본 죽음은, 물방울이 그가 필요한 경험을 마치고 다시 바다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정신과 영혼은 바다의 품에서 빛과 같이 고요하게 머무는 곳이 있다고 믿는다. 아빠도 지금 그곳에 가 계시다고 믿으니 고통이 사라지는 것 같다. 아픈 것이 싫어서 부정하던 감정, 슬픔, 나는 아빠 잃은 슬픈 마음을 비로소 껴안았다. 그리고 떨어져서 바라보았다. 함께 하는 행복만큼이나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느끼는 것 또한 삶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기쁨 뒤에는 슬픔이 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했고, 탄생과 죽음이 함께 하는 것과 같이 모든 감정들은 쌍을 이루며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을 안다고 해서 아프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고스란히아프고 시리다. 아프면서 느꼈다.그 아픔마저도 얼마나 아름다운 감정들인지 말이다.
슬픔은 기쁨의 에너지를 가지고 와서 만들어진다. 기쁨은 반대로 슬픔에서 에너지를 빌려와 만들어진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수용되면 제로가 된다. 결국, 세상 모든 것이 양과 음의 조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텅 빈 조화로움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느꼈다.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으며, 오고 가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지혜를 배운다. 아픈 순간에도 존재함에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우리 존재다. 사랑으로 채워지면 사랑의 반대인 두려움은 그 자리를 잃는다. 혼자 인 줄로만 알았던 물방울의 슬픔으로 긴 시간 살아온 아빠 '정윤'은 이제 바다의 품에서 안녕을 누리고 계실 것을 믿는다. 두려움으로 떨며 살았던 아빠는 결국 자신이 곧 사랑 그 자체였음을, 바다였음을 알고서 거대한 안도감으로 평온했을 것이다.
아빠 물방울이 먼저 가서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고, 삶을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가라고. 결국 우리 모두는 바다이다. 모두 바다의 품에서 다시 만날 것이니 슬퍼하지 말고 자신만의 물방울의 여정을 가볍게 떠나라고 말이다. 모든 마음은 사랑 속에서 왔으니 부정적이라고 내치지 말고 함께 느껴주면서, 그렇게 삶을 채워가면 된다. 우울과 불안 조차도 사랑 속에서 온 마음의 조각이다. 그 모든 조각들을 소중하게 껴안을 때 당신만의 걸작이 완성된다. 나는 아빠를 통해서 이렇게 마음공부를 하고 나의 모나고 상처 투성이었던 마음 조각들을 만나 온전한 하나가 되어 간다. 보기 싫다고 내쳤던 그 모든 조각들이 사실 물방울로 홀로 두려움에 떨던 아이들이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