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안은 채 내면아이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내 안에 살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아이와 소통을 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위로는 바로 '있는 그대로, 내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을 느끼며 자란 것 같지만, 사실 부모님의 삶이 너무 힘들어 마음껏 응석 부리고 떼쓰는 아이다운 아이로는 자랄 수 없었던 나로서는 간절히 원했던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이었다.'너는 존재만으로도 귀하고 소중해'라는 느낌..
어쩌면 아빠도 간절히 원했을지 모르는 그 감정..
아빠, 엄마를 나 자신으로 동일시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경계가 없이 하나가 되어버린, 분리되지 않는 내면아이. 그러면서 느꼈다. 아빠도 아빠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싶었던 것 뿐이었을 것이다. 돈을 잘 벌어오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여긴 아빠의 내면아이는 슬픔 속에 살았다. 그 받아들여지지 않은 슬픔이 나에게로 와 안겼다. 나도 아빠처럼 그런 존재로서 사랑받고 싶은 아이가 있었다. '나좀,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줘..'하고 떼쓰는 아이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존재로서 아이를 사랑해주지 못하는 배경 속에 흘러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 하니,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다들 아이들을 몰고 간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아이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부모 자신들도 그 부모에게 똑같은 대접을 받으며, 어떻게 존재 자체로 사랑을 주는지 그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배운 그대로 또 하는 것이다.
그 세대의 부모들이 먼저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느긋하고 넉넉한 마음속에 안겨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다음 세대인 우리는 이렇게 아픈 어른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부모의 자존감이 건강하고 단단한 집의 아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자존감의 결로 자라난다.이 자존감은 바로 존재로서 사랑받은 경험 위에서 자란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도 크게 좌우하겠지만, 후천적으로 가정환경이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안정적인 사랑과 격려, 지지 속에서 큰 아이일수록 세상 속에서 더 당당하다.
최근에 지나영 교수님의 '본질 육아'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대한민국의 교육과 육아에는 정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를 거쳐서 내려오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문제는 집단적 무의식 속에 형성된 슬픈 현실이다. 부모가 된 내가 먼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어릴 적 그토록 원했던 것을 자녀에게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본질 육아'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존재 자체로서 사랑을 주는 것' 이다. 즉,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이며, 부모가 가져야할 육아관의 본질이다.
먼저, 부모 스스로가 자기 사랑을 채워야 가능한일이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사랑하면 나아가 나의 자녀에게도 그런 사랑을 조금 더 쉽게 줄 수 있다. 내가 나와 맺는 관계가 타인과 관계 맺기에 다 드러나는 것이니, 먼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따뜻해져 보자. 우리 안의 내면아이를 돌보고 키워서 더 큰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부를 잘해서, 일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어 와서, 상을 타서,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 존재가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소중해서, 그런 당신이 내 곁에 함께 있어 줘서 감사하고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나에게 준 이 소중한 마음 하나가 죽고 싶었던 나를 변화하게 했다. 결국 나를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살려낸 것은 다름 아닌 존재 자체로 나를 소중하게 봐주는 마음이었다.
우리 아빠 정윤도, 아픈 시간을 보낸 내 친구들도, 이 세상 모든 엄마들도, 모두 다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렇게 당신이 오늘 만나는 그 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을 빌려 줘 보면 어떨까? 그 사랑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전달되어, 사라지고 싶었던 한 마음을 살려내는 기적을 이룰지도 모른다. 내게 그런 천사가 있었던 것처럼 당신도 그런 천사가 되고, 누군가에게 되어 주면서 연결된 우리로, 거대한 바다로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