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떠났다-아빠라는 외로운 섬-물방울 이야기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보내는 위로

by 김리사




예순셋, 아빠는 영원히 눈을 감으셨다. 물방울의 슬픔으로 바다를 그리며..



아빠의 눈에 마지막 한 방울이 슬픔으로 바들바들 떨더니 이내 또르르 흘러내린다. 한 방울, 그 뜨거운 것이

폐암 투병으로 작아질 대로 작아진 그의 몸의 마지막 체온을 지켜주며 이내 원래 왔었던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방울인 줄 알았던 아빠는 바다였으며 거대한 우주였다. 다시 바다가 되고 우주가 되어 그의 세계로 돌아간 것니, 슬퍼할 것이 없었다. 그저 온 곳으로 간 것이며 이제 더 이상 육체의 고통이 없는 평온 그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기에.



그러나 나는 터져 나오는 내 안의 슬픔을, 그 거대한 물길을 감당할 수 없어 그 자리에서 수문을 닫았다. 몇해를 그렇게 그냥 살았다. 차오르는 슬픔따위는 무시한 채.. 그리고 내 나이 마흔 (아빠가 첫 암수술 받은 나이 마흔), 하릴없이 터저버린 그 문 앞에서 세찬 물길을 맞으며 오래도록 짐승처럼 울었던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 슬픔 앞에서 충분히 울어내야만 해소되는 슬픔의 총량이 있음을 알았다. 비워내야만 가벼워지는 마음의 자리가 있었다.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 공간의 압력이 커져버릴 때, 펑, 터지고 마는 그 세찬 감정의 불길에, 활활 타야만 하는 그 마음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당신의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나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쉽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아빠는 최선을 다해 사셨으나 그저 그것에 대답하기 어려운 내가 있었다. 다시 나의 문제로 돌아온 질문이다. 아빠는 다른 사람들에게 참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의 아빠는 나에게 참 친절하고 좋은 아빠였다. 다시 나의 엄마에게 묻는 다면 뭐라고 답하실까? 당신의 남편은 어떤 남편이었냐고 말이다. 엄마의 답이 궁금해진다.


나의 이 책쓰기가 마지막으로 달려갈 때, 그 끝에서는 그 질문의 답을 막힘없이 풀어낼 수 있으리라. 두려운 기대를 안고 글로 아빠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며 이제 정말로 아빠를 보내드리려한다. 한번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아빠의 마음을 용기내어 들어본다. 나에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공부의 숙제를 남기고 떠나신 아빠를 추억하며..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여 외로운 섬이 되어버렸던.. 그래서 많은 시간 아팠던 아빠.. 임종 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으며, 또르르 눈가를 타고 뺨으로 흐르던 그 마지막 뜨거운 물방울로 나를 울린 아빠..



물방울로 존재할 때는 바다가 아득히 멀고 홀로 외롭다. 그러나 이제 물방울은 거대한 바다로 흘러들어

더 없이 평온할 것임을 알기에 아빠의 삶을 돌아보며 참, 많이 고생하셨다고, 애쓰셨다고 담담히 말씀드리고 싶었다. 어릴적 그때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말없이 끄덕여지는 일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아빠의 술을 이제 이해하고 아빠처럼 술을 즐기는 내가 있다. 한잔의 술에 세상 모든 위로 받고, 한잔의 술에 소심하고 비겁하게, 울컥 숨겼던 마음을 토해내는 내가 있다.. 이제라도 아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니, 외로운 섬으로 살다 간 아빠가 하늘에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보내는 위로, 그 첫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보려고 한다. 때론 사람보다, 초록색 술병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여러 밤을 보낸 당신에게.. 초록색 병 보다 더 소중하게 당신을 알아봐 주고 보듬어 줄 글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이겨내느라, 해내느라, 참 애쓰고 수고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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