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의 love yourself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난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잠깐의 외출을 통해, 그 또는 그녀를 만나 잠시 잊혀졌던
외로움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또 다시 외로워지면 또 누구를 찾아 어떻게 외로움을
달래야 할까?
결국 깨닫는 것은 당신의 그 외로움을 제대로 알아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뿐이다.
친구가 많다고 해서 외로움이 없을까?
나를 포함해서 주위에 친구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늘 밝게 웃고 즐겁게 보이고,
sns도 활발하게 하며
다양한 활동들을 공유하며 열심히 잘 사는듯
보인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풍요로워 보이는 사람들도 결국
진짜 힘들고 외로울때 내적 공허감을 채우지 못해
헛헛한 마음을 안기가 쉽다.
'그 한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알아 주고 위로해주는 사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는데도 그런 사람을 찾아
허기를 달래고 싶은 탐욕 덩어리다.
나란 인간은 그렇게 다시 현실로 내려온다.
오늘도 외롭다.
친구가 없지도 않는데 외롭다.
부르고 싶은 사람을 찾을 수 없을 때 더 외롭다.
어쩌면 너무 두꺼운 가면을 쓰고 살아서 그런것이지 모르겠다.
좋은 모습만 보이고 살고 싶은, 가식적인 나.
어둡고, 쓸쓸하고, 우울한 모습은 환영할수 없는 나.
어제 그런 감정을 이야기하며 남편과 나눈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당신은 왜 우울한 날에 부르고 싶은 사람이 없어?"
남편이 물었다.
"우울한 날 사람만나면 힘들잖아, 괜히 밝은 척 해야하고 웃어야 하고.."
내가 말했다.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그냥 있으면 되지, 그친구도 이해하겠지, 위로도 해줄거고.."
남편이 말했다.
"근데 그럼 그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거잖아."
"사람 불러놓고 불편하게 하는게 나는 더 싫어."
"그냥 외로워도 혼자 조용히 있는게 더 마음이 편한 것같아."
내가 답했다.
남편은 다행이 그래도 내 감정을 다 티내도 편하고 좋은 사람이다.
예전보다 소통이 잘 되고, 내 외로움을 전부 알아주진 못해도 내 허물이 그에게
책잡힐 일이 아니기에 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편에게도 솔직할 수 없는 또 다른 내 감정들과
복잡한 삶의 무게는 그 어디에서도
해소가 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은 혼자라는 걸 깨닫고 마는 대화'
'그래도 괜찮다.'
그것을 겪고 넘으려고 이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일테니
'외로움'이라는 인생 필수 과목을 잘 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