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나 홀로 상해 여행 2박 3일

인물탐구

by 김리사

남편이 오늘 아침 중국으로 떠났다.


출장도 아닌, 그저 지인 초대로 여행을 위해

떠난 2박 3일.


지인이 중국 장기 출장을 가있었는데 곧 귀국이라

친한 친구와 지인들 몇 명 초대해서 같이 중국을 즐길 모양이다.


나에게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갔다 오라 얘기했다. 그나 나나 여행은 늘 목마르고 이렇게 좋은 지인찬스를 놓칠 수 없다 생각했다.




그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집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공항 리무진을 타고 가는데 아침에 터미널까지 태워 줄 수 있냐는 부탁에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 했다. 내가 봐도 이 대목에서 나는 세상 친절한 아내 같다. 이렇게 이른 아침 꿀잠의 유혹도 물리치고 친절하게 그를 배웅하고, 잘 다녀와라, 중국에서 길도 모르는데 조심해라, 등등 엄마가 애한테 할 법한 잔소리들을 늘어놓는다.



남편은 스물일곱에 STX조선에 첫 직장으로 입사를 했었다. 그때 회사가 잘 나가던 시절이라 신입들을 크루즈에 태워 여러 신입 교육 프로그램 등을 하며 상해를 다녀오는 혜택이 있었다. 그때 남편의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중국이 되었고, 그것도 호화 크루즈라니, 나는 그때 STX라는 회사를 정말 칭송했던 것 같다. 내 남편과 나의 미래를 밝혀줄 회사 같아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 회사는 남편의 인생관을 바꿔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열심히 회사에 충성하며 눈치보는 삶을 살지 않겠다, 바로 지금과 같이 즐기는 삶을 살겠다는 결정말이다. STX조선은 회사 사정이 나빠져서 대대적 구조조정을 했고 지금은 다른 회사가 되었다. 8년간의 첫 회사생활은 남편의 자발적 희망퇴사로 끝이 났다.


그때도 나는 '쿨'한 아내였다.

"여보, 회사가 지금 사정이 이런데, 나 그만둬도 돼?"

"공무원 7급 공부를 해보려고.."

남편이 나에게 물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남편은 고3 때 만난 인연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교제하며 서로 20대 후반이 되었다. 20대 그 시절, 나는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보고 살았다. 졸업도 겨우했고 늘 돈이 없어 허덕댔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무능력한 한 나만 덩그만 이 있었고 우울하고 외로웠다. 한껏 찌들어 흐릿하게 꾸역꾸역 삶을 살던 나는, 늦은 나이에 호주에 여행겸,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 시절 남편은 첫 회사를 입사해서 사회 초년생이 되었고, 호주에 간 나를 기다리며 나름 많은 입사동기들 여성들과 즐겁게 지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게 다 말은 하지 않았겠지만 첫 입사이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는가. 내가 호주에서 보낸 시간은 돌이켜 보면 장기 연애를 했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서로여야만 하는 이유. 결혼을 꼭 이 사람과 하고 싶은 그 정당성을 찾아서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 시기를 다 보내고 온갖 희로애락을 준 남편의 첫 회사는, 그렇게 마치,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실연의 아픔을 준 것 같은 회사가 되어 버렸고, 다시 무직이 된 그는 공무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첫 집 투자는, 조합원 아파트였는데 아파트 공사를 위한 삽도 뜨기 전에 긴 시간 우리 부부의 피를 말리며 돈을 잃고 끝났다. 그 시절 집값이 두배 뛰기를 하는데 우리부부 빼고 다 집으로 돈을 버는 것같은 상실감이 거대했다. 하는 것들이 다 잘 되지 않고 각자가 가진 학자금대출을 껴안고 신혼은 그렇게 빡빡하고 어려웠다.


남편의 공무원 공부 시기, 우리는 두 살 터울의 미취학 아이 둘이 있었고, 나는 집에서 공부방을 몇 그룹 운영하고 있었으며 학교 방과 후 출강 수업을 나가던 시절이라 벌이가 있던 시절이다. 그래서 어쩌면 남편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쿨내 진동하는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여전히, 그 선택은 잘한 선택이었다.



비록 6개월간 도서관 생활자로 살았지만, 그리고 그의 다음 직장이 공무원 7급이 아닌 다른 공기관으로 경력직 채용으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시기에 나는 남편이 직장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삶의 무게를 다시 느낀 시간이다.


다시, 중국 여행을 신나게 떠난 남편으로 돌아가본다.


그는 그렇게 회사가 부속품같은 한 개인의 안정과 안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삶을 더 자기 위주로 살아가야겠단 다짐을 한 듯하다. 워라밸을 챙기며, 승진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최대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쉼이 있는 삶을 택했다.


물론 자기 일을 잘 해내야 조직내에서 욕들어먹지 않으니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다.

그의 인생깨달음과 결심 덕분에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한 달에 많게는 매 주말마다 1박 2일 가족여행을 여기저기 떠났다.


아이들이 커서 좀 많이 여행이 줄었지만, 여전히 그런 삶의 태도로 살고 있고, 돈을 아낄 수 있는 곳에서 최대한 아껴서 여행 다니고 노는 것에 쓰려한다. 남편의 여행 취미는 내가 봐도 합당하고 타당하고 꼭 필요한 탈출구다.


나에게도 그의 여행은 힐링이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나는 그가 남편이지만 동시에 진짜 함께 크는 친구 같고 동반자 같다. 무려 24년간 삶을 함께 하며, 어릴 적 상처투성이로 미처 다 자라지 못하고 얼어버린 그의 내면아이를 만나는 것만 같다.


그의 내면아이는 오늘 싱글벙글이다.

아이들도 아내도 없이 오롯이 그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며, 첫 실연의 아픔을 준 그 회사가 제공한 상해 크루즈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멋모르던 사회 초년생, 그때 참 좋았었는데.. 하며, 하지만 지금 그가 일군 그만의 자유롭고 워라밸이 있는 이 삶을 감사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호주에서 돌아와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 잠시 머문 생각이었지만, 호주에서 아얘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행복했을까?


그 모든 '만약에'의 말들 뒤에 내가 내리고 싶은

결론은 뭘까?


결국 여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나는 이 삶이 참 좋다.

그가 실직을 하였으므로, 더 치열히 삶을 살았고, 그가 부족한 형편의 남자여서, 내가 부족한 형편의 여자여서 그 둘이라 더 애썼을 것이므로. 아이들 둘이 태어나, 평생 알지 못했을 부모로서의 감정을 배웠고, 내 새끼 눈에 눈물이 나면, 부모눈엔 피눈물이 난다는 말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 남편이 나의 슬픔을 외면하고 나를 버린다 여겼으며, 세상 차가운 모습을 처음으로 보였으므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지독하게 외로웠고, 외로움을 엉뚱한 곳에서 달래려 했으며, 달래지 못한 외로움은 우울증이 되어 나를 잠식했다.


우울증은 나에게, 어느 밤,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굳은 결심 대신,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라는 책 한 권을 쓴 작가가 되게 했다. 또 누군가에게 내가 한 치유 책쓰기를 하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내 아픔에 절어 슬피 울던 애기에서 성장해서 엄마의 아픔과 고단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딸이 되어 글을 쓴다.


이런 배경들 아래에서 결핍 덩어리로 그와 나는 부와 행복의 상징이라 여기는 여행으로 수시로 도망간다.

어린시절 그토록 바랐던 따뜻한 온기가 있는 가족을 꿈꾸며, 함께 떠나는 여행을 동경하며.

여전히도 팍팍한 일상에서 여행으로의 도주하는 삶은 매력적이라 생각하며.


그래,

여기 이곳에서 내게 온 수만 가지 희로애락이 내 것이어야 했으므로, 그것들이 꼭 마땅히 내 삶에 와야 했으므로, 그래서 만난것이다.



어쩌면, 그 시절 STX에서 준 첫 크루즈상해여행에 오늘의 남편의 상해 여행이 모두 함께 담긴 패키지 여행은 아니었을까?



감히, 나도 그자리로 가본다. 창조주가 나와 우리에게 설계한 인생 시나리오를 그의 눈으로, 그 자리에서 들여다본다.


다음은 무엇일까? 어디로 삶은 이어질까? 누구에게로? 어떤 숨결로.. 어떤 아픔과 어떤 깨달음으로..이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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