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강사인 나는 기업체에 영어 회화 출강 수업을 나간다. 그리고 오늘 새해 첫 수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분들을 만났다. 행복한 순간이다. 15년 차 강사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배우고 성장했다. 가르치며 얻는 지혜들이 고스란히 쌓여서 값으로 매기지 못할 나만의 나이테가 되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불안정한 나의 '업'에 대해 짙은 고민이 있었으나, 여전히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자기가 하는 일에 크게 두각을 드러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금전적 만족감일 수도 있고 타인으로부터 받은 존경과 인정이 될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는 학습자들과 교감 속에서 얻는 보람과 만족이 컸던 것 같다. 그러나 나 스스로의 시스템을 아직 만들지 못한 채 업체 소속 강사로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수입도 불안정하고, 하는 노력에 비해 큰 만족이 되는 보수가 아니라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이제 나만의 시스템을 가지고 조금 더 안정적으로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마흔 언저리, 나를 우울하게 했던 한 마음이 있었다. 이 나이까지, '뭔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한 마음이다. 일이 있으면 돈을 벌고, 없으면 돈이 뚝 끊어진다. 직장인도 아닌, 공무원도 아닌, 프리랜서로 하는 강사일로 언제든 일이 없어질 수 있는 불안함을 안고 사는 것이 참 한심하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긍정했다. 지금까지 만나 온 수많은 학습자들을 떠올리며, 참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생각해보면 참 대단했다. 나 스스로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며, 이 자리까지 왔던가. 대학부터 과외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았다. 돈도 없이 혼자 떠난 호주 워홀, 어학연수 시절을 거쳤다. 기업체 강단에 설 때까지 두렵고 떨리던 나의 그 초보 강사시절이 지났다. 그때의 눈물과 성취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지금 뭔가 손에 쥘만한 시스템을 갖춘 내가 아니라 불안하더라도 말이다.
나의 부단히 애쓴 시간을 그렇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라고 하기엔 좀 내 안의 내면아이가 억울할 것이다. 오늘은 문득 그런 나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은 날이었다. 늘 올려다보면, 나보다 더 잘 가르치고, 더 박식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와 인연이 되어 만난 '그 학습자 한분'에게 '나'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노력하고 애정을 쏟았으니 말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오늘 김혜남 선생님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책을 오디오 북을 들으며, 산길을 걸었다. 이렇게 산길을 걸으며 요즘 에너지를 받는다. 정말 귀한 시간, 귀한 책을 오디오북으로 만나는 것은 큰 힐링이다.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해 온 김혜남 선생님이 '벌써 마흔이 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을 담은 책이라고 소개한다. 나도 선생님의 독자층에 딱 하고 들어간다. '벌써 마흔이 된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척이나 귀하고 감사하다.
이 책은 김혜남 선생님이 30년 간의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면서 깨달은 인생의 비밀과 22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는 이유를 전한다. 어릴 적 단짝인 친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고, 파킨슨 병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김혜남 선생님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보면서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유쾌하게 살기로 '선택'할 수 있음을 배웠다.
나의 환경을 돌이켜 본다. 나도 그렇게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이렇게 참 또박또박 내 걸음에 맞추어 걸어온 것에 뿌듯함을 느껴본다. 책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이 한걸음'에서 시작이라고 한다.
나의 한걸음을 응원한다. 그리고 당신의 '그 한걸음'을 응원한다. 비록 오늘은 조금밖에 나가지 못해서 좌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인생은 나만의 보폭과 걸음에 맞춰 떠나는 신비로운 지구별 여행이다. 온갖 즐거운 이벤트들을 놓치지 말고 경험하면 좋겠다. 책 속에서 김혜남 선생님도 딱 한마디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용기를 내어 볼 일이다.
"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그냥, 재밌게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김혜남 선생님의 밝은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 만일 당신이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조용히 자신만의 답을 찾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현재가 더 밝게 빛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