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의 흔적과 수탈의 역사
서해안의 항구 도시, 군산.
이 도시의 골목과 건물의 사이사이에는 깊은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이 쌀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개발한 거점 도시가 바로 군산이었기 때문이죠.
그 흔적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쌀 수탈의 중심지, 군산 장미공연장과 미즈상사
1930년대에 세워진 조선미곡창고는 일제가 수탈한 쌀을 보관하던 공간으로, 현재는 '장미공연장'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 옆 일본 미쓰이 재벌이 운영하던 미즈상사는, 쌀 무역을 독점하며, 식민지 경제 수탈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던 곳이지요.
경제적 주권의 박탈, 구 군산세관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세관을 통해 조선의 수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며 자원을 반출했습니다.
이곳은 조선의 경제적 주권이 어떻게 박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건물입니다.
자본 수탈의 흔적, 구 일본18은행과 조선은행 군산지점
또 일본 은행들은 고리대금과 자본 통제로 조선인의 삶을 조여 오기도 했습니다.
두 은행 건물은 일본의 자본 수탈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이기도 했습니다.
철도
군산을 지나던 철도 또한 일제가 조선의 쌀과 자원을 신속히 반출하기 위해 만든 수탈의 도구였습니다.
철도망의 확장은 조선인의 삶을 위한 발전이 아닌, 식민 지배를 더욱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었답니다.
월명공원
일제는 월명산 정상에 군산신사를 세우고, 조선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광복 후 신사는 철거되었지만, 그 자리는 지금도 식민 지배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삶의 격차를 말하다
히로쓰 가옥이 위치한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 지역이었습니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 거주민들이 누리던 넉넉한 생활과 화려함은 같은 시기 조선인들의 궁핍한 삶과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적산가옥, 전쟁이 남긴 그림자
이 외에도 군산 내항에는 일본의 패전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떠난 적산가옥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버려진 건물들은 해방 이후에도 쉽게 해결되지 않은 소유권 문제와 식민지의 상처를 보여줍니다.
이렇듯 군산 곳곳에 남아있는 건물과 공간들은 단지 오래된 구조물이 아니라, 식민지 시절의 상처와 삶을 증언하는 목소리입니다.
수탈과 억압의 흔적을 따라 걸어온 길 위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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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조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