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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과 함께 피고 진 오얏꽃

애틋하고도 가슴 시린 오얏꽃, 그리고 대한제국의 이야기

by YECCO

봄이 되면 궁궐 곳곳에 피어나는 오얏꽃을 아시나요?

벚꽃과 생김새가 비슷해 봄철이 되면 여러 사람을 헷갈리게 하기도 하고요,

한자로는 ‘이화(李花)’라고 불리는 바람에 종종 배꽃(梨花)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오얏은 자두의 순우리말로, 오얏꽃은 자두나무꽃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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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Winston Chen / 우: ©Jacqueline O'Gara



창덕궁의 오얏꽃


창덕궁에는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또 다른 오얏꽃이 있는데요,

바로 창덕궁 인정전 용마루에 박힌 5개의 오얏꽃 문양입니다.

창덕궁 인정전.jpg 창덕궁 인정전 ©국가유산청

혹자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드러내기 위해 국화 문양을 새긴 것 아니냐 짐작하기도 합니다만,

사실 이 문양은 대한제국의 국장이었던 오얏꽃입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기거한 창덕궁에 대한제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지요.



조선 왕실과 오얏 리(李)


한자 오얏 리(李)는 조선 왕실 이씨 가문의 성씨입니다.


고려 시대 도선국사는 그의 예언책 <비기>에 500년 뒤 오얏 성씨(李)를 가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하는데요, 고려 조정은 예민한 반응을 보여 북한산에 오얏나무를 심고 나무가 무성할 때면 반드시 모두 찍어냈습니다. 이를 통해 '이씨(李氏)'의 기운을 눌러내고자 함이었죠.


그렇지만 결국 이성계가 새나라를 세우면서 오얏 성씨(李)의 조선 왕조가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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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개국 1년 뒤, <태조실록>에 따르면 개국 공신들이 조선을 오얏나무에 비유하면서 ‘오얏나무는 근본이 튼튼하고 뿌리가 깊었다.’고 찬양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조선 왕실은 예부터 오얏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습니다. 다만 오얏꽃이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소재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죠.



오얏꽃, 대한제국을 상징하다.


오얏꽃이 나라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은 대한제국기부터였습니다. 대한제국은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던 조선의 틀을 벗고, 최초로 황제를 표명한 독립국이었습니다.


이전과 다른 새나라를 표방하고자 했던 대한제국은 서양 열강과 일본처럼 국가를 나타낼 상징을 찾아냈습니다. 오얏꽃은 1892년 발행된 닷냥은화의 문양으로 처음 등장한 이래 우표와 훈장, 군복의 모표 등에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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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발행 닷냥 은화 ©57STUDIO / 대한제국의 훈장 중 이화대수장 ©국립중앙도서관 / 독립문 오얏꽃 문양 ©경남도민일보

조선의 독립 의지를 드러내고자 세워진 독립문의 앞쪽에도 태극기와 함께 오얏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1900년 4월 19일 대한제국은 <관보>를 통해 “이화대훈장은 나라 문양에서 취한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오얏꽃 문양이 나라 문양으로 채택됐다는 공식 기록입니다.



오얏꽃의 의미 변화


그러나 순종이 황제에 등극하면서 오얏꽃의 의미가 점차 축소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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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순종 어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우: 순종황제 즉위 기념장 ©거창박물관

자신의 아버지였던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면서 일제의 간섭 아래 황제로 등극한 순종. 순종은 새로운 황제를 드러낼 수 있도록 어기를 비롯한 황실의 휘장을 새로이 제정합니다. 이때 오얏꽃, 즉 이화문이 적극 활용되었습니다. 어기는 왕이 타는 말이나 수레에 달리는 깃발로,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마다 앞세워져 황제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순종이 탔던 어차 문에도 오얏꽃 문양이 새겨졌답니다.

이에 오얏꽃은 점차 황제와 황실 가문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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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황제 어차와 오얏꽃 문양 ©국립고궁박물관


그러나 1910년, 순종이 황제로 등극한 지 3년여 만에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시킵니다. 오얏꽃을 달았던 순종의 황실은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국권을 빼앗긴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 천황의 하부 단위인 ‘왕가’로 격하되고, 순종은 ‘창덕궁 이왕’으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오얏꽃은 일본 황족의 백과사전 <황실사전>에 일본 황실 서열 20위 이왕가의 문양으로 남게 됩니다. 심지어 일본 황실의 국화와 병치되어 한일병합의 상징으로 쓰이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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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한일병합 기념 엽서 ©민족문제연구소 / 우: 황실사전 속 창덕궁의 오얏꽃 문양(가장 아래 줄 첫째 문양) ©조선일보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옵니다.


정확한 문헌상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사진 기록의 비교를 통해

창덕궁 인정전 용마루의 오얏꽃 문양은 1908~1909년 사이에 설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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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1908~1909 인정전 ©미의회도서관 <서울 사진: 네 개의 시선> / 우: 1909년 11월 12일 인정전 ©국립중앙박물관

순종이 황제에 즉위한 지 1-2년이 되던 시기이자, 한일강제병합을 1-2년 앞두었던 시기입니다.


창덕궁의 오얏꽃은 자주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던 마지막 황제의 의지였을까요?

아니면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말 황실의 무력함이었을까요?


대한제국은 오얏꽃과 함께 피고 함께 졌습니다.

애틋하고도 가슴 시린 오얏꽃, 그리고 대한제국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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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목수현, 망국과 國家 表象의 의미 변화 :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를 중심으로, 한국문화, 2011,

박종인, 인정전 위 저 오얏꽃은 대체 누가 꽃피웠더냐![박종인 기자의 '흔적'], 조선일보, 2025.01.13.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01/11/6F3RDCN6NNCMFAMHYG4TGVG4GA/

김승호, 조선의 상징꽃 ‘오얏꽃’을 아시나요, 대한금융신문, 2023.04.09.
https://www.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126

김영만, [김영만의 新무궁화고] 무궁화와 오얏꽃의 엇갈린 운명, 농민신문, 2022.09.28.

https://www.nongmin.com/article/2022092836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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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민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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