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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또 하나의 시선

한국의 전통 색채어, 세상을 물들이다

by YECCO


빨주노초파남보. 어릴 적부터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무지개의 일곱 빛깔에 익숙해지다 보면, 세상에는 마치 일곱 가지의 색만 존재하는 듯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자연이 빚어내는 빛의 스펙트럼은 연속적이기에, 그 경계는 결코 명확하지 않죠.


색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인식되기까지, 감각과 감정, 그리고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의 과정을 거칩니다. 똑같은 색이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부르는 방식은 개인이나 사회,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렇다면 과거에는 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했을까요? 한국의 전통 색채어가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을 살펴봅시다.



무채색계(無彩色界)

먼저 무채색 계열의 설백색과 지백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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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백색 설경 ©박근화 / 지백색 창호문 ©남상욱

설백색(雪白色)은 눈이 내린 풍경의 때 묻지 않는 흰빛을 일컬었습니다. 완전한 백색을 일상생활에서 마주하기 어려웠던 전통사회에서, 선조들은 자연이 지닌 가장 밝고도 순수한 백색을 눈 속에서 찾아내 설백색이라고 부른 것이지요.


그와 대비되는 지백색(紙白色)은 창호지나 한지에서 느껴지는, 노란 기운이 약간 도는 따뜻한 백색입니다. 이상적이고 관념적 차원의 백색인 설백색에 비해 일상적으로 접하기 쉬운 백색이었습니다.



적색계(赤色界)

다음으로는 적색계열의 색 중 추향색을 살펴보겠습니다.

daniel-frank-UoUqvOOwDh8-unsplash.jpg ©Daniel Frank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추향색(秋香色)은 말 그대로 가을의 향기를 품은 엷은 갈색을 지칭했습니다. 풍요롭고도 성숙한 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추향색을 보고 있노라면, 무르익은 곡식과 과일이 떠오르죠.



청록색계(靑綠色界)

이어서 청색과 녹색 사이의 청록색계 색상을 살펴보겠습니다.

shelter-FdBGX44aNZM-unsplash.jpg ©Shelter

먼저 천청색(天靑色)은 하늘의 청색이라는 뜻을 지니는데요, 옅은 청색 혹은 짙은 옥색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조선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에게 하사한 복색의 색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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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Billy / 영친왕비의 취람색 당의 ©국립고궁박물관

다음, 취람색(翠嵐色)은 멀리 보이는 산에 안개처럼 얹힌 푸르스름한 색을 뜻하며, 현대에 소비되는 취람색은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청록색과 녹청색 사이의 청량한 색을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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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유록색 버들잎 ©Lee SH / 하엽색 연잎 ©최경이

봄날 버들잎의 색을 가리켜 춘유록색(春柳綠色)이라고 합니다. 노란빛을 띤 연한 녹색인데요, 봄의 기운을 가득 풍기는 새순이 생각나는 색입니다.


하엽색(荷葉色)은 연잎이 지닌 진하고도 차분한 청록색입니다. 한의학에서 하엽은 연잎을 지칭하는데요, 이러한 하엽의 색인 하엽색은 궁궐을 멋들어지게 물들이던 옛 단청에 쓰인 그 익숙한 녹청색이기도 합니다.



황색계(黃色界)

황색계열의 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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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의 송화색 다식 ©박동식 / 행황색 살구 ©Maša Žekš

송화색(松花色)은 소나무의 꽃과 송진이 띠는 연한 노란색입니다. 전통 다과 중 송홧가루로 반죽한 다식이 지닌 바로 그 색이죠.


행황색(杏黃色)은 잘 익은 살구와 은행이 지닌 고운 빛깔의 색입니다. 행황색은 치자나 홍화와 같은 천연 염색 원료로 만들어지며, 전통 의복에서도 높은 빈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자색계(紫色界)

마지막으로 자색계열의 다자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oleg-guijinsky-2CRgKZAyPXg-unsplash.jpg 다자색 찻잎 ©Oleg Guijinsky

찻잎의 자주색이라는 뜻을 지닌 다자색(茶紫色). 잘 닦아 말린 찻잎에서 나타난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는데요, 앞선 하엽색과 마찬가지로 옛 단청에도 쓰일 만큼 상징성과 깊이를 지닌 색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전통 색채어는 우리의 선조들이 세상을 관찰하고 마주한 방식을 섬세하게 반영합니다. 인간은 색채어를 통해 각자의 빛깔로, 각자의 삶을 물들이는 것이지요.


마치며,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앞에 펼쳐진 세상은 무슨 색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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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연선. 『색채용어사전』. 도서출판 예림. 2007.

『한국전통표준색명 및 색상 2차 시안』. 국립현대미술관. 1992.

『한국의 색』. designdb 2002, 05+06 vol 통권 제179호. 2002


표지사진

©한국교육방송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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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심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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