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과 시간이 빚어낸 궁중음식 이야기
조선 왕실의 음식을 책임졌던 소주방, 그 안에는 어떤 상차림과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까요?
소주방은 궁궐의 주요 주방으로, 궁중 음식을 담당하던 곳입니다. 크게 내소주방, 외소주방, 생물방의 세 구역으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운영되었죠.
외소주방은 궁중의 잔치 음식, 고사 음식 등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는데요, 궁중 잔치에 등장했던 다양한 상차림 중에서도 오늘날의 돌잔치에서도 엿볼 수 있는 고임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고임상은 다양한 음식들을 층층이 쌓아 올려 시각적으로 풍성함을 더한 상차림입니다.
상의 윗면은 도홍색 운문단을 덮고, 그 위에 좌면지를 깔고 음식이 담긴 그릇을 놓았으며, 상 옆쪽은 초록색 운문단을 주름지게 늘어뜨렸습니다. 찬품 중에서 물기가 많아 고일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인 꼭대기에 종이나 비단으로 만든 상화를 꽂아서 호화롭게 장식했죠,
음식 종류에 따라 그 높이를 달리해 차렸는데, 떡류,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 병과류와 생과류는 한 자 세 치에서 한 자 일곱 치 정도로 높이 고였고, 숙실과인 율란, 조란, 생란과 각색정과는 이보다 조금 낮게 쌓았습니다. 전유화, 편육, 화양적, 회 등의 찬품은 조과류보다 낮게 고이며, 그 밖에 화채, 찜, 탕, 열구자탕, 장류 등 물기가 많은 음식은 높게 고이지 않고 낮게 차렸답니다.
실제로 먹을 음식은 따로 작은 상에 덜어 내고, 고임상에 올린 음식은 행사가 다 끝난 후에 먹을 수 있어서
당장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상이라 하여 망상이라고도 불렸답니다.
내소주방은 왕과 왕비의 수라를 준비하던 곳으로, 안소주방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는 초조반이라 불리는 간단한 죽이나 미음을, 오전에는 아침 수라를, 오후에는 점심 격인 낮것상과 저녁 수라까지 준비하며 빈틈없이 하루를 채웠지요.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귀한 재료들은 최고의 궁중 요리사들의 손을 거쳐 정성껏 다듬어졌습니다. 붉게 칠한 큰 둥근상(대원반), 작은 둥근상(소원반), 그리고 네모난 책상반 위에 정성스레 올려진 음식 하나하나는 조선 왕실의 질서를 나타냅니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는 “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고래로 하루에 다섯 번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궁중의 일상식은 초조반, 조수라, 낮것상, 석수라, 야참으로 나뉘어 하루 다섯 번 준비되었지요.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특히 아침과 저녁에 12첩 반상의 정식의 수라상이 올랐는데요, 아침 수라는 보통 오전 10시경, 저녁 수라는 오후 5시경에 들었습니다.
이른 아침 자리에서 드시는 초조반은 보약이나 죽, 미음, 응이 같은 가벼운 음식으로, 하루의 시작을 부드럽게 열어주었지요.
오후 2시쯤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하였는데, 이를 낮것상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장국상이나 다과상처럼 간단한 입맷상으로, 점심시간은 일정하지 않아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정해졌다고 합니다.
또한 참이라 불리는 다과상도 따로 마련되어 다양한 간식과 차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간대에 따라 음식의 종류와 구성이 달랐고, 그 속에는 왕의 건강과 기호를 세심하게 배려한 궁중의 정성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소주방 안쪽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생과방, 혹은 생물방이라 불리던 후식 준비 공간입니다. 이곳은 생과, 숙실과, 조과, 떡, 화채, 차 등 왕과 왕비를 위한 후식과 별식을 마련하던 공간입니다.
절제된 단맛과 고운 색감으로 완성된 궁중의 다과는 식사 그 이상으로 여겨졌지요.
또한 생과방은 궁중의 안살림을 책임지던 여섯 부서, 육처소(六處所) 가운데 하나입니다. 침방, 수방, 세수간, 생과방, 소주방, 세답방으로 구성된 이 육처소는 왕실의 일상을 뒷받침하던 공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소주방의 시간은 궁을 넘어, 우리의 일상과 만나고 있습니다. 경복궁에서는「수라간 시식공감」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통해 궁중 음식은 물론 전통 공연과 놀이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視(볼 시) – 경복궁 소주방을 거닐며
食(먹을 식) – 정성스레 빚은 궁중병과를 맛보고
公(공경할 공) – 전통 음악을 들으며
感(느낄 감) – 그 깊은 여운을 마음에 담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궁중의 병과를 직접 맛보고, 왕실의 부엌과 어좌를 모티브로 한 포토존에서 사진도 남길 수 있습니다. 해가 지면 ‘밤의 생과방’이 고즈넉한 조명을 밝히며 문을 엽니다.
달빛이 내려앉은 궁궐 속에서 조선의 다과와 약차를 음미하는 시간은, 현대인의 분주한 일상에 조용한 쉼표를 선사하며, '주방골목'에서는 숙설소 차비의 안내에 따라 간식을 고르고, 전각 사이를 거닐며 조선의 간식 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한편, 고요한 담장 너머에 자리한 소주방. 이곳은 단지 음식을 만들던 부엌이 아니었습니다. 왕과 왕비의 하루를 준비하고, 조선 왕실의 품격을 지켜온 공간이었지요.
조선 왕실의 품격이 깃든 소주방에서 차려낸 궁중 음식은, 결국 정성과 시간이 빚어낸 문화였습니다. 찻잔을 들고, 다과 한 접시에 담긴 조선의 정취를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요?
소주방에서, 조선의 맛과 멋을 천천히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
YECCO 콘텐츠팀 김시현, 조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