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을 둘러싼 기묘한 이야기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무엇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무서운 이야기가 절로 생각나곤 합니다. 특히 올해 여름은 전례 없는 폭염으로 인하여 더욱 싸늘함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여름에 침대에 누워 무서운 이야기 보는 것만큼 시원한 건 없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더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드리고자, 기묘하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궁궐과 한 왕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유교적 질서와 예법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그것도 궁궐과 왕과 관련된 기묘한 이야기라니 벌써부터 오싹해지는 기분입니다.
사실 궁궐에서는 귀신이나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유교 예법에 의해 일어나서는 안 될 일로 여겨졌습니다.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하던 조선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그저 단순한 괴담이 아닌 하늘의 경고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왕의 덕이 부족하거나 통치에 문제가 있을 때, 하늘이 진노하여 이상한 징조나 재해를 내린다고 여겼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이한 사건이 집중적으로 보고된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 시대입니다. 중종은 폭군으로 악명 높았던 연산군이 폐위된 후, 반정을 통해 즉위한 왕이었습니다. 아무리 폭군이었다 해도, 신하들의 정변에 의해 왕위에 오른 것 때문일까요? 중종은 제위기간 동안 유독 기묘한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중종은 신하들에게 “지난밤 독서당 근처에서 붉은 기운이 심했다던데 사실인가?”라고 묻습니다. 이에 승정원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난밤뿐 아니라 그믐날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을 자못 심해 독서당 주변 지역에서 산불까지 났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폐위 후 사망한 연산군이 귀신이 되어 도성에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붉은 기운은 연산군의 혼령이 일으킨 저주로 인한 것이라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붉은 기운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나 발현되었다고 하니, 연산군의 저주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기이한 일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경복궁 문소전에 기이한 짐승이 나타났다. “밤에 개 같은 짐승이 문소전 뒤에서 나와 앞 묘전으로 향하는 것을, 문소전이 지키는 자가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 명하여 몰아서 찾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경복궁의 문소전은 태조의 왕비 신의왕후 신 씨를 모시던 사당으로 들짐승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 공간에서 기이한 동물이라니 모두가 섬뜩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놀랍게도 이 짐승은 사라진 줄 알았지만 중종 22년에 다시 등장합니다.
승정원이 소라를 부는 갑사의 가위눌린 꿈을 아뢰었다. “간밤에 소라를 부는 갑사 한 명이 꿈에 가위눌려 기절하자, 동료들이 놀라 일아나 구료 하느라 떠들썩했습니다. 그래서 제군이 일시에 일어나서 보았는데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취라치(군 중에서 소라를 부는 취타수의 하나) 방에서 나와 서명문을 향해 달아났습니다. " 그리고 서소위부장의 첩보에도 ‘군사들이 또한 그것을 보았는데, 충찬위청 모퉁이에서 큰 소리를 내며 서소위를 향하여 달려왔으므로 모두 놀라 고함을 질렀다. 취라치 방에서는 비린내가 풍기고 이었다’ 했습니다.
중종 재임 초기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삽살개이면서도 망아지인 이 괴이한 동물은 다시금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기묘한 이야기는 ‘물귀’라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중종은 제사조차 맘 편히 지내지 못했습니다.
중종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을 때,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종묘 앞의 소나무 두 그루가 번개에 맞았다.
조선시대에서 번개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하늘의 뜻을 드러내는 천변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그 번개가 왕실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성역인 종묘를 강타한 것은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즉,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정치적 그리고 도덕적의 문제가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외에도 중종시대에는 섬뜩하고 기이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보고되었습니다. 숙의 나 씨가 출산 중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이 탔던 피접에서는 밤마다 여인과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 대비가 귀신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비전 창문을 두드리는 괴물의 출현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중종 시기의 궁궐은 온갖 불가사의한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정말 하늘이 반정을 하여 즉위한 중종에게 노한 것이었을까요? 아무리 연산군이 폭군이었더라도, 하늘은 인간의 정변을 쉽게 용납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중종 이외에도 왕실을 둘러싼 기이한 이야기는 역사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 괴담을 넘어, 권력과 신념, 그리고 인간 내면의 두려움이 얽힌 시대적 상징이기도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중종의 기묘한 일화들을 되새기며 더위를 잠시 잊고 역사의 서늘한 단면을 마주해 봅시다.
*해당 글은 야사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김용관. 조선의 왕과 궁궐귀신 이야기. 돋을새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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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임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