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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지탱하는 나무들

전통과 기술이 살아 숨 쉬는 경복궁의 목조건축 이야기

by YECCO


불을 두려워하면서도, 나무를 택한 이유

경복궁_흥복전_측면(궁능유적본부)-min.jpg 경복궁 흥복전 측면 ©궁능유적본부

경복궁을 걷다 보면, 건물 하나하나가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는 경복궁의 주요 구조가 목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가집니다. 따라서 경복궁은 여러 차례 불에 타 소실되었고, 중건 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화재로 공사가 지연되곤 했습니다. 지금의 경복궁이 있기까지, 불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죠.


또한 과거엔 소화장비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을 막기 위해 민간신앙에 기대곤 했습니다. 『경복궁영건일기』에 따르면 경회루 연못 한가운데, 청동으로 만든 용 조형물이 세워졌다고도 합니다. 이는 불을 막기 위한 일종의 수호신 같은 존재였죠. 해당 조형물을 세울 때는 아래와 같은 제문이 함께했습니다.


“화재의 신 회록은 백 겁 동안 가두고,
불의 신 화덕진군은 천리 밖으로 떠나보내라.”


제작 일정도 철저히 고려되었습니다. 물을 상징하는 ‘임(壬)’과 ‘감(坎)’이 들어간 날에 시작해, 물의 기운으로 불을 누르고자 한 것입니다.

imageSrc.jpeg 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국립고궁박물관


그렇다면, 왜 이러한 단점을 감수하면서도 나무를 건축의 중심에 두었을까요? 화마(火魔)를 두려워하면서도, 끝끝내 나무를 택한 조선의 건축가들의 이야기. 우리 조상의 지혜를 배우고 이것이 현대 보수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봅시다.




전통건축에 쓰인 나무들

brady-bellini-t5dGNNQVwg8-unsplash.jpg 공포 ©Brady Bellini

1. 왜 나무를 선택했을까?


조선 건축가들이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자원이 풍부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운송이었습니다. 목재는 석재에 비해 가벼워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었고,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성질이 우리 고유의 건축 방식에도 적합했습니다.


조선의 유교적 자연관을 통한 설명도 존재합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했던 철학은 건축 재료 선정에서도 드러난 것이죠.


2. 조선시대 궁궐에 쓰였던 나무, 소나무


경복궁엔 소나무가 가장 많이 쓰였습니다. 소나무는 조선을 대표하는 나무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죠. 이러한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높은 내구성, 곧게 뻗은 형질, 그리고 구하기 쉬운 접근성까지 갖춘 소나무는 궁궐 건축의 핵심 자재였습니다.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 지역에서 소나무가 조달되어 초기 경복궁이 지어졌습니다. 특히 하중을 견디는 공포, 섬세한 초각이 필요한 부재는 대부분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죠.


이렇듯 소나무는 조선시대 궁궐 건축에 핵심 재료였기 때문에 조선 초기부터 소나무 벌목을 금하는 송목금벌이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소나무 보호구역을 알리는 표석 또한 세워졌습니다. 현재는 치악산 구룡사 입구 '황장금표(黃腸禁標)'라고 새겨진 암석, 울진 북면 두천리 암벽의 ‘황장봉산 동계 조성 지서이십리(黃腸封山 東界鳥城 至西二十里)’,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바위에 ‘자서고한계 지동계이십리(自西古寒溪 至東界二十里)’ 등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황장금표.jpg 강원도 구룡사 입구의 ‘황장금표’ ©국가유산청


궁궐에는 특히 줄기가 곧고 붉은 소나무가 주로 쓰였습니다. 우리의 옛 문헌에서는 이 소나무를 송(松), 송목(松木)으로 썼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식 명칭인 적송(赤松)을 쓰도록 강요하였습니다. 현재는 소나무 군락지인 금강산에서 따온 이름 금강송과, 경북 봉화 춘양면에서 가져온 이름 춘양목, 황장목(맨 안쪽 심에 가까운 부분인 황장이 많아 재질이 좋은 나무) 등이 이 소나무를 일컫는데 자주 쓰입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자라는 이 소나무는, 경북 울진, 봉화, 영양, 청송, 강원도 강릉, 삼척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경북 울진군 소광리는 대표적인 금강송 군락지로,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수령 200년이 넘는 소나무가 8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죠.

forest_detail_img3.jpg 경북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한편, 경복궁 중건 당시, 소나무가 부족하여 광릉, 대관령의 전나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전나무는 다른 침엽수에 비해 무른 성질이 있지만 재질이 균일하여 옛날부터 큰 건물의 기둥 등에 쓰였으며 근정전의 기둥에도 활용되었습니다.

경복궁_근정전_근정전 내부(궁능유적본부)-min.jpg 전나무가 활용된 근정전의 기둥 ©궁능유적본부


아쉽게도 현재에는 과거처럼 다양한 국내산 목재를 쓰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수입목재로 대체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경복궁 복원 작업에는 과거 전통적인 건축 방법과 고부재를 사용하며 원형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건축을 완성한 이음과 맞춤의 기술


조선의 목조건축만의 아름다움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을 짓는 전통 결구법에 있습니다. 이는 이음과 맞춤이라는 고유의 결구 기법 덕분입니다.


1. 이음, 나무를 길게 잇다.


이음은 말 그대로 길이가 짧은 부재를 잇고 더 긴 구조재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부재의 길이를 늘이기 위해 대부분의 수평재에 쓰입니다. 수직재에서도 긴 부재를 구하기 힘들 때 쓰이고, 특히 기둥 보수과정에서 부식된 부분을 잘라내고 교체할 때 이음 기법이 활용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음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먹장부이음

장부 형태를 주먹 모양으로 장부 끝 너비가 시작 너비보다 넓게 만들어 결구시킨 이음 방식입니다. 기초적이면서도 강한 결속력을 가져, 주요 구조재와 더불어 공포재, 평고대등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2) 나비장이음

양쪽 부재를 서로 맞물리게 하되 중앙에 나비 모양의 쐐기를 끼워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쐐기를 박을수록 더 단단해지는 구조로 수평재 또는 수직재 간의 연결에 자주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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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맞춤, 나무를 깎아 맞추다.


맞춤은 방향이 다른 부재를 수직이나 경사진 방향으로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구조적 연결은 물론이고, 외형의 아름다움과 결의 흐름까지 고려합니다.


맞춤은 크게 (목재 일부를 자르거나 파내어 남긴 부분)을 이용하는 방법과 장부(한 부재의 끝을 길고 가늘게 만든 돌출 부분)를 이용한 방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턱을 활용한 맞춤은 45도 혹은 직각으로 교차하는 수평재에 많이 쓰이며 턱의 종류에 따라 반턱맞춤, 삼분턱맞춤 등이 있습니다. 장부를 이용한 맞춤은 부재에 장부를 만들고 연결 부재에 장부 홈을 두는 방식으로, 주먹장부맞춤, 쌍장부맞춤 등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맞춤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장부맞춤

가장 기본적인 방으로 한쪽 부재에 돌출된 ‘장부’를 만들고 다른 부재에는 그 장부가 들어갈 을 파서 끼워 맞춥니다. 기둥과 창방, 기둥과 보 등 구조의 중심 측에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2) 삼분턱맞춤

두 개의 부재가 직각으로 만날 때, 각각을 1/3씩 깎아낸 뒤 포개어 맞추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조선의 건축은 단순한 나무 짜맞춤을 넘어, 자연을 이해하고 손으로 다스린 기술의 정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경복궁과 같은 주요 복원 현장에서는 이음과 맞춤이라는 전통 기법을 최대한 유지하며 원형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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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영건일기』©서울역사편찬원

『경복궁영건일기』에 따르면 경복궁 중건 당시 많게는 하루에 3000명 이상의 장인이 동원되었습니다. 기초 공사를 담당하는 장인부터 돌을 다루는 장인, 금속을 다루는 장인, 흙은 다루는 장인 등 명단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이름 없는 장인들이 경복궁 공사 현장에서 땀 흘리며 작업을 진행하였죠. 이 중 나무를 다루었던 장인들과 그들이 했던 작업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작예꾼

작예꾼은 목재를 벌채하고 운반하던 사람들입니다. 궁궐의 건축 공사는 국가에서 나무를 기르는 금양처에서 주로 벌목하며 시작되었지만, 점차 수량이 부족해지며 전국의 산에서 적합한 목재들을 찾게 되었죠. 벌목한 목재는 이들에 의해 산으로부터 강가나 바닷가로 옮겨졌습니다. 동해에서 남해로, 남해에서 서해로, 서해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한양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2. 톱장

한양으로 도착한 목재는 톱장이 가장 먼저 가공했습니다. 톱장은 대인거장, 소인거장, 기거장, 거도장, 걸거장으로 세분화되고 이들은 각자 규격에 맞게 목재를 자르고 다듬었습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나무를 얇은 판재로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죠.


3. 목수

목수는 각각의 업무에 따라 목수와 소목장으로 구분됩니다. 오늘날 대목장이라고도 불리는 목수는 원목재에 밑그림을 그리고, 목재를 조립하는 일을 했습니다. 각 부재의 크기와 형태를 정해 건물의 형태를 완성시켰죠. 또한 대부분 소나무를 다루었으며 기둥을 제외한 건물의 구조체는 사람의 손이 잘 안 닿았기 때문에 마감 처리가 투박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소목장은 각종 기구를 비롯해 탈 것이나 제사에 필요한 제기, 창호나 난간을 제작하였습니다. 손으로 만지는 가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마감을 정교하게 하기 위해 훨씬 다양한 연장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소나무 대신 백자판이나 추판 등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경복궁영건일기』에서는 경복궁의 근정전의 당가를 백자판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현대로 이어진 목조 건축의 전통 보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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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복원공사 현장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현대에 들어 목재가 부식되어 교체나 수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최대한 전통 기법과 재료를 그대로 유지하여 보수하고 있습니다.『국가유산수리표준시방서』에 따르면 기존 목재 부재를 재사용하되, 심하게 손상된 경우에만 동일수종의 신재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종류에 따라 함수율, 강도, 내구성 등이 모두 달라지고, 이에 따라 목재 팽창 및 수축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신재 사용에 신중함이 요구됩니다.


목조 건축을 수리할 때는 수종, 연륜연대, 부재 진단을 통해 고부재의 특성과 문제를 파악하고, 해체 후 부재별 특성에 맞는 치목(목재를 규격에 맞게 다듬거나 제재하는 작업), 이후 조립(이음과 맞춤)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전통 재료와 기법을 고수한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장인의 고도화된 기술을 요합니다. 최근에는 기둥 내부에 나무 촉 대신 티타늄 촉을 넣는 등 전통 기법을 현대 기술을 접목한 전통 기법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전통의 가치

경복궁_강녕전_내부 2(궁능유적본부)-min.jpg 경복궁 강녕전 내부 ©궁능유적본부

경복궁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소나무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전통기법이 담긴 목조 건축물로 오늘날에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궁궐 축조에 사용되었던 전통과 지혜, 그리고 현대에 들어 이를 이어받는 공간으로서 경복궁의 의미는 더욱 빛이 납니다.


경복궁의 목재에 담긴 의미와 전통의 가치를 느껴보며 경복궁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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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권시연, 차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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