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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작도 속 호랑이와 까치

용기와 희망을 담다

by YECCO


최근에 나온 영화 <케이팝데몬헌터스>는 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이 영화의 성공 가도를 돕고 있는 여러 요소 중에는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인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가 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5-09-01-17-59-13.png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호랑이 더피의 호랑이 같지 않은 귀여운 모습과 친근한 태도, 그리고 갓을 쓰고 있는 까치 서씨의 멋진 모습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으로부터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호랑이와 친근한 까치의 조합은 사실 조선 후기에 나타난 서민의 예술 장르 중 하나인 민화 호작도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호작도는 소나무가 있는 공간에 호랑이와 이를 향하여 지저귀는 까치를 주제로 다룬 그림입니다.


호작도는 단순히 호랑이와 까치의 친근한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백성들의 소망을 가득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호작도에 담긴 백성들의 염원이 무엇인지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민화는 조선 후기에 태동한 서민예술의 한 장르로서 상류층이 아닌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그림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그림들은 본래 궁중 회화로서 궁에서 필요로 한 실용적 차원의 그림들이었으나, 이가 민간에 전해지면서 그와 유사한 스타일로 그려지게 되었고, 이를 가리켜 ‘민화’ 혹은 ‘속화’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초기의 민화는 궁중 회화와 마찬가지로 장식성과 상징성을 중시하며, 특정한 도상과 의미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화_PS0100300500200090000000_0 (1).jpg ©부산광역시립박물관

그런데 민화가 민간에서 그려지면서, 점차 궁중 회화와는 다른 독자적 성격을 띠게 됩니다. 색감은 한층 더 화려해지고, 형식은 자유롭고 재치 있는 표현으로 발전하였으며, 무엇보다 당시 백성들의 솔직한 마음과 소박한 염원을 담아내는 독특한 예술 양식으로 거듭났지요.



호작도 속 호랑이는 더피처럼 친근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사실 조선 사회 속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산지가 많은 한반도는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었기에, 개체수가 많았고, 이로 인한 피해는 사회체제에 혼란을 줄 정도로 컸습니다.

nick-karvounis--KNNQqX9rqY-unsplash.jpg ©Nick Karvounis

전통사회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위기를 닥쳤을 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라고 이야기하곤 하지요. 여기서 호환호랑이로 인한 피해를 뜻합니다. 이렇게 따로 용어가 있을 만큼 호랑이는 당시 재난에 가까웠죠. 이에 당시 사람들은 산을 넘어야 했다면 밤은 무조건 피했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가곤 했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어렵지 않게 호랑이 및 호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요. 영조실록의 한 기록은 당시의 호랑이가 민중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1735년(영조 11) 5월 29일 팔도에 모두 호환이 있었는데,
영동지방이 가장 심하여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은 자가 40여 명에 이르렀다.
-영조실록


이렇게 당시에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크니, 호환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 또한 있었습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호랑이를 잡는 정규 군사인 착호갑사에 대한 규정 및 포상이 명시되어 있는데요, 그 수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474년(성종 5년)에는 1만 4,800명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산림에서 가장 강한 동물인 호랑이는 산신령과 함께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산군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사찰의 산신각 혹은 산령각이라 불리는 전각에 봉안되어 있는 산신도 대부분에는 산신령과 호랑이가 함께 표현됩니다. 호랑이가 산신령 옆에 붙어 있거나, 산신령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습도 있죠. 즉, 산신도에 표현된 호랑이는 산신령의 심부름꾼이자 화신 그 자체로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산신도_PS0100100102400419100000_0.jpg ©국립중앙박물관

때문에 호랑이는 당시에 악귀와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을 하는 용맹한 영물이자 수호자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민간에 떠돌았던 여러 속설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1. 호랑이 그림을 문이나 벽에 붙이면 집안의 나쁜 기운을 막을 수 있다.
2. 병에 걸렸을 때 호랑이 고기를 먹으면 효력이 있다.
3. 종기에는 범 그림을 그려 붙이면 낫고, 독감에도 "범 왔다."를 세 번 외우면 효과가 있다.
4. 악귀를 만났을 경우에는 호랑이 가죽을 태워 물에 타 마시면 능히 물리칠 수 있다.
©송창수


민화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자 산군인 호랑이는 용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아닌, 몸집은 크지만 어리숙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함께 해학적으로 표현되는데요,

호작도_PS0100425300600002800000_0.jpg ©가회민화박물관

이는 호랑이가 두려운 존재가 아닌 민중의 조력자로서 악귀와 액운으로부터 백성을 지켜주는, 즉 벽사의 기능을 하는 수호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까치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길조였습니다. 까치는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요를 기원하는 한국의 토속 신앙인 서낭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인 서낭신의 심부름꾼으로서 사람들에게 경사를 가져다주곤 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라는 속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죠.

daniel-bertrams-WlT9vph1v-8-unsplash.jpg ©Daniel Bertrams


이러한 맥락에서 호작도는 호랑이의 맹렬한 기운으로 액운을 막고, 까치의 경사로운 기운으로 좋은 소식을 불러들여 완벽한 행운과 복을 완성하고자 하는 백성들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호작도를 그려 집에 걸어두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1년 동안 악하거나 나쁜 일없이 기쁜 소식만 있기를 바랐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호작도는 사회적인 맥락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호랑이는 조선 후기 백성을 착취했던 권력과 탐관오리로 비유되기도 했죠. 그래서 백성은 호작도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권력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바보처럼 그려놓음으로써 권력층을 풍자하고 이들의 권위를 해체하는 동시에 현실의 고통을 유쾌하게 극복하고자 했죠.


호작도를 사회적인 맥락으로 해석한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이 있는데요. 호작도의 ‘호’는 호랑이를, ‘작’은 까치를 뜻하는데, ‘호’라는 음의 다른 뜻으로는 ‘부르다’가, ‘작’이라는 음의 다른 뜻으로는 ‘짓다’가 있어 ‘짓고 부르다’, 즉 백성의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많은 작호도 속 까치는 호랑이에게 쉴 새 없이 지저귀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백성이 권력을 향한 그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표출하고자 하는 열망을 반영한 것 아닐까요?



집안의 액운을 막고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 권력 앞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평등한 세상에 대한 소망까지. 지금까지 우리는 민화 호작도와 그 속에 담긴 호랑이와 까치의 상징과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영화 <케이팝데몬헌터스>의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피는 선한 영이기 때문에 황금 혼문이 생겨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곧 조력자이자 수호자로서 백성의 벗이 되었던 호작도 속 호랑이의 상징이 더피에게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호작도 속 호랑이와 까치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영화를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피와 서씨의 새로운 의미와 상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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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이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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