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상징, 남산 타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정겨운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이국적인 벽화가 함께 공존하는 곳, 바로 해방촌입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많은 사람들이 이 골목을 찾고 있는데요. 이곳은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실향민과 피난민들의 보금자리로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 예술가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와 활기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죠. 예콘지기와 함께 골목에 묻은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 볼까요?
해방 직후,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해방촌에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광복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과 6.25 전쟁 피난민들은 하꼬방이라 불리는 판잣집 마을을 이루었죠.
좁고 열악한 공간 속에서도, 그들은 불법 담배 제조, 군복 물들이기, 봉투 붙이기 같은 단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갔습니다. 또한 교회와 성당을 세워,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교육과 복지 기능을 제공했는데요.
해방촌 주민들의 정체성을 세우고 실향민들의 마음에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1960년대가 되자, 해방촌에도 산업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사람들이 몰리며, 주택 부족 문제가 심화되었죠.
1970년대 정부는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해방촌을 철거 대상 지역으로 선정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대 덕분에 자력 재개발 사업 구역으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 주민들은 판잣집을 허물고 시멘트 건물 지붕을 이어 붙여 신흥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요코라 불리는 니트 가내 수공업이 활기를 띠며, 시장은 점점 해방촌 공동체의 심장이 되어갔죠.
또한, 먼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음식과 생필품을 판매하며, 서로 연대감을 쌓는 공간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대형 의류산업이 발달하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니트 가내 수공업과 신흥시장의 자리는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며, 해방촌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죠.
1990년대 환경개선사업을 거치며, 해방촌은 다가구 주택촌으로 변모했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근처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미군 사병들이 거주하며, 해방촌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죠. 이후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유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해방촌은 다채로운 문화와 교류의 장으로 진화했습니다.
2012년, 용산구에서는 해방촌에 벽화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축제 <해방촌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도 열리며, 해방촌은 점차 예술의 거리로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서울시가 신흥시장을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하고 예술마을로 특성화했습니다. 낡은 배수시설을 정비하고, 휴식 공간과 감각적인 간판, 조명을 설치하면서, 매력적인 문화 복합공간으로 변모했죠.
젊은 예술가들은 과거 요코 산업의 정신을 이어받아, 니트 산업과 예술 공방을 결합한 문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감각적인 공방과 카페들이 모여,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이태원 클라쓰>의 촬영지로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죠.
작은 이태원 거리라고 불리는 HBC 거리에서는 영어로 표기된 메뉴판과 포스터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외국인들의 다양한 문화를 반영한 상점들이 늘어서,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색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최근 해방촌에는 뉴트로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70~80년대의 오래된 건물과 색 바랜 간판, 좁은 골목과 낡은계단이 감각적인 카페, 소품 가게, 공방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죠.
특히 신흥시장의 낡고 낮았던 슬레이트 지붕은 2022년, 햇빛을 충분히 들이고 좁은 골목 공간을 최소화한 ETFE 소재 아케이드 클라우드로 재탄생했습니다. 반투명 소재와 LED 조명이 어우러지며 낮에는 하늘과 빛을 품고, 밤에는 초록빛으로 골목을 물들이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했죠. 이 프로젝트는 2024년 서울 건축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해방촌을 생계의 거리에서 문화의 거리로 변화시키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해방촌오거리 일대로 상권이 확대된 것은 루프탑 식당과 카페가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부터입니다. 남산자락의 지리적 특성을 살려 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해방촌만의 독특한 루프탑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국적인 맛집들은 해방촌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젊은 세대와 해외 관광객이 함께 모여 즐기며, 골목마다 활기가 넘치는 오늘날의 해방촌은 과거와 현재, 역사와 트렌드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해방촌은 해방 이후 70년간의 역사를 간직한 삶의 터전입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 젊은 감각의 가게와 예술 공간이 공존하는 공간.
이번 주말, 해방촌의 골목을 걸으며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특별한 하루를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요?
.
YECCO 콘텐츠팀 김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