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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화장품,
아름다움에 힘을 더하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K-뷰티가 있었다고?

by YECCO


맑은쌀 선크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선크림과 쌀의 조합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제품은 미국 아마존 선케어 부문 1위를 차지할 만큼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콘셉트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 화장품 브랜드 조선미녀는 역수출의 대표 사례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올리브영, 국내 화장품 드럭스토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관광 코스로 자리 잡은 올리브영은 K-뷰티의 세계적 인기를 실감 나게 합니다. 더 이상 단순한 유행이 아닌,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죠.


그렇다면, 옛날에도 화장품이 있었을까요?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가꿨을까요?

이번 글을 통해 선조들의 화장문화를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추구미, 전통 미인의 조건은?

KakaoTalk_Photo_2025-09-15-17-43-17 001.jpeg 모란도, ©국립중앙박물관

모란은 크고 화려한 꽃으로, 부귀영화와 천하제일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절세미인을 비유할 때 언급되었습니다. 왕비나 공주의 옷에 모란 무늬가 새겨졌다고 하니, 옛날부터 아름다움은 한 사람의 가치와 존재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던 셈입니다.


만일 마법의 거울이 있었다면, “거울아 거울아, 그 시절에는 누가 제일 고왔니?” 하고 질문했을 겁니다. 하지만 마법의 거울이 없어도, 역사 기록을 통해 전통 미인의 조건을 알 수 있습니다.



미인화

흰 피부, 가느다란 검은 눈썹, 그리고 붉은 볼과 입술이 두드러집니다. 이 세 가지 색은 전통적인 오방색에 해당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색채적인 미까지 갖춘 여인이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부드럽고 곡선적인 형태미가 강조되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5-09-15-17-43-18 002.jpeg ©한희서


영육일치사상(靈肉一致思想)

내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을 동일시한다는 의미로, 인상적 호감을 포함해서 선조들이 청결과 흰 피부를 선호하게 된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 재료로 만든 전통 화장품을 사용해 스스로를 가꾸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뒷받침했던 전통 화장품의 세계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피부 관리는 조두와 미안수

희고 옥 같은 피부를 유지하려면, 청결한 피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피부 속 노폐물을 잘 관리하면 노화를 늦추고, 맑고 깨끗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기초화장은 색조 화장을 하기 전 필요한 단계이므로, 수분을 보충하며 미백을 위해 꾸준히 관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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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서

조두(澡豆)

비누가 전래되기 전의 세안제였습니다. 돌절구를 통해 콩, 팥, 녹두를 곱게 갈아내어 사용했는데, 작은 알갱이들은 모공 속의 때를 씻어내고, 피부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생활 풍속이 담긴『동국세시기』에는 매년 정월 첫 돼지날에 팥가루로 세수하면 희어진다는 풍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왕실과 궁녀들은 팥을 세안용 화장 재료로 즐겨 사용했다고 합니다. 문헌에 따라 콩가루가 언급되기도 합니다.


미안수(美顔水)

색조 화장을 하기 전에 피부를 부드럽게 정돈하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재료는 오이, 수세미, 수박 등 수분이 풍부한 식물에서 채집한 즙이었으며, 제조 방법이 쉬웠기 때문에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밀봉한 뒤, 발효시킨 결과물을 발라서 겨울철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했다고 합니다.




순백의 유혹, 분의 두 얼굴

KakaoTalk_Photo_2025-09-15-17-43-18 005.jpeg ©한희서

분(粉)

피부가 희어 보이도록 얼굴에 바르는 파우더입니다. 백분(白粉)과 색분(色粉)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분은 쌀과 서속을 3:2로 배합하여 만들었으며, 분꽃 씨앗은 분의 원료로 알려졌습니다. 색분은 소나무 꽃가루인 송홧가루, 황토, 백합의 수술가루 등을 첨가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파우더 브러시처럼 풀솜으로 연지첩을 만들어서 얼굴에 발랐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발그레한 볼을 만들어주는 복숭아 색분은 주로 기생들이, 노랑 색분은 사대부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백분은 부착력이 약하고 날비린내가 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부착력을 높이기 위해 얼굴의 솜털을 제거하고, 물이나 기름에 갠 백분을 얼굴에 바른 채로 일정 시간 동안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납과 초를 섞은 연분(鉛粉)이 등장했는데, 효과는 뛰어났지만 납중독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푸르게 변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눈썹은 아이브로우 대신 미묵

눈썹은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은 일자 눈썹과 아치형 눈썹이 유행하듯이, 과거에도 눈썹을 그릴 때 형태를 신경 썼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가정백과이자 생활지침서인 『규합총서』 에는 무려 열 가지의 눈썹 그리는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5-09-15-17-43-19 006.jpeg ©한희서

미묵(眉墨)

송진이 많은 붉은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를 태워 얻은 그을음을 모아 만든 눈썹용 먹으로, 재료에 따라 검은색, 푸른색, 짙은 밤색 등 다양한 색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썹을 그릴 때 주로 목탄을 사용했지만, 상류층 여성들은 기름에 갠 미묵(眉墨)을 사용해 붓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생기를 더해주는 붉은색 포인트, 연지

KakaoTalk_Photo_2025-09-15-17-43-19 007.jpeg ©한희서

연지(臙脂)

입술과 양쪽 볼을 붉게 만들어 생기를 더해주는 립 제품이었습니다. 전통 미인의 조건 중 하나는 삼홍(三紅), 즉 볼과 입술, 손톱이 붉어야 했기 때문에, 연지를 바르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진하고 화려한 화장을 지양하고 자연스러운 미가 선호되어 일반 여성들보다는 기생들이나 궁녀들이 제한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혼례 시 신부의 얼굴에 사용한 붉은색의 연지는 액운을 멀리한다는 오행의 의미가 담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제조하려면 7월경 개화한 붉은 꽃잎을 절구에 찧고 베로 짜서, 그늘진 곳에서 서서히 말려 가루로 만든 뒤, 물을 뿌리고 다시 말리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후 체로 내려 환약처럼 만든 후 보관했다가, 조금씩 개어 발랐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할수록 두벌홍, 세벌홍이라고 불렀는데, 질적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서민들은 대신 붉은 고추를 말린 후 한지에 붙여 사용했습니다. 이외에도 붉은빛을 내는 돌가루, 달걀노른자를 섞어 연지를 제조했습니다.




현대의 K-뷰티와 전통문화의 만남

최근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역시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K-뷰티 제품들이 출시되었습니다.


화협옹주 도자에디션

KakaoTalk_Photo_2025-09-15-17-43-19 008.jpeg ©국가유산청

국립고궁박물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코스맥스그룹은 화협옹주 묘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을 연구하고 전통 화장품 재료의 성분을 분석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왕실의 화장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 출시됐습니다. 전통 재료가 들어갔고, 청화백자를 바탕으로 개발한 전통 도자기 용기는 왕실의 고급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화협옹주 도자에디션은 과학적·인문학적 연구 성과를 담은 의미 있는 결과물로, 동시에 전통문화와 공예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클리오와 페리페라

한국 최초의 색조 전문 화장품 기업 클리오는 국가유산청과 협업해 전통적인 디자인을 담은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제품 판매 수익금 일부를 자연유산 보호를 위해 기부하는 선한 취지 덕분에, 단순한 브랜드 홍보를 넘어 국가유산에 대한 관심까지 함께 높이는 선순환의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한국의 만화 <궁>과 페리페라의 협업 제품도 화제가 되었는데요, 자개 무늬, 노리개 액세서리, 비녀 디자인 브러시 등 전통의 미를 살린 요소들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전통 미인의 조건과 화장품을 들여다보며, 오늘날의 K-뷰티는 혼자서 이루어낸 성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뿌리에는 전통 속 아름다움의 지혜가 있습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활용해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추구했던 삶의 태도는, 단순한 꾸밈을 넘어 아름다움을 향한 선조들의 정성과 문화로 이어졌습니다. 무대 위의 아이돌이 다양한 콘셉트와 메이크업으로 팬들에게 매번 신선함과 기쁨을 주듯, 옛날에도 자신을 가꾸고 표현하는 일은 중요한 문화적 행위였습니다. 과거의 누군가도 지금의 우리처럼 피부를 관리하고, 향수를 뿌리는 등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괜스레 미소 짓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시대를 넘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 속에 담긴 지혜와 철학이 지금 우리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시 전통 화장품의 소중한 가치를 마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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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김혜진. (2025). “우리는 낯선데, 해외선 대세…역수출된 K-뷰티, 왜.". 매일경제.

백진아. (2022). “조선왕실 화장품 ‘화협옹주 도자에디션 출시…현대적으로 재해석". 한강타임즈.

안종숙, 이상은. (2006). 「조선후기 풍속화에 나타난 미용문화의 특성」,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8(3), 73-85.

이현옥, 구양숙. (2012). 「조선후기 미인화에 표현된 얼굴의 미적 특성」, 한국의류산업학회지, 14(6), 919-926.

이경자, 송민정. (1991). 「우리나라 전통 화장문화에 대한 연구」, 「복식」 17, 1991.

조희진. 「화장재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이지선. 「희고 생기 있는 피부를 위하여; 전통 화장재료와 화장법」, 국가유산진흥원.

YTN 사이언스. (2016). 조선 시대 여인들은 어떤 화장품을 사용했을까? [동영상]. YouTube.

국가유산청-㈜클리오, K-컬처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8.22.). 국가유산청.

모란문 문양설명. 문화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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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한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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