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새로운 시작

전통 사회의 연말연시 풍속

by YECCO


연말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해를 돌아봅니다. 달력을 넘기고, 서점에 방문하여 다가오는 해의 다이어리를 괜히 뒤적여 보기도 하지요. 바쁘게 흘러간 일 년의 시간을 정리하고, 다가올 나날을 준비하는 연말연시의 마음가짐은 결코 현대에 이르러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ian-schneider-PAykYb-8Er8-unsplash.jpg ©Ian Schneider

전통 사회의 연말연시는 한 해를 보내는 일과 새해를 맞이하는 일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긴 흐름으로 이어갔습니다. 오늘날 연말은 대개 양력 12월 31일로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달의 흐름(음력)을 따라 생활하면서도, 태양의 움직임(양력, 24절기)으로 계절과 농사의 때를 가늠하곤 했습니다.


때문에 연말연시 역시 두 기준에 기반한 다양한 세시풍속이 다채롭게 어우러지는 시기였는데요. 지금부터 그 흐름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새해를 앞둔 가장 이른 신호, 동지


먼저, 동지(冬至)입니다.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인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지만, 동시에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태양의 부활로 받아들였기에, 동지를 단순한 절기가 아닌, 새로운 시작의 문턱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동지가 작은 설이라는 별명을 지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EBS_식품_0443.png 팥죽 ©한국교육방송공사

동짓날에 먹는 팥죽 또한 이러한 인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붉은 팥은 벽사의 색이었고, 팥죽은 액운을 막고 질병을 예방하는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팥죽에 넣은 새알심은 동지첨지(동지팥죽을 먹으며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설날의 떡국처럼, 동지의 팥죽 또한 나이와 시간을 새로이 갱신하는 음식이었던 셈이지요.


동지의 의미는 음식에만 머물지 않았는데요. 동짓날에는 동지책력이라고 불리는 새 달력이 만들어져 반포되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책력.jpeg 책력 ©국립한글박물관

『해동 죽지』에는 “옛 풍속에 동짓날 책력을 내려 준다. 시골과 여항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은 서로 주고받는데, 그것을 ‘동지책력(冬至冊曆)’이라고 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열양세시기』에는 “관상감에서 명년(明年)의 책력을 진상하면 임금께서 친히 내려 주신다. (중략) 종이의 품질과 꾸민 모양에 따라 차별을 둔다. 서울 관서의 각 부처에서는 미리 종이를 마련했다가 관상감에 맡겨 인쇄토록 하고, 장관(長官)과 관료[朗僚]들에게 차등 있게 나누어주어, 고향 친지와 이웃에게 선물로 보낼 수 있게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 제작과 반포가 관상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국가적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절기와 농사의 시기를 담은 책력은 한 해의 질서를 담은 도구였기에, 이를 나누는 일은 곧 다가올 시간을 공동체와 함께 준비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입니다.




섣달그믐, 저무는 해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동지가 지나면, 음력 12월인 섣달에 이르게 됩니다. '설이 드는 달'이라는 이름처럼, 섣달은 본격적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marcus-dall-col-4ulffa6qoKA-unsplash.jpg 그믐달 ©Marcus Dall Col

특히 그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은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는데요.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는 속담은 이날이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흩어진 것을 거두고 관계를 매듭짓는 날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일을 삼가고, 빚을 갚고 빌린 물건을 돌려주며, 한 해부터 제대로 마무리한 셈입니다.


전통적으로 섣달그믐 밤에는 묵은세배를 올리곤 했습니다. 오늘날 설날 아침의 세배에만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풍습일 수도 있지만, 옛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기 전, 저무는 해에 먼저 마지막 인사를 올렸습니다. 끝을 제대로 보내야, 비로소 새 시작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지요. 이와 더불어 만둣국을 올려 조상께 감사의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전해지는데요, 이는 만두차례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날 밤, 사람들은 쉽게 잠들지 않았습니다. 섣달그믐 밤을 지새우는 풍습은 수세(守歲)라고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jpg
국립민속박물관 김경자 씨 댁 설날_수세(守歲).jpg
수세 풍속 ©국립민속박물관

『동국세시기』의 기록 “섣달그믐날 밤 인가에서는 방, 마루, 다락, 곳간, 문간, 뒷간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 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불을 켜놓아서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를 수세라 한다.”를 통해 해가 바뀌는 경계에서,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음으로써, 지나간 해와 다가오는 해를 끊지 않고 이어 맞이하려고 했던 전통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침내 맞이하는 정월 초하루


새해가 밝으면 비로소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궁궐에서는 정조하례가 열려 문무백관이 임금에게 신년인사를 올렸으며, 민간에서는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한 해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풍속화설날_PS0100200100101085200000_0.jpg 설날 풍속화 ©국립민속박물관


세화 역시 음력 정초의 풍습입니다. 세화(歲畵)는 새해를 맞아 문에 붙이던 그림으로, 액운을 막고 복을 부르기 위한 상징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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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곡병 세화 ©전주역사박물관 / 세화판 ©통영시립박물관

기록들에 따르면, 궁중에서는 도화서에서 제작한 세화를 하사하였으며, 민간에서는 호랑이, 닭, 처용과 같이 벽사의 힘을 지닌 존재 혹은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그림을 문에 붙였다고 합니다. 세화는 연화장이자 부적이었고, 새해의 바람을 시각적으로 걸어두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처럼 전통 사회의 연말연시는 동지를 전후로 시작하여 섣달그믐을 거쳐 새해 아침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의 의례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이어지는 전통사회의 연말연시에서, 끝을 정성껏 보내는 일과 시작을 성심껏 맞이하는 일은, 결코 분리되지 않았지요.


우리는 다시 한 해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도, 바쁘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해를 놓아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전통 사회의 연말연시가 그랬듯, 새로운 시간은 지나온 시간을 정성껏 보내는 마음 위에서 이어질 것이지요.

aamir-suhail-ATlRqTCbvV4-unsplash.jpg ©Aamir Suhail

2026년의 시작이 각자의 삶 속에서 단단하고 다정하게 펼쳐지기를,

2025년의 끝자락에서, 여러분의 새로운 출발을 조용히 응원합니다.




[참고]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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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콘텐츠팀 심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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