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육아휴직 법안> 본회의 통과에 부쳐-아내편
임신 중 육아휴직 가능해져. 남녀고용평등법 29일 본회의 통과.
결국 앞선 남편의 글은 성지가 되었다.
4월 29일 당일 아침에, 법사위가 급작스럽게 미뤄졌다는 소식을 듣고 잠깐 절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같은 날 늦은 저녁에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를 함께 관람할 수 있었다.
다른 관심을 많이 받는 법안 사이에서 언급 한 번 되지 않고 통과되었지만, 그래도 결국에 통과되는구나 싶은 감격과 실감이 잘 나지 않는 비현실적 감각 사이 어딘가에서, 지난 반년 여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이 법안의 실체를 알게 되었던 때에는 우린 아직 경험이 없는 신혼부부였다.
임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가지고 있을 뿐 해본 적이 없기도 했고, 입법에 대해서도 관심은 많았지만 법안 처리 과정은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발의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어느 정도 협의 끝에 통과가 되리라 생각했을 뿐 그렇게 폐기되는 법안이 많은 것은 몰랐고, 임신해도 어떻게든 직장과 아이를 지키도록 제도가 되어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직장인이 임신해서 아이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경험했고, 그래서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례를 찾아보고, 국회의원실에 문의를 하고, 뉴스 인터뷰를 하고, 맘 카페와 커뮤니티를 통해 참여를 독려하고, 팟캐스트도 녹음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직장맘의 삶에 대해서도, 그리고 법안 통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물론 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첫 번째 시리즈를 마감하는 마음으로, 그 깨달음을 포함한 각자의 회고를 남겨보려고 한다.
어떻게든 빠르게 처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닐 때, 감사하게도 법안을 발의했던 한정애 의원실에서 법안의 처리과정에 대해서 안내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 소위, 환노위 전체 회의를 거쳐, 법사위에 이르기까지 법안이 하나의 산을 넘을 때마다 새롭게 공부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속 배워나갔다. 그렇게 본회의 통과를 할 때까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의 러닝 메이트로 함께 달리고 나니, 이제는 하나의 법안이 탄생해서 시행될 때까지 모든 스텝에 대해 배운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제는 이 프로젝트의 시작에 우리가 가졌던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 일반인인 우리도 법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법을 바꿀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두 부부뿐 아니라 수많은 분들의 기대와 염원이 큰 역할을 했다. 일정을 알아보고 연락해 달라고 독려글을 올리거나 연락을 한 건 주로 나였지만, 나중에는 내가 올린 글마다 댓글을 새로 달아주시며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나타나셨다. 다들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이 법안에 대한 간절함은 동일했기에, 길을 보여주니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해주셨다. 사실 2월 달 노동 소위에서 언급조차 되지 못하고 세 번째 상정 후 계류되었을 때, 포기하고 싶던 마음을 다시금 다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응원 덕분이었다. 예전에 올린 글마다 "이제 봐서 아쉽다"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시는 분들을 보고, 여기까지 열심히 해봤으니 같이 해보자는 마음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의지는 댓글로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환노위뿐 아니라 결국 법사위 위원들의 보좌관으로부터도 "전화가 너무 많이 오네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에요."라는 회신을 듣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곧이어 수많은 계류법안 중에서 먼저 처리될 법안 리스트 (50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일면식도 없고 누군지도 서로 몰랐지만, 법안 통과에 대해서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연대했다. 그리고 그 연대로 우리는 법안 통과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둬냈다. 다시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분들이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함께라는 것이 이렇게 든든하고 힘이 된다는 걸 깨달을 수 있던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도 일반인이 법안 통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식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의견을 전달할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닿게 하려고 노력할 뿐, 실제 그것이 전해지긴 했는지, 어떤 내용으로 전달되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기에 답답하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게다가 똑같은 내용으로 여러 국회의원실에 여러 번 전화하는 것이 민망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베이비뉴스 인터뷰도 하고 팟캐스트도 녹음하면서 여러 길을 강구했지만, 결국에 남은 선택지는 전화뿐이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독려하고 또 스스로도 계속 전화를 걸긴 했지만, 그 지난한 과정은 (결과를 모르던 때에는 더더욱)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귀찮음"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보좌관이 친절하게 반응하고 들어줄 때가 더 좋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다시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은 귀찮음이 보좌관의 말투에 조금이라도 묻어나는 그때, 그게 기분 좋은 반응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이 진행되는 데에는 긍정적인 신호임을 알게 되었다. 의원실의 적당한 호감을 얻을 때보다는 귀찮게 느껴질 때, 더 적극적으로 해결을 위해 나서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국회도 사람이 일하는 곳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안 될 일은 없다. 특히 이런 민생법안에 대해선 말이다. 물론 위의 한정애 의원실처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법안에 대해서는, 혹은 훌륭하신 분들은 관심 없는 민생법안에 대해서도 좋은 반응을 보여주시고 또 추진도 하실 수 있겠지만, 각 위원회에 올라오는 수백 건의 법안 중 눈에 띄지 않는 법안을 처리하도록 만드는 데는, 호감 섞인 무관심보단 귀찮음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사실을 깨닫고는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그다지 예쁘지 않은) 이치를 알아버린 느낌이라고 할까.
너를 위해 저 별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고, 법을 바꿨네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내기 전, 매일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었었다. "이 시간 너의 맘속에"라는 곡은 그중 한 곡이었다. 아이를 보내고 분노와 절망의 에너지를 모아 법안 통과에 힘을 쏟기 시작했을 때,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아기천사가 다시 찾아온다면, 이렇게 길러야겠다. 주어진 (법과 제도를 포함한)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 그래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과 그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쓰는 용기를 가진 그런 사람으로 키워야겠다. 모든 일에 불평하는 부적응자라는 말이 아니라, 무엇이 바른 방향인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 방향으로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그렇게 자라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을 엄마로 살기 위해 하루하루 맘을 다잡던 4월의 어느 날, 결국 법이 바뀌었다. 그러니 이제는 나중에 태어날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그 마음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너를 위해 엄마 아빠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다음에는 정부의 법안 공포와 6개월의 시행 예고, 그리고 11월 경의 시행이 남아있다. 기간은 아직 남았지만, 예상되는 미래는 더 이상 불안을 안겨주지 못하기에, 다들 현재의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민생법안이 통과되어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 이 글은 브런치북 발행을 위해 오늘도맑음 작가의 계정에서 옮겨진 글이며,
원글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itssunnytoday/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