育兒로 育我하는 성장육아 (3)
육아휴직을 통해 나는 본격적인 "가정주부", "주양육자"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본래 집청소와 가사일을 좋아하였기에 어렵지 않게 임할 수 있었던 온갖 집안일과 주부역할. 결혼 전에도 집에서 이것저것 가사를 많이 도왔던 아들의 모습이었기에 괴리감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스스로를 실감했다. 어찌 보면 '가정주부로의 귀의'라는 말이 어울릴 법.
사실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쉽지가 않은 집안일이다. 누구 하나 그 고생을 알아주지 않고, 티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녹봉도 주어지지 않는다. 열정페이로 임하는 집안일은 주양육자로 임하는 나의 기본적인 태도와 마인드가 필요한 업무였다.
그러면서 엄마의 삶을, 휴직으로 4년을 보낸 아내의 삶을 가슴 깊이 담아두게 되었다. '헌신'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고단하고 숭고한 모습. 나의 삶 보다는 가족의 삶에 중심을 둔 엄마들의 마음을 느끼며 그 길을 조금씩 걸어가게 되었다, 엄마의 삶을.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나의 삶"도 만만치 않게 중요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내 육아의 모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주양육자의 모습은 "헌신"이 아니었다. "즐거움"이었다. 나도 즐겁고 아이들도 즐거워야 했다. 아니, 내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다고 생각했다. 즐겁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음을 알기에 내가 일상을 즐겨야 했다.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고 아이들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빠는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나는 휴직 중이고 언젠가 사회로 돌아가야 하기에 그 감각을 유지하는 육아휴직의 삶을 지향했다. 느즈막하게 기상을 하거나 밤늦게까지 여가를 즐기면서 소중한 시간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주부우울증, 산후우울증, 경단녀의 애환증에 걸리는 분들이 겪는 많은 이유가 "나의 존재"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이러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나?'
육아의 중심은 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아이를 위해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의 기분에만 맞추려고 나를 소모시키는 행동들이 결국은 나를 갉아먹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이러니까 아빠들은 모성애가 없지.'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양육자도 자신의 삶이 있는 주체이다. 그리고 육아의 행동 주체는 부모이다.
부모가 부모다운 기준으로 부모의 육아를 해야 아이는 성장한다.
결국 육아는 부모인 내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기준을 정한 것이고, 그것이 "내가 즐거운"육아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새벽기상을 하는 이유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잠을 자고 부랴부랴 분주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인 "주양육자"의 터전으로 출근하는 것 일뿐 바뀌는 것은 없다고 계속 의미를 부여했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육아선배님들의 육아서들을 통해서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을 채웠고, 인생선배님들의 인생책들을 통해서 부족한 나를 채웠다.
새벽달리기를 하면서 새벽의 공기로 체력을 만들었고, 삼시세끼를 준비하면서 아이들과 아내의 먹거리를 만들었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공격수는 100번의 찬스에서 1골을 넣으면 환대를 받고, 수비수는 100번의 슈팅을 막다가 1골을 먹으면 비난을 받는다.
내가 일반적인 아빠였다면 어쩌다가 하는 식사 한번에 "따봉"세례를 받겠지만, 매일 준비하는 식사는 "당연한"일상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일상이 즐거워야 했다. 당연하게 찾아오는 새벽이 즐거워야 했고, 당연하게 다가오는 식사준비시간이 즐거워야 했다.
당연하게 나의 일상이 즐겁고 행복해야했다. 그래야 그 에너지가 우리 집에 잘 전달이 되기에.
관성이라는 말이 있다. (관성 : 물체가 외부로부터 힘을 받지 않을 때 처음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비유할 때 관성의 법칙을 얘기한다.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습성으로 또 무언가를 포기했어요."
그래서 나는 관성을 좋은 의미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좋은 상태를 꾸준히 유지한다면 어느 순간 방심을 하더라도 다시 본연의 좋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관성을 만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내 상태를 좋은 습관에 길들여질 수 있도록 매일 꾸준히 노력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기상을 실천했고 유지하며 즐기고 있다.
그 시간에는 달리기를 하고, 독서를 하며, 글을 쓴다.
내 일상을 플래너에 적으면서 기록하고 아이의 일상을 점검한다.
"아빠의 육아"라는 일상을 맞이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바로 내 모습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자주 보게 될 내 모습을 좋은 모습으로 가꾸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양육하는 육아(育我)를 하게 되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자주 비춰지는 내 행동을 점검하게도 되었다. 그렇게 아이를 양육하는 육아(育兒)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아이와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주양육자의 모습에 담긴 의미가 왜 "즐거움"인지, 나는 매일을 육아하면서 느끼고 있다.
항상 새로운 육아의 하루에서 내가 즐겁지 않으면 쉽지 않은 길임을 매일매일 온몸과 마음으로 체감하고 있다.
김창옥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건강한 이기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내 삶을 즐기게 된다. 그 즐거움은 주위로 계속 번지게 된다. 가까운 사람인 가족에게 더 많이 전달되는 건강한 즐거움이다. 그렇게 나는 건강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매일을 맞이한다.
아빠육아의 근간은 아빠의 즐거움임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결국 아이를 성장하는 육아로 내가 성장하는 육아를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육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