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동, 여기 인천 맞나요?
인천의 끝자락, 부천의 시작점 그사이에 일신동이 있다. 일신동은 1946년 해방 이후 생긴 이름으로,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일신동의 동네 면적은 50% 정도가 녹지와 군부대로 이루어져 있어 역설적이게도 크지만 작은 동네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거주하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일신동은 인천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인천 시내보다 부천과 더 가깝다. 그렇다 보니 인천을 들어가기 위한 관문, 즉 거쳐 가는 동네쯤으로 사람들은 일신동을 인식하는 것 같다.
일신동 주민들은 ‘조용한 동네, 부대가 있는 동네, 고속도로(송내IC) 시작점인 동네’ 정도로 동네를 표현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동네다. 정겨운 골목과 푸근한 시장의 모습을 가진 곳이다. 멀지 않은 부평역, 송내역 일대만 봐도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었지만, 일신동은 여전한 골목길의 모습, 시장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골목 안에 있는 오래된 수선집과 방앗간, 빵집 등은 일신동의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천천히 이곳 일신동에서의 추억을 되짚어보고 우리 동네는 어떻게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겠다.
추억이 깃든 골목길
일신동 골목길 곳곳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그대로 남아있다. 변함없는 일신동 골목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여기는 유리네였고, 저기는 수빈이네였는데.”
오래된 단독주택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되어준다. 어린 시절 뽑기를 하고 100원짜리 불량식품을 사 먹었던 학교 앞 문방구는 더이상 없다. 하지만 학교 앞의 가게들은 늘 따뜻하고 특유의 정감 있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맞이해준다. 일신동의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일신초는 1985년 개교했다. 각자의 어린 시절 추억을 이곳에서 채워나가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기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일신동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군생활을 오래 하신 아버지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군부대가 있는 우리 동네는 교통이 발달하고, 코로나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군복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 자주 보이는 곳이었다. 일신시장 옆 고깃집과 술집이 있는 골목은 아빠의 단골집이 가득한 곳이다. 또 군인아파트에 거주하는 군인 아저씨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서 골목으로 자주 향하곤 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그 골목에 가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는 마음으로 졸졸 아빠를 따라갔었다. 그때의 꼬마가 지금은 일신동 골목 속의 같은 장소에서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변한 것은 별로 없다. 단지 그곳에서 사람들의 추억은 쌓이고, 모두 열심히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뿐. 가볍게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곳, 변함없이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시장 옆 바로 그 골목이 하나의 위안처럼 느껴진다.
일신시장을 아시나요?
일신동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일신시장은 이 동네 사람들의 오랜 안식처 같은 곳이다. 1980년대 부일종합시장 인근에 자연스럽게 일신시장이 조성되었는데, 지금은 부일종합시장과 일신종합시장을 동일시 부르고 있다. 현재는 전통시장으로 등록되어 있고 다양한 먹거리를 볼 수 있는 친근한 시장이다.
어릴 때 강화도에 살던 외할머니께서 겨울방학이면 집으로 오셨다. 엄마는 외할머니께서 농사일은 잠시 쉬고 편히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모셔온 것이었다. 하지만 늘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던 할머니는 시장에 나가 나물을 내다 팔곤 했다. 그때만 해도 일신시장은 할머니들이 줄지어 앉아서 채소와 나물을 앞에 두고 팔던 시골의 오일장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은 점포 형태로 정리가 되었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간판과 상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시장을 걸을 때면 오래된 식자재 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온종일 시장에 앉아서 고작 4,000원을 벌었으면서, 아마도 저런 곳에서 2,000원짜리 당면만두를 사왔을 외할머니. 어린 손주들을 생각하며 당면만두가 든 검은 비닐 봉다리를 품에 안고 돌아왔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어린 마음에 차고 식은 만두는 싫다고, 짜장면을 사달라고 떼썼던 시절. 그때 할머니의 사랑을 잊지 말라는 듯, 어릴 적 기억을 또렷하게 되살려주는 일신시장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에 왠지 모를 고마움을 느낀다.
15년째 한자리를 지키는 일신시장 '원조왕족발'
15년째 일신시장 골목에서 족발 장사를 하는 '원조 왕족발'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시장에 대해 여쭤보니, 일신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신다.
“장사가 안돼서 여기 시장 가게들끼리 나눠 먹기 식이야.”
골목 상권도 시장 안 좁은 상가길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점포들은 많아 봐야 홀 손님이 하루 서너 팀이라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참 귀한 요즘이라 했다.
그래도 최근 젊은 청년들이 노포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니까 주인 아주머니는 신기해하셨다. 예전의 일신시장은 군인들의 왕래가 잦던 곳이다. 저녁이면 시장 안의 가게 곳곳을 군인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근처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생기고 교통이 발달하다 보니 이제 군인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코로나도 한몫했다.
그래도 한번은 일신동에서 군생활을 했던 청년이 어머니를 모시고 안산에서부터 찾아온 적이 있다고 했다. 군인의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군생활 시절 이곳에 와서 먹었던 그 족발 맛을 잊지 못해서 다시 먼 길을 찾아왔다던 청년. 당시를 회상하며 뿌듯해하던 아주머니의 미소가 눈에 선하다. 일신동은 그런 곳이다. 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추억을 안고 사는 이들을 맞이해준다. 일신시장, 그리고 일신동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이곳을 거쳐 갔던 사람들에게도 따뜻하고 푸근한 안식처 같은 곳이지 않을까?
일신동,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다.
현재도 우리 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일신동 골목 상권이 사랑받고 있다. 여전히 젊은이들보다 어른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지만, 골목 속 인심 가득한 가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꾸준히 찾는 골목이다. 예전엔 조금은 낙후되어 보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이 동네가 부끄러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저곳을 소개하며 지인들을 데려올 만큼 애정을 쏟는 동네가 되었다. 골목상권 외에도 주택이 밀집된 골목 곳곳을 들여다보면 노후화된 벽에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 넣는 등 동네의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있는 주민들의 노력도 보인다.
하지만 동네가 안고 있는 문제도 있다. 바로 군부대 이전의 문제이다. 동네 발전에 규제가 많은 현재도 불만이 있는데 또 다른 군부대가 들어온다고 하니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이다. 일신동은 발전이 필요한 동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마음은 반반이다. 지금 이대로도 좋고, 변화된 모습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고 그저 변모하지 못하고 뒤처진 동네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보다 살기 좋은 동네가 또 있을까 싶다.
일신동을 이야기하면서 일신동의 새로운 모습들을 또 발견하게 되었다. 일신동 구석구석을 따뜻한 마음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일신동은 어떤 모습으로든 이름처럼 하루하루가 새로워지는 동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