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시간을 걷다

눈으로 담은 부여의 정취, 그리고 그곳의 맛.

by 예달



백마강을 가로지르는 황포돛배


꽤나 생소한 여행지 부여에 왔다. 여행지를 정할 때 가고 싶은 하나의 장소를 중심으로 주변의 가볼 만한 곳을 같이 기억해 두는 편인데, 나에게 부여는 중심보다는 주변이었다. 그저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지역 부여. 그러나 이런 생각을 코웃음이라도 치듯 부여는 반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호기심을 갖고 다가가니 역사가 보였고 멋진 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여에 도착하여 바로 백마강 구드래선착장으로 향하여 황포돛배 승선권을 끊었다. 역사의 도시 부여의 유람선은 그 모습도 평범하지 않다. 황포돛배는 돛배 형상을 한 작은 유람선이다. 구드래조각공원을 구경하고 배 시간에 맞춰 돌아와 안내에 따라 황포돛배에 탑승했다. 성인 10,000원으로 고란사선착장까지 갔다가 다시 구드래선착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코스다. 왕복 티켓이기에 백마강을 따라 정취를 느끼고 바로 돌아오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었지만, 부소산성 후문이 있는 고란사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이끌리듯 고란사를 향해, 낙화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의자왕 삼천궁녀 설화 속 그곳, 낙화암


낙화암은 유명한 삼천궁녀 이야기 속의 장소다. 의자왕 때 삼천궁녀가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내 딴엔 그냥 거짓말 같은 설화라고 생각했지만 이 역시 슬픈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백제가 멸망할 때 화를 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궁인들이 남의 손에는 죽지 않겠다며 부여성 북쪽 모퉁이 큰 바위, 지금의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여 원래는 '타사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이 궁인들을 꽃에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으로 바꾸어 불렀다. 충절을 지킨 우리 조상의 혼이 잠든 곳이라니 멋진 풍경에 슬픈 감정이 대비되어 비쳤다.


낙화암 바로 위에는 이곳에서 목숨을 버린 궁인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새워진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백화정 앞에서 바라본 백마강의 풍경은 마치 물감으로 색칠한 그림 같았다. 충분히 경치를 감상하고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고란사를 들러서 소원을 빌며 커다란 종을 울려봤다. 이곳에서는 먹으면 3년씩 젊어져 할아버지가 약수를 먹고 아기로 변했다는 전설의 고란약수도 맛볼 수 있다. (먹고 올 걸 그랬나 싶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 궁남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은 바로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인공정원 궁남지이다. 백제 무왕 때 궁의 남쪽에 만들었기에 이름이 궁남지라고 하는데 실제로 가보면 백제 시대의 풍요로운 시기가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경지이며 버드나무가 흩날리는 연꽃길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실제로 좁은 길 사이사이에 연지가 있어서 오솔길을 재미있게 걸어 다닐 수 있는데, 거울 같은 연못에 비치는 버드나무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름 모를 수생식물들과 옹기종기 무리를 지어 다니는 수많은 오리들, 그리고 노을 지는 궁남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일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뭔지 모를 여유가 풍긴다. 우리 동네는 걸어 나가면 회색 빛 높은 건물뿐인데, 반대로 조금만 걸으면 그림 같은 산책로가 있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중앙에 있는 포룡정을 기준으로 한 바퀴 돌면 먼 곳까지 가지 않고도 정원을 다 둘러볼 수 있는데, 포룡정이 보이는 곳에 있는 기다란 그네를 타면서 볼 수 있는 풍경 또한 황홀하다. 노을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 주황빛 그라데이션으로 물든 하늘과 연못 덕에 동화 같은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지고야 말았다. 식물과 동물이 공생하는 청정지역 궁남지, 연인과 함께하는 산책길로 정말 더할 나위 없다.



저녁 어둠 속 불을 밝힌 왕곰탕식당


저녁 6시밖에 안 되었지만 부여 시내는 어두컴컴하다. 보통 점심장사만 하고 문을 닫는 곳이 많아서, 번화가의 술집 말고는 저녁을 먹을만한 식당이 별로 없다. 머물던 숙소 주인이 남기고 간 쪽지 속 쓰여있던 이곳 왕곰탕식당을 검색해 보니 고맙게도 오후 8시 30분까지 영업 중이었다. 시금치를 넣어 먹는 특별한 곰탕이 있는 곳이라 하여 지체 없이 찾아갔다. 어두운 시장 안에 왕곰탕식당의 간판만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내부에는 술을 한잔 곁들이는 아저씨들, 외식 중인 가족들, 포장하러 온 손님으로 북적였다.


꼬리곰탕, 도가니탕, 양탕, 곰탕의 메뉴가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곰탕을 주문했다. (물론 소주도 1병 추가요.) 수육 종류도 꼬리수육, 도가니수육, 양수육, 일반수육으로 다양했다. 뽀얀 육수의 곰탕이 나오면 소금으로 밑간을 한 뒤 취향에 맞게 다진 양념과 시금치를 넣어 먹으면 된다. 시금치에 양념이 되어 있어서 이걸 넣어 먹으면 국물이 빨갛게 변하여 어느 정도 매콤한 맛도 살아난다. 담백하고 뜨끈한 육수를 계속 마시다 보니 추웠던 몸이 어느새 사르르 녹았다. 반찬 중에는 고기전용소스 이외에도 갈치속젓이 있어서 야들야들한 고기를 더 감칠맛 있게 즐길 수 있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사비로108번길 13

영업시간: 10:30 - 20:30, 14:30 - 17:00 B.T, 일요일 휴무

전화번호: 041-835-3243

곰탕 10,000원, 수육 28,000원




여행자, 원주민 모두가 사랑하는 30년 전통 장원막국수


부여 여행의 끝은 바로 장원막국수, 약 3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사랑받고 있는 부여의 대표 막국수집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았다던 어느 블로거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외관을 전부 찍어놓아 단골임을 인증했는데, 이전에 느낀 맛이 한결같기에 계절이 여러 번 변해도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기대를 안고 오전 일찍 장원막국수를 찾았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집 같은 식당의 모습 그리고 야외 큰 평상을 보니 왠지 오래된 할머니네에 놀러 온 기분이었다.


메뉴는 단 두 개, 메밀막국수와 편육이다. 보통은 두 가지 메뉴를 함께 주문하여 먹는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바닥에 앉아있으니 추위가 저절로 잊혔다. 음식은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나왔다. 막국수는 평소에 알던 비주얼이 아니었다. 오이고명이 가득 올라가 있고 김가루가 조금 뿌려져 있다. 면발은 냉모밀과 냉면이 합쳐진 듯한 모습이랄까? 약간은 생소한 모습이다. 뜨끈한 온돌방에서 먹는 시원한 막국수라니 전두엽이 짜릿했다. 본격적으로 메밀면을 풀어주고 맛보니 면은 담백한데 육수에서는 시큼한 식초맛이 나는 게 특이했는데, 따끈따끈한 편육을 함께 싸 먹으니 그 진가가 돋보였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편육은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여 막국수와 잘 어우러졌다. 특별한 막국수와 수육을 먹고 싶다면 꼭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곳만의 맛은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 나에게 여행은 멋.. 아니, 사실 맛이다 :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나루터로62번길 20

매일 11:00 - 17:00

041-835-6561

메밀막국수 8,000원, 편육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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