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아이가 삿대질을 받는다.

부모의 기색은 어떨까요?

by 예담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세차게 퍼붓던 날이었다. 어두컴컴해진 한낮의 오후, 무섭게 내리는 비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행여 아이들이 비 맞고 오진 않을까. 미끄러운데 지하주차장에서 뛰지 말아야 할 텐데. 결석이 많을까...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의 탑을 쌓았다.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던 나는 날씨가 궂으면 아이들이 오가는 불편함이 걱정되었고, 화창하면 화창 한대로 밖에서 뛰어놀게 하지 못함에 마음 한구석이 미안하고 안쓰러웠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기색을 살피며 다음 행동을 결정하곤 한다.


예컨대, 친구들끼리 장난치며 놀다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엄마의 표정이 놀람과 화로 일그러진다면 아이는 알게 되는 것이다. 놀다가 실수로라도 상처가 나면 놀랄 일이고 화를 내야 한다고. 그림을 그리다 물감이 옷에 묻었을 때 계속해서 그림에 몰입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옷에 묻은 물감을 지우러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흐름이 깨지는 아이가 있다. 에헤이~ 그 정도면 다행. 안 지워지면 어쩌나 걱정과 불안 속에 갇혀 창의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도 더러 있다. 놀이터 바닥에 철퍼덕 앉아도 될지 엄마에게 물어봐야 하는 아이도 있는 세상이니 뭐!말 다했다.






수업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말끔하게 보송보송 어깨 끝만 젖은 아이도 있는가 하면, 우산을 쓰고도 옷 전체가 빗물로 반쯤 샤워한 채 배시시 웃으며 들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종알종알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그래서 오늘 무슨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앞다투어 이야기하며 볼이 복숭아가 된 아이들은 참 싱그럽다.

마치 한여름의 달큼한 복숭아처럼.


"오늘 아침에 힘들지 않았어? 아침엔 더 많이 내렸잖아. 비바람도 거세고. " "네네" 하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차들이 달리며 몸에 빗물이 튀고 바람 때문에 우산이 뒤집어졌다며 앞다투어 이야기보따리를 쏟아내는데! 그 중 가장 어린 한 아이가 불쑥 한마디를 내뱉는다. 아주 무심하게. "선생님, 왜 힘들어요? 우산도 있는데." 비바람이 거세지자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가 지하주차장에 내려주거나, 문 앞까지 데려다주거나 것도 아님 결석을 하거나 셋 중 하나였는데. 세 개의 답안 모두 비켜나간, 그 한 아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렸었던...


비바람을 뚫고 유치원차에서 혼자 내려 터벅터벅 걸어왔다. 제힘으론 어림도 없이 불어 대는 비바람에 우산을 부여잡고 씨름했을 아이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늘 그런 일상이 아무렇지 않은 아이. 너무나 순하고 웃음이 말갛던 아이. 힘들지 않았냐고 고단함을 미리 예단해 짠해했던 나의 마음이 순간 부끄러워 말문이 막혔다.






아이의 부모는 맞벌이였지만, 고단함에 찌들어 지쳐 보이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밝고 여유 있는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 속에 그들의 삶의 태도가 묻어 나왔다.


내가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과 산책을 나왔을 때 종종 마주쳤던 그들은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케 했고 다음은 주위를 훑으며 곁에 있을 아이의 존재를 찾게 했고 그 다음부터는 부러움과 따뜻함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왜냐하면 부부는 늦은 저녁시간 두 손 꼭 잡고 밤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모습이었고, 간혹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아이들에 오롯이 집중하기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자유로움 속에 사랑이 잘 반죽되어 숙성된 가족 같달까. 그 자유로운 표정과 여유로운 편안함이 어디서 흘러나오는 건지 문득 궁금했다. 맞벌이 부부로 퇴근 후 시간이 분명 분주할 터인데. 왜? 게다가 아들 둘인데? 비슷한 또래를 키우고 있었건만 나의 저녁은 늘 바쁘고 동동거리며 몸도 마음도 소란했으므로.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종종 아이의 교육문제로 상담전화를 했고, 한결같이 감사함을 표했다. 교육에 관한 조언을 하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되려 그녀의 삶의 태도를 배워나갔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7살 5살 두 살 터울의 남자아이들은 노상 놀이터에서 엄마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며 죽을 치곤 했는데, 그날은 쉬는 날이어서 엄마가 같이 있었던 날이었다. 신나게 뛰어놀다 소변이 급했던 아이들이 커뮤니티센터로 달려가다 발을 동동 구르더니 방향을 휙 틀어 경비실로 향한다. 아마도 너무나 급했나 보다.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엄마이고, 기대지 않고 주도하는 습관이 잡혀있는 아이이다 보니 돌발상황에도 묻지 않고 급한 용무도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찾는 것이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데 경비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첫째는 바지춤을 채 여미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나오고 그 뒤론 둘째도 황급히 뒤따르는데 경비아저씨의 호통이 아이들의 뒤통수를 찌른다. '그럴 수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호통이 삿대질과 함께 목소리가 격앙되고 험한 소리도 섞인다. 아이들은 그게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다. 뛰어나와 놀이터로 쏜살같이 향하는 아이를 붙들고 "무슨 일이 있었니?"라고 묻자, 한놈은 형이 오줌을 변기에 튀게 눠서 혼났다고 하고, 또 한놈은 동생이 그랬다고 한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혼이 난 건지, 누가 혼이 난 건지 대상과 이유조차 모르는 터였다. 감정이 앞섰던 아저씨의 말투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했다. 아니 그게 한대 쥐어박으며 웃으면 그뿐일 것 같은데. 감정을 담아서 쏘아보며 아이에게 상처를 줄 일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단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하다 빵집으로 갔다. (아... 이게 다르구나 싶었던 ) 빵을 한 봉지 가득 담아 들고 경비실로 가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경비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여서 공손히 인사를 하고, 고생하신다고 빵과 웃음을 함께 건네드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고 한다.


"실은 조금 전 화장실 빌려 쓴 두 남자아이가 저희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급해서 관리소 건물로 뛰어가다 말고 경비실로 갔나 봅니다. 사용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화장실이 너무 급하면 종종 달려올 것 같은데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화단에 그냥 누게 하는 것보단 근처 가까운 곳으로 뛰어가 부탁하는 게 맞다고 가르쳐서인지 아이들이 종종 폐를 끼칠 것 같습니다. 항상 수고 많으시지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뒤로 새 학기가 되면 학부모 설명회를 할 때마다 첫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많은 돌발상황이 일어나곤 한다. 그 상황에 엄마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삶의 결이 달라질 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보통의 엄마라면, 아니 나였다 해도, 경비실로 가서 물었을 것 같다. 무슨 일로 우리 아이들이 혼나는 건지 묻고 싶을 테니까. 혹은 다혈질 엄마라면 더 보태어, "아니 우리 관리비로 월급 받으시면서 아이 화장실 쓰는 것도 그렇게 혼내시면 어쩌냐" 목소리를 드높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곤 입주민 카페에서 경비의 행동을 마녀 사냥하며 키보드를 두드릴지도... 엄마는 정의로운 기분에 휩싸여 잠깐 마음이 풀릴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아이는 어떨까? 공공연하게 알려지면 아이가 느꼈던 온도와는 달리 뜨거워져버린 상황이 오히려 아이를 더 짓누를 수도 있을 테다. 경비실 근처에 가기도 뭣할 테고, 앞으로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리야 만무하다.


엄마의 바른 소리? 덕분에 아이는 껄끄러운 무언가가 자유 속에서 자꾸 부딪힌다.


엄마가 풍기는 냄새, 삶에 대한 태도, 마음가짐, 말투, 그것들은 어떤 특별한 날에 멋들어지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쌓인다. 티브이 뒤쪽에 자욱이 쌓여있는 먼지들처럼 알지도 못하는 채 그렇게 쌓여만 간다. 시간이 무수히 흐르고 나면 쌓였던 먼지들이 손으로 눈으로 확연히 보인다. 왜 진작에 안 닦았을까. 들여다볼 생각도 안 했을까? 그런 작디작지만 깊은 날것!


엄마의 지혜.


육아서를 아무리 읽어도 탁! 하고 무릎을 치며 감동과 반성을 순간에 휘몰아치곤 다시 잊고 생활 속에 적용하지 못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육아서를 접하지 않아도 삶에 대한 태도 속에 책 보다 빛나는 지혜가 묻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순간 눈에 힘을 주며 동그랗게 뜨지 않고, 우아하고 온화하게 빵집으로 걸어갈 수 있었을지 되돌아본다.


나라면... 나라면... 내 오장육부보다 귀한 아이에게 변기에 오줌이 튀었다는 이유로 삿대질과 험한 말을 퍼붓는 누군가에게 빵을 한 봉지 가득 담아줄 수 있을까? 분명한 것 하나는, 엄마의 지혜와 빵 한 봉지로 아이의 놀이터 생활은 한결 더 자유로워졌다. 어깨를 피고 인사를 한다. 경비아저씨도 인사를 받아준다.


아이에게 그날의 혼남은 이미 잊힌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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