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좋아하는 엄마의 풍경이란.
생각 없이 게시판을 훑다가 얼굴이 달아오르며 빵 터졌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 요리를 좋아해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줘요.)가 대부분인데, (하루에 맨날 책만 본다니...;;;) 살림은 안 한다니? 내가 언제 하루 종일 그랬냐고 묻고 싶었으나 콕콕 찔리는 구석이 있으므로 입을 다물고 반성해본다.
며칠 뒤에 슬그머니 저녁시간을 틈타 (떡볶이로 뇌물을 건네며) 물어보았다.
"예담아! 엄마도 요리 잘하지 않아? 별로야?"
"아니 맛있어! 너무너무 맛있어!"
"맛있다고 해줘서 고마워!"
다른 날에 비해 주방에 오래 머물렀던 어느 날이었다. 넷플렉스로 [미생]을 켜서 컵 옆에 세워두곤, 육수도 우리고 야채도 다듬고 불고기도 재우고, 지지고 볶고 끓였다. 중간중간 설거지도 했다. (이게 뭐라고, 또 뿌듯하고)
딸아이가 주방에 쓰윽 나오더니 한마디 던진다. "엄마 오늘 요리를 많이 하네?"
나는 또 뿌듯해서 한껏 어깨에 힘을 주며 말한다. "응! 엄마 요리에 좀 더 열심히 노력하려고 해. 더 맛있게!! "
"응! 엄마, 근데 나는 엄마가 요리하는 거보다 책 보는 게 더 좋아. 엄마가 주방에서 바쁜 것보다 공부방(서재)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게 훨씬 더 좋아. 나 공부할 때 옆에서 같이 공부하는 것도 진짜 좋은데... 오늘은 왜 안 와?"
"아! 진짜? "
"응. 난 책 보는 엄마가 더 좋아!"
그렇구나! 짐작도 못했다. 내가 좋아서 무언가에 몰두하느라, 소홀한(소홀했던) 부분만 찔려하느라 바빴다. 요리와 살림에 취약하다는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날 게시판을 보고 얼굴이 달아올랐을까!...
어깨를 피고 조금 으쓱해도 되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그런 엄마에 대해 적으며 연필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을 텐데, 그 순간의 나는 아이보다 분명히 작았다.
아이가 그리는 저마다의 엄마 풍경이 있다.
요리 잘하는 밥 냄새나는 따뜻한 우리 엄마, 일하고 늦은 시간 돌아와서 꼭 안아주는 땀냄새나는 멋진 우리 엄마,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어깻죽지엔 늘 아기 침이 묻어있고 분유 냄새나는 달콤한 우리 엄마, 늘 집을 깨끗하게 쓸고 닦고 꾸미는 예쁜 우리 엄마, 엄마가 샤워 끝날 때쯤 근처에 몰래 숨어있으면, 언제나 못 찾는 척 어디 있냐고 온 집안을 너스레를 떨며 뱅뱅 도는 참말 웃기는 우리 엄마, 틈만 나면 (사실은 틈이 안나도) 책과 한 몸이고, 고요 속에 글쓰기를 갈망하는 엄마...
마지막 두 엄마는 나이다. (결혼 후 꽤 오래 워킹맘이었고 일을 쉰 지 6개월쯤 되어간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에 비추었을 엄마 풍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이 주는 깊은 내면의 힘에 대해서도. 가볍게 비치지 않길 부디 바란다.
요리는 못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양도 못 맞춘다. 칼질에 서툴다.) 집밥을 주려고 애쓴다. 흔한 치킨 한번 시켜먹는 것도 연중행사이니 희한한 고집일세다. 느리지만 직접 만들고 어설퍼도 애쓰는 것이 좋았다. 세상 엄마의 마음이 다 그럴까 싶었다. 혹여 아이에게 오늘 덜해줬던 것이 보상될까 싶어 저녁밥상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는 거다. 아이가 잘 먹어주면 고된 하루가 말끔히 씻겨졌다.
귀신같은 딸아이는(정말 맛있는) 반조리 식품이나 가공식품은 늘 반쯤 남겼고, 시간만 오래 걸렸던 나의 어설픈 망작은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박박 긁어먹었다. 엄마가 해준 게 제일 맛있다고 했다. 어떤 날은 저도 헷갈렸는지 묻곤 했다. "이거 엄마가 한 거야?" 엄마가 한 거라고 하면 깨끗이 다 먹었고, 산거라고 하면 남기곤 했다.
맛있으면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엄마가 한 음식 속의 사랑과 밥을 같이 떠먹었던 거였다. 내 엄마를 믿으니 작은 맛의 차이는 노 프라브럼이었다. 믿으니 더 소화가 잘 되고 사랑받는 느낌이었으리라.
집밥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때의 표정, 냄새, 분위기, 함께 나누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밥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집밥은 달다. 심신이 피로한 날, 유독 집밥이 더 그리운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고픈 심신을 채울 수 있는 건 집밥만의 효능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 어떤 날은 친정엄마의 집밥이 너무나 고프다. 나의 엄마처럼 정갈하고 푸짐하게 식탁을 차려내지는 못하지만 나도 집밥을 한다. 나만의 리듬으로.
아이들이 추억과 함께 떠올리게 될 어렸을 적 소박한 집밥.
갓 지은 집밥이 주는 따뜻함, 모락모락 상냥함이 피어오르는 맛으로 아이들에게 추억되었으면...
아이가 그리는 엄마 풍경 혹은 아빠 풍경 속에 어떤 부모이신가요?
우리가 일상으로 하는 루틴들이 아이에게는 엄마 풍경, 아빠 풍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