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벨이 울렸다.

4. 우리가 전하는 마음

by 예담


종일 분주했던 날이었다. 늦어진 저녁시간을 맞추려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보려는데 벨이 울렸다. 벨을 누를 사람이 없을 시간이라 의아해하며 인터폰을 보니 웬 할머니가 서 계셨다. 마스크도 없이 서 있는 할머니를 보니 순간 경계심이 들었다.


"누구세요?"

"윗집입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할머니가 커다란 양푼을 두 손으로 들고 서 계셨다.


"이거 들어봐요.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어이구 직접 만드신 거예요? 귀한 음식이네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겠습니다. "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니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 이게 뭐야?"

"위층 할머니가 만드셨는데 우리도 맛보라고 주셨어. 팥죽이네."


잘되었다 싶어 팥죽을 세 그릇에 조금씩 나눠 담고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과 한 숟가락 뜨며 다 함께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리고 이어질 말을 나는 예감했지.


"엄마! 맛이 왜 이래? 팥죽인데 아무 맛도 안나. 그리고 밥알이 있어."

"아~~ 이거 지난번에 할머니집에서 먹었던 그 동지팥죽이다. 맞지 엄마?"


달콤한 단팥죽의 맛을 떠올리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한 숟가락 가득 떠서 입에 넣었던 아이의 표정이 가당찮다. 심지어 촘촘히 함께 떠지는 밥알을 보고 두 번째 충격을 받은 터다.


알고도 매번 속는 동지팥죽이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학교급식에서도, 할머니집에서도 먹어보았지만 미미했던 맛의 기억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터라 매번 다시 달콤함을 기대한다.

달고 달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 정신이 번뜩 뜨이는 단팥죽의 맛을 어찌 잊으랴. 동지팥죽을 앞에 두고 단팥죽을 기대하며 사뿐한 손놀림으로 입안 가득 넣었건만 상상했던 단맛은 데자뷰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몇번이고 입맛을 다셔봐도 입안이 심심한 아이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도 감사히 받은 음식임을 알기에 맛이 없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이럴 땐 쿵작이 잘 맞는 남매는 서로 눈을 맞추며 키득거리며 제 딴엔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한다. 보아하니 새알만 건져 먹고 있는 듯하지만 모른 체 두었다.

배가 부르다는 핑계를 대며 반쯤 남기고 일어선다. 할머니 같았으면 잡아서 앉혔겠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아이들은 자유롭게 식사를 한다. 더러 남기기도 하고, 반찬이 입맛에 맞을 땐 몇 번을 더 먹기도 한다. (라면은 면발하나를 아쉬워하며 야무지게 먹는다.)


소식을 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다 먹어. 더 먹어. 남기지 말고 먹어."라는 말이 주는 무게에 식사시간이 되면 먹기전부터 더부룩해지는 느낌이 밀려왔다.

특히 명절이 그랬다.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 밥을 남기고 일어서려다 꼭 한소리를 들었다. 고기산적 하나를 다 먹지 못해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먹다가 남기면 혼날까 봐, 한입 먹고 싶어도 참았던 기억이 있다. 비벼놓고 다 못 먹으면 누룽지도 못만드니까, 명절의 끝에 모두 밥을 비빌 때 혼자 하얀 밥을 조금씩 덜어서 먹었다. 와! 쓰고 보니 찬란하게 소심하네!

다행인지 아이들은 나의 유년시절보다 훨씬 잘 먹는다. 가리는 것도 별로 없으며, 엄마의 요리실력이 상위권이 아닌지라 엄청난 미각을 가지지 못하여, 무던하게 두루두루 맛있게 잘 먹는다.


따뜻한 죽을 먹고 마음에 온기가 가득해진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팥죽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싱싱한 딸기와 청포도를 골라 담았다. 바로 드실 수 있도록 식초소독도 하고, 여러 번 정수물에 씻어서 담았다.

위층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정말 맛있었어요. 아이들과 나누어 잘 먹었습니다." 무얼 이런 걸 담아왔냐며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셨지만 웃으셨다.


딩동.


우리네 삶의 초인종소리가 층간소음으로 인한 적개심을 들어내려는 것만이 아닌, 서로에 대한 삶의 온기를 전하려는 다정한 소리였으면 좋겠다.

딩동.


잘 지내시죠. 덕분에 저희도 잘 지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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