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하루에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아이와 걷는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시간이 나지 않는 날은 빵집이라도 돌아서 다녀오고, 피아노학원을 같이 걸어가기도 한다. 좋아하는 이와 함께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기쁨은 사소하고 은은하여 일상의 카테고리에 담기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김없이 가장 특별한 순간이 된다.
혼자 걷는 아이들을 보면 살피게 된다. 쳐다보지 않고 지나치는 척하면서 이미 스캔을 완료하는 스킬을 뽐낸다.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를 보면 미소가 머금어져서 마음으로 응원을 하고, 작은 체구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깨가 축 처진 채 표정이 어두운 아이를 보면 안쓰럽다. 한낱의 햇빛이 걷는 아이에게 기분좋을만큼의 따뜻한 온기를 주고 목적지에 당도할 무렵에는 작은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힐만큼의 시원함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지만, 아닌 날들도 괜찮다. 불편하지만 다정한 기억이 있다면.
생라면을 우적우적 씹으며 걸어오는 아이를 보았다. 보아하니 하굣길에 편의점에서 사서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중인 듯하다. 수프를 잔뜩 뿌려서 연신 입을 열고 '하아하아' 입김을 뿜어낸다. 그러면서도 봉지에 넣은 손은 멈출 줄을 모르는 아이를 보고 또 그냥 못 지나쳤다.
"안 매워?"
"네. 괜찮아요"
"맛있긴 하지. ㅎㅎ 짤텐데, 가방에 물 있으면 마시며 먹어."
"네."
아~~~~~~~~~엄마! 좀!!!!!!!!
모르는 아이한테 말 좀 걸지 마.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보았다. 다행인지 얼굴에 생기가 돌고 체격은 좋아 보였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계속 주시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상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너 안 추워? 괜찮니?"
"네! 전 더워요."
"그렇구나. 맞아. 놀면 더울 수도 있지. 그래도 바람 불면 갑자기 추울 수도 있으니까 잠바를 가방에 넣어 다녀."
"네."
좁은 엘리베이터 안, 우리 집 아이들은 이미 등을 돌리고 나를 모른 체 하고 있다. 내리자마자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 엄마! 모르는데 또 왜 친한 척 해?"
신발끈이 풀려서 어정쩡하게 걷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슬쩍 눈길을 주었더니 쓱 고개를 돌리는 표정에 큰 경계심이 없는 듯해서 말을 걸었다.
"운동화 끈이 풀어졌어. 묶어줄까?"
"저도 할 수 있어요."
"응. 그러면 묶고 걸어가."
"저 끈 밟아도 안 넘어지는데요?"
"알아. 그게 아니고 하얀 끈이 밟으면 더러워지니까."
"ㅋㅋㅋ네"
어설픈 농담에 웃어주며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끈을 묶는 모습을 지켜보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있었다면 어김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겠으나 다행히 혼자 걷는 길이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뛰어오는 아이의 반쯤 열린 가방사이로 리코더와 알림장이 삐죽이 튀어나와 점점 가방이 벌어지고 있다. 하긴 아이들은 바빠서 뛰는 게 아니라 뛰고 싶어서 뛴다.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분출되는 느낌이 좋아서일까. 아무튼 만화처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 뛰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절로 에너지가 느껴진다.
"너 가방 열렸어. 공책이 빠지려고 해."
가방을 앞으로 휙 돌린 아이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 녀석들을 쏙 집어넣고 지퍼를 여민다. 그리곤 다시 의기양양하게 뜀박질을 한다. 나는 안도를 하며 가던 길을 간다.
간밤에 기침과 목뒤로 넘어가는 콧물과 씨름을 하느라 잠을 설쳤던 아이를 데리고 아침 일찍 소아과를 갔다. 진료 후 아이와 엄마들로 시끌벅적 붐비는 약국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한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운다. 보아하니 엄마는 이름이 불려져서 조제된 약의 설명을 듣는 중이다. 아이는 여봐란듯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약국에 진열된 장난감이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안된다고 하여 시위를 하는 중인 듯싶었다. 등교, 등원 전의 아침시간! 소란했던 약국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바닥에 앉아 고함을 지르는 아이의 주위로 둥근 원이 생겼다. 엄마의 표정에 난처한 기색이 완연하다.
아이에게 다가갔다. 주저할 새도 없이 안아서 세우려고 허리를 잡고 토닥거리며 발을 땅에 디디게......... 하려고 했으나, 들자마자 다리에 힘을 빼며 완곡히 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우리 일어서서 엄마한테 갈까?"몇 번을 달래 보았으나 절대 서지 않는다. 다리를 뻗대고 몸을 뒤로 빼는 폼이 프로다!
계산을 끝낸 아이의 엄마가 다가왔다.
"아~죄송합니다." 뻗대는 아이를 휙 들어 올려 약국문을 나가는 아이의 엄마도 한두 번 해본 기색이 아닌데, 약국문 앞에서 다시 큰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부여잡고 뻗대는 아이에게 엄마는 속수무책이다.
호주머니에 '텐텐'이 있다. (아이들의 성장비타민인데 딸기맛이 나는 캐러멜이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텐텐을 손에 들고 아이에게 다시 갔다.
"이거 줄까?"
방금까지의 우렁찬 기색은 거두고 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며 (본인의 생떼가 머쓱한지) 선뜻 대답을 못한다.
"이거 줄게. 먹으면서 집에 가요. 녹여서 먹으면 더 오래 먹을 수 있다^^"
(이에 붙을까 봐 아이들에게 그냥 하는 말이지만, 이제 우리 아이들은 속뜻을 알만큼 커서 이렇게 답한다. "그냥 씹어먹고 양치할게 엄마.")
울음을 그친 아이가 캐러멜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아이의 엄마에게 아침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맘때쯤이 제일 힘든 것을 지나 봐서 안다. 이해하고 공감하니 죄송할 것도 감사할 것도 없다. 같은 순간을 지나왔는걸요. 또 지나가요. 저도 얼마 전에 지나온 길인데 왜 이리 아득하고 그리울까요.
혼자 걸어가는 아이를 보면 살피게 된다. 구겨진 카라를 바로 펴주고, 책가방뒤로 말려 올라가 버린 상의를 탁탁 펴서 내려주고 싶다. 꼬여있는 가방의 어깨끈을 바르게 풀어주고 미처 야무지게 닫지 못한 지퍼를 끝까지 채워주고 싶다. 하교 후의 지친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도록 맛있는 간식을 주고, 우적우적 급히 먹지 않도록 말도 걸어주고 싶다. 초록불이 되었을 때 급하게 건너지 말고 주위를 살피라고 말해주며 아이들의 앞과 뒤를 지켜주고 싶다.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나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걸음을 멈추지 말고 허리를 펴고 눈에 힘을 주며 가던 길을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핸드폰은 가방에 넣고 앞을 보고 걸으라고, 주위를 살피며 다녀야 한다고, 그것이 꼭 위험을 예방하려는 목적이 다는 아니라고 말해준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을 살피며 걸으면 눈건강에 도움이 되니까, 책과 칠판을 보던 눈이 더 먼 곳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해 준다.
종종 안타까운 뉴스들을 접하며 우리는 마음 아파한다. 얼마 전에 났던 초등학생아이의 기사를 보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희망 없는 표정으로 편의점에 앉아있는 아이의 모습은 슬픔을 넘어선 절망이었을까. 그렇다면 아이가 느꼈을 마지막 기쁨은 어떤 순간이었을까. 부디 있었기를.
어른이 가는 바쁜 길목에 아이들이 있다면 숨을 고르듯 아이들을 살펴주었으면, 찰나의 기쁨이 번져 하루를 물들이고 색색의 하루가 모아져 봄 같은 유년의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처럼 아이들은 소박하게 잘 웃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송이가 되어 금세 마음이 날리어도 따뜻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