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이 거래에 대한 글을 발행하고 생각지도 못한 높은 조회수에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그 놀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모가 많았다는 의미이자 말랑이 거래를 하는 아이들이 실로 많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 또한 궁금증에서 일어난 탐구에서 말랑이 글쓰기에 까지 이르렀으니!
포켓몬 카드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공감하기 위해 많은 날을 애써보았지만,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왜! 포켓몬 카드는 비싼 건지. 왜! 비싸도 품절이 되는 건지. 비슷해 보이는데 끝도 없이 신상이 나오는 건지. 캐릭터에 따라 왜 가격이 천차만별인 건지. 문구점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와 동선에 가장 부합하는 상석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포켓몬 카드의 위상이란!
아이들은 문구점에 가면 카드 코너로 직진을 한다. 신상을 발견하면 동공이 확장되고 입이 벌어진다. 신상의 가격은 보통 2000~3000원 선이다. 출시된 지 시간이 흘러 흔해진 카드는 1000원 정도로 가격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주머니의 사정은 비슷하므로,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 중 대부분은 신상카드를 만져만 보다가 천 원짜리를 집어 들고 서둘러 학교로 들어가고, 몇몇은 올라간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며 신상을 집어 들고 여봐란듯이 교문을 통과한다. 아마도 용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일단은 지르고 본다는 마인드의 아이들일 것이다.
아이들의 문방구 쇼핑 스타일만 지켜보아도 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쓰는 아이들을 구별할 수 있다. 용돈을 관리하며 쓰는 아이들은 책임감이 있다. 스스로의 소비를 책임져야 하기에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한다. 하교 후 사 먹는 문방구 슬러시 한잔 정도는 용돈을 쓸 명분이 있기에 쉽다.
"학원차 기다리며 더워서 사 먹었어!"
"집에 오는 길에 친구랑 먹으려고 샀어."
포켓몬 카드는 떳떳한 명분이 없다. (마음속으로는 명분이 뚜렷한데 말이지. 입으로 나오려면 우물쭈물거리게 되는 게 문제야.) 게다가 신상이라면 더더욱.
"엄마, 신상이라서 3천 원주고 카드 샀어!"
라고 했다간 엄마가 눈에서 레이저를 쏠지도 모른다. 눈에서 레이저를 뿜어대는 엄마들은 알까. 가상의 눈총이라도 무지무지 따갑다는 걸!
포켓몬 카드를 모르는 엄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뜯어서 보고 나면 끝인(무용할 것 같은) 종이카드 몇 장을 몇천 원씩 줘가며 영접하는지.
그것은 일종의 길티 플레져 인가. 어른들로 치자면 고급 양주 한잔 같은? 혹은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심리 추리소설 같은? 아님 넷플릭스의 워킹데드 같은? (난 워킹데드 마니아다. 시즌 11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덕후.)
아이들의 놀이 문화는 바뀌었다. 엄마 아빠는 옛날에 밖에서 이러고저러고 뛰어놀았고, 장난감도 필요 없었는데 말이지.라는 말은 한 번이면 족하다. 여러 번 하게 되면 그것은 꼰대가 되는 지름길.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로 둘러앉아 주섬주섬 카드를 꺼내고 서로의 카드를 탐색하느라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카드거래를 하며 마음이 잘 맞아 친해진 친구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배려를 많이 하며 거래를 하는 아이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을 것이다. 어른 세상과 다를 바가 없는 이치다.
아이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했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쓰윽 쳐다보던 아이의 표정이 단박에 만개했다. "저 포켓몬 카드 인터뷰입니다." 한마디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초승달 눈이 된 아이에게 물었다.
"포켓몬 카드를 왜 좋아하시나요?"
"랜덤이라서 뜯으면 뭐가 나올지 궁금해서 떨리고요. 좋은 게 나오면 친구랑 거래할 수도 있어요."
"포켓몬 카드는 너무 비싸지 않나요?"
"네.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사고 싶고 재미있어요. 용돈을 아껴서 사는 거예요."
"친구랑 거래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카드를 서로 갖고 싶은 것끼리 바꾸는 게 거래예요."
"제일 좋은 카드는 뭐예요?"
"저는 흑자몽이예요! 근데 계속 바뀌어요. 더 좋은 게 나오거든요.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기도 해요."
"어떤 카드가 좋은 건지 엄마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알아봐요?"
"음. 쉽게 말하면요. 테두리가 회색으로 빛나는 게 좋은 거예요."
"카드놀이는 뭐가 가장 즐거워요?"
"친구랑 거래하는 게 제일 재밌어요. 모으는 재미와 카드를 열어볼 때 뭐가 나올지 스릴도 있어요. 찬란한 포켓몬 카드가 나오면 엄청 좋은 거예요."
아이는 뜯은 포겟몬 카드를 잘 포장해서 다시 카드를 팔기도 한다. 당근에서 거래를 한다. 수제팩 판매라는 글귀에 빵 터졌지만, 보란듯이 곧 거래가 성사되었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는 중학생과 만나서 거래를 했다. 3천원을 들고 들어온 아이의 볼에 생기가 가득하다. 우영우가 말한 '뿌듯함'이 저 볼에 가득하구나. 문제지를 한권 다 풀고 느껴야 할 감정인데 말이지.
음! 그럴 수 있지.
인터뷰하는 내내 아이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여느 때보다 생기 가득한 얼굴로 내 눈을 쳐다보며 다음 질문을 기다린다. 장난스레 시작한 인터뷰가 진지해지던 순간이다. 진심을 다해 답하는 아이를 보며 번쩍 각성이 되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시간이 되었구나. 즐거움을 공감해주고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놀이의 시작이구나.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어법을 잘 사용하면 타인을 더욱 공감하고 존중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하트 시그널 2 에서 한 여자 출연자가 그 말투를 쓰는 걸 처음 보았다. 신선한 자극이었다. 상대가 말을 할 때 늘 "그럴 수도 있지.""음. 그랬구나." "맞아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붙이는 걸 보고 배워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아이를 지켜보고 바른길로 인도해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때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며 토닥여주고 그 길 속에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쓸데 없음'이 '쓸데 있음'이 되는 건 한 끗의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영혼없는 공감을 하지 않기 위해 인터뷰를 자주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