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국어문제를 풀던 중이었다. 사부작사부작 문제를 풀던 한 아이가 멈칫하더니 중얼거린다. ( 엄마의 하루에 대해 상상하고 적어보는 문제였던 것 같다.) 적막 속에선 작은 중얼거림도 또렷이 들려오는터라 맞은편에 앉은 다른 아이가 대꾸를 했다.
"나는 엄마가 없는데..."
"왜? 회사 갔어?"
"아니 결혼했어!"
"무슨 말이야? 엄마가 당연히 아빠랑 결혼을 해서 네가 태어난 거지!"
"그게 아니고 엄마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어! 다른 나라에서 살아. 근데 비밀인데..."
"......"
한창 대꾸를 해주며 말을 이어가던 아이는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핀다. 반면 말을 꺼낸 아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음 문제를 풀어 내려가고 있다.
초등 2학년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왜! 왜! 왜! 저학년 교과서와 문제지에는 4인 가족에 대한 글들이 유독 나오는가. 나오는 건 그렇다 치자. 그래! 요즘 아이들은 영특하고 눈치도 빠른 터라 까짓 읽어볼 수는 있다. 하지만 빈칸을 메워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리면 멈칫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당황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답을 요할 때는 되도록 그런 문구를 자제했으면 좋겠다. 교과서를 개정할 때 고려해주셨으면 하고, 문제지를 만들 때도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고정관념들을 깨어나갔으면 한다.
예컨대, 이러한 것들이다.
1.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편지를 적어보세요.
--> 어버이날을 맞아 키워주시고 낳아주신 분께 감사를 전하는 편지를 적어보세요.
2. 방학을 맞아 땡땡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외할머니댁에 갔습니다. 여러분도 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이나 친척집에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발표해봅시다.
--> 방학을 맞아하고 싶은 공부나 취미활동이 무엇이 있나요? 혹은 보고 싶은 만화영화나 책이 있나요? 또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자유롭게 발표해봅시다.
3. 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는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는 예문들! (구태의연한 문장과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가득한 국어책으로 공부를 시키며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상상력을 요한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나!)
4. 아빠의 직업에 대해 알아보고 다양한 직업들에 대해 조사해오세요. ( 아직도,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가 있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아동 병원장의 딸이 재학 중이었는데, 무심코 지나치던 병원의 한편에 놓여있던 커다란 화분에 아이의 학교장의 성함과 학교명이 당당히 쓰여 있던걸 보고 입이 딱 벌어졌던 기억이 있다. )
5. 둘째 아이의 2학년 때 담임은 유독 "엄마"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작년에 한창 온라인 수업을 할 때도 산만한 아이들에게 뾰족한 말투로 묻곤 했다.
"집에 엄마 없어?"
" 네 없어요."
"어디 갔어?!! 너 준비물 엄마가 안 챙겨주고 갔니?"
그러면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해졌다. 엄마를 탓하는 선생님의 말투를 아이라고 모르겠는가! (수업에 집중하여 조용한 게 아니라 기가 죽은 것이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덩달아 마음이 내려앉곤 했었다. )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다소곳해졌다. 감정이 섞인 호통은 아이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온도를 낮춘다. 그렇게 순식간에 아이들은 조용해지지만 다시 한 아이가 칭찬을 받거나 선생님이 기분 좋은 농담을 던지면 까르르 웃어댄다.
이토록 투명한 아이들이라서 더욱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아이가 첫 단어를 말하는 순간 부모들은 감격한다. 하지만 '엄마'를 말하고 '아빠'를 말하는 아이에겐 양육자가 엄마이고 자신을 지켜주는 이가 아빠이다. 때론 할머니가 '엄마'가 되고 할아버지가 '아빠'가 될 수도 있다. 아이에겐 4인 가족이 정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어주는 가족이 정상이다. 엄마는 사랑으로 품어주는 이고 아빠는 사랑으로 지켜주는 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편견일 수 있겠다. 아빠가 사랑으로 품어주고 엄마가 지켜줄 수도 있지. 아빠가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엄마가 지프차를 몰고 백패킹을 데려갈 수도 있는 거지.
엄마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을 감히 가늠해볼 수도 없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특 내뱉고 다른 문제를 푸는 아이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비쳤다. 처음에는 뾰족했겠지만 수많은 날이 지나고 무뎌졌을 아이의 마음과 순간들이 고개를 떨구며 깜박이는 눈빛 속에 담겨있다.
4인 가족이 반드시 이상적인 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듯, 여러 가족의 형태는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쉽지 않은 과정 속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아이의 마음을 우리는 보듬어야 한다. 어디가 골대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기에 아이는 쉬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이리저리 나부낄 때면 엉엉 울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울어도 괜찮아. 웃어도 괜찮아. 투정을 부려도 괜찮아. 그런데 자꾸 괜찮다고는 하지 마."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나에게 왔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 시간 앞서서 왔고 일부러 문제를 천천히 풀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남아서 공부를 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비는 시간이 생기면 아이와 함께 간식을 먹었다. 그러다가 저녁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아이는 수업이 끝난 후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시 나에게 왔다.
"선생님, 중학생 언니들은 수업 언제 시작하고 몇 시에 끝나요?"
"이제 조금 있음 시작하고 9시도 넘어서 마치지. 저녁밥은 먹었어?"
"아직이요. 아빠는 출장 가셨고 할머니랑 먹을 거예요."
"선생님이 할머니한테 전화해볼까? 선생님이랑 먹고 갈래?"
"네! 너무 좋아요!!! 히히"
그럴 때면 아이는 함박웃음을 짓곤 했다. 그 웃음은 순도 백프로의 행복을 담고 있어서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임신 중이었던 나는 입덧이 매우 심해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지만 아이와 함께 먹는 식사만큼은 게워내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방법으로 위로한다고 자만했으나 아이는 나에게 곱절의 사랑을 전해주고 있었다.
간식으로 도넛을 튀겨주던 어느 날이었다. 종알종알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도넛을 호호 불어 먹으며 문득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 이룸이가 부럽다." (이룸이는 큰아이의 태명이다.)
쿵! 공들여 세워둔 마음들이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웃고 있는 아이의 마음 한켠을 행여 더 시리게 하진 않았을지. 그저 사랑을 주고 싶었고 시간이 지나며 정말로 아이를 사랑했지만 관계의 지속성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 아이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부러워하며 불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선생님은 엄마가 아니어도 너를 최고로 사랑하지. 우리 내일 라면 먹을까? 에이, 엄마였으면 라면 안 줬을 텐데, 선생님이라서 다행이지?"
"히히히 우리 할머니도 라면 줘요!"
한참을 마주 보며 배불뚝이 임산부 선생님과 작은 아이는 꺄르륵거렸다. 초록의 여름이 되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순간에 진심을 담았던 기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