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마음이 자란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은 아니다.
릴레이 하듯 두 아이가 줄지어 아팠다. 한없이 깊은 심해로 가라앉는 마음을 애써 끌어올리며 더운 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의 속은 타들어가고 얼마 남지 않은 심지가 부스러질 때쯤 아이는 생기를 되찾는다. 생기를 되찾은 아이는 다시 환한 불을 밝히고 부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웃는다.
부모가 되어 제일 처음 닥치는 두려움은 말 못 하는 아기가 우는 것이었다. 울음의 원인을 찾으려 시간을 거슬러가며 혹여 보살핌이 소홀했던 순간을 기어코 찾아내어 반성을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이들은 원래 아프며 크는 법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장면은 아이가 힘들어하는 표정이다. 내 아이를 찌른 바이러스도 얄밉고 바이러스를 허한 것이 제 탓인 것만 같다.
큰 아이가 기운을 되찾은 다음날 작은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여 마음이 유독 덜컹거렸던 날이었다. 더군다나 아들이 밤새 열이 올라서 벌벌 떨며 끙끙 댄 사실을 나는 몰랐다. 아들은 엄마를 깨워 말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주방에 가서 따뜻한 물을 홀짝이기를 여러 번, '한 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믿음이 생겨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 믿음은 왜 생겨난 건가? 여러 번 아파본 아이의 직감이었거나 모두 잠든 늦은 밤의 고요함을 깨뜨리기 싫었던 아이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주말이었다. 늦잠을 자지 않는 아이인데 이불속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걸 보고 싸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온도차를 감지한다. 아픈 기색이 분명하다. 오 마이 갓. 뜨겁다!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며 물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심장이 쿵쿵 뛴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밤새 아팠던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고도 계속되는 목의 통증에 이불을 한껏 끌어당겼다. 그렇게 삼켜지지 않는 침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었겠지. 좀 더 참아볼까. 얘야, 그러기엔 넌 고작 열 살이야. (아이는 열 살이 되고부터 십 대가 되었다고 의기양양해하는 중이다. 병원을 가기 싫어서 참은 게 아니라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약을 먹지 않고도 따뜻한 차를 마시고 긴 시간 목욕을 하며 감기를 가뿐히 이겨내는 엄마를 본터라 그랬다고 한다. 나는 평소 감기약을 먹지 않고 잘 이겨내는 편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병원을 가야 한다.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하고 필요한 약을 먹어야 한다. )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 아이가 말문을 열었다. 어제부터 아팠노라. 땅땅땅! "목이 아파요! 침이 안 삼켜져요!"
이마를 짚어보니 뜨끈뜨끈 하다. 고민할 새가 어딨나! 병원을 가야 한다. 일요일이면 접수가 벌써 마감되었을 확률이 높기에 마음이 급하다. 얼른 아이의 옷을 꺼내놓고 양치를 하러 들여보내고, 그릭요거트에 그래놀라와 꿀을 뿌렸다. 금세 먹이고 나가기엔 이만한 게 없다. 아차! 목이 아파서 넘어가겠나 싶다.
누룽지를 끓여줄까 물었더니 괜찮다는 아이의 표정이 한결 밝다. 요거트는 먹을 수 있다며 빙그레 웃는다. 아픈데 왜 저러고 웃어! 가만히 보니 짐을 덜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나 보다.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요 녀석아, 어른도 아픈 건 혼자서 견디기 힘들단다. 마음이 편안해진 아이는 이제 엄마의 손길에 맡겨진 아가처럼 느슨해져 있다. 어젯밤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느라 몇 번이고 송곳 같은 침을 꼴깍꼴깍 힘겹게 삼키며 말을 이어간다.
걱정시키기 싫었고 이제 그 정도는 참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판단하여 대처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회복력이 길러진다. 대견함과 동시에 마음이 시렸다.
"열이 나면 많이 힘들잖아. 그건 참지 말고 약을 먹어야 해."
"엄마! 열이 나는 게 꼭 나쁜 게 아니라고 엄마가 말했잖아. 세균들이 싸워서 이기기 위해 열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낫기 위한 신호라고 그랬지? 그래서 싸우게 둔 거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래서 이겼지. 이제 안 추워. 열도 안나지?"
"응. 정말 감사하다. 잘 이겨내줘서 고마워. 정말 많이 컸구나"
"많이 아프면 엄마한테 말할게. 그렇지만 조금 아플 때는 알아서 할게."
스스로 판단해서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아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아이는 엄마의 생각보다 강하다.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맞서서 막아주지 않아도 맞설 수 있다고. 나는 나를 믿으니 엄마도 염려 말고 나를 믿어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이제 시선을 돌려 엄마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라는 용기를 주는 걸까. 마치 어젯밤 꿈처럼 가깝고도 아득한 기분이 밀려왔다.
아이는 하루만 앓고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생기를 되찾은 아이는 더욱 반짝거린다.
아이들은 나름의 방법을 찾고 스스로 궤도를 수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 이외에 일평생에 필요한 기술은 없을지도 모른다. [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