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바람
새 학기의 첫 일주일은 마음이 바쁘고, 아이들의 어깨와 두 손이 무거운 시기이다. 가방 가득 쪼르르 일렬로 각이 잡혀 있는 새책들과, 새 학년 준비물들을 가지고 학교에 간다. 책과 학용품들을 학교로 이사 보내고, 하교하는 길의 가방 안은 담임 선생님이 내어주신 새 학기 이사 서류들로 가득하다.
"얘들아, 너희들 이사하는 것 같아. 짐을 나르고, 통신문에 사인하고 작성해서 보내고, 일 년간의 적응이 시작되잖아. 그렇지."
"엄마! 왜 꼭 새 학년이 되면 반을 바꿔야 할까? 2년에 한 번씩 반을 바꾸면 안 되나? s랑 같은 반이 안돼서 속상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학교에서 배우는 사회성 수업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꼭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게 좋은 거야? 좋아하는 친구를 오랫동안 사귀면 안 되고? 하지만 친구가 많은 것보다 단짝이 있는 게 더 좋아."
"맞아. 네 말도 일리가 있어."
새 학년의 첫 한 달간은 서로를 탐색하며 이미지를 저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작과 낯선 공간이 주는 두려움과 용기, 해야 할 일 앞에서 각자의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베테랑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이 챙겨주는 학습준비물, 통신문, 아이들의 표정과 말투, 옷차림 등으로 만나지도 못한 학부모의 성향도 설핏 간파된다고 한다. 학부모는 전해 들은 아이의 말로 선생님의 성향을 추측해보고, 내주시는 숙제와 온라인 수업을 통해 선생님이 지향하시는 학습의 스타일을 짐작해본다.
가령 큰아이의 1학년 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존대하고, 엉뚱한 아이들의 시답지 않은 말들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답해주셨으며, 칭찬을 매일 해주셔서 아이가 자기 효용 감을 갖게 하셨다. 덕분에 아이는 학교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재미를 붙였다. 아이의 일기의 맞춤법을 지적하기보다 코멘트를 달아주셨던 덕분에 아이는 더 정성스럽게 마음을 내비치게 되었다. 일기를 쓰며 마음을 정리해나가는 개운함을 느꼈으리라. 정성스러운 일기에는 선생님의 답글도 길다고 했다. 선생님이 그려주신 하트의 개수를 헤아리면서 좋아하던 아이가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선생님의 답글을 읽으며 아이는 행복해했다. 자신의 일상을 말하듯 진솔하게 적어내려 갔다. 그것은 좋은 습관의 시작이었다.
2학년 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찌푸린 얼굴로 자주 고함을 지르신다고 했다. 아이는 친구들이 혼나는 것을 보고 불안함을 느꼈고, 혼나지 않기 위해 경직된 몸과 마음으로 규칙을 지켰다. 다소 장난기가 많고 활동적인 아이들을 제어하기 위한 긴급처방이었면, 겁을 먹은 다른 아이들의 표정이 처방의 부작용이었다. 아이들은 낮은 목소리로 여러 번 이야기해주어야 함을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 거다. 고함을 치면 순간 겁을 먹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을 할 뿐, 문제의 본질에 대해선 잊고야 만다. 다만 조용해지겠지. 다음번에 더 큰 소리를 내야 할 만큼의 내성이 생기겠지만.
(비단 선생님뿐만이 아닌 부모의 목소리도 해당된다. 나는 이번 주에 몇 번의 큰소리를 내었나? 그것은 얼마만큼의 큰일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내 마음의 덜컹거림을 들키지 않으려 밖으로 내는 소리를 키운 경우가 많았다.)
주로 바른생활을 하며 마음이 여린 아이들은 분위기를 감지하는 안테나가 다른 친구들보다 섬세하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크고 지적이 많으며, 웃음이 없는 교실에서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발표를 하려다가도 멈칫한다. 답이 틀리면 꾸중을 듣진 않을까 지레 걱정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작지만 분명한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어떤 선생님들은 반장, 부반장이 될만한 아이들을 마음속으로 점찍어두거나, 무엇을 시킬 때 그것을 잘하는 아이가 먼저 발표하게 한다거나 시범이 되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 선생님의 설명보다 빠르게 아이들이 이해하고 수행해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잘하는 친구를 칭찬하는 계기도 되고 말이다. 일석이조인가?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던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항상 정답을 말하는 아이와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이 앞서가면 뒤를 따르는 아이들의 마음은 분주하고, 낙오자가 되어버린 아이들은 초심과는 다르게 대충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리고야 만다.
선입견이 없는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은 처음에 갸우뚱거린다.
"선생님 체육은 A가 잘하는데요. 왜 B에게 주장을 시켜요?"
"반장선거에 너도 출마해봐. 너도 나가고. 어때?" "선생님 어차피 반장이랑 부반장은 H나 K가 될 건데요."
"선생님 우리 조에서 B가 제일 공부 잘하는데 조장을 왜 W가 해요? 얘가 하면 망하는데요."
"선생님 쟤는 리코더 틀리게 부는데 왜 앞에서 시범 보여요? 제가 더 잘해요!"
"정해진 건 없어. 너희들 모두 무엇이든 잘할 수 있어. 지금부터 시작하면!"
선입견으로 아이들을 단정 짓는 대신에 마음을 두드리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부지런히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숨을 불어넣어 주시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성장시킨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뚜렷이 보이는 아이의 양상이 있다. 준비물을 야무지게 챙겨 오는 아이, 통신문을 기한을 지켜 꼼꼼히 내는 아이, 그리고 꾸역꾸역 무거운 책들을 한 번에 가지고 오는 아이, 쭈뼛쭈뼛거리면서도 매시간마다 끊임없이 손을 들어 발표를 하고, 준비물이든 과제든 완벽히 해내는 아이. 선생님이 보시기에 만족스러울 아이.
엄마도 아이가 대견스럽다. 하지만 종종 틈을 가지기를 바랐다. 준비물을 가끔은 빼먹고 가져가지 않아 꾸중도 들어보고, 때론 옆자리 친구에게 빌리며 서로 키득대며 친근함이 깊어지는 경험도 가졌으면 했다. 때때로 숙제가 하기 싫으면 꾀를 부려도 보았으면 했다. 선생님께 혼이 나도 그때뿐. 툭툭 털고 금방 웃을 수 있었으면, 실수에 걸려 넘어졌을 때 아쉬워하는 대신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고 말았으면 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좌절 내구력이 강해졌으면 하는 괜한 노파심인가.
뒤로 넘어질 듯 무거운 가방을 메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몇 번을 권했다. "선생님께서 하이클래스에 교과서는 이번 주 안에만 다 들고 오면 된다는 공지 올리셨어. 그러니 나누어서 들고 가면 될 것 같아."
"그런데 엄마 어제 국어 수업을 했어. 선생님이 책이 없는 친구들은 내일 가져오라고는 하셨는데 책이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어. 그냥 다 들고 갈래."
아주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과 이유를 말하는 아이를 설득할 재간이 없다. 빈틈없이 모든 교과서를 가방에 밀어 넣고 터질듯한 가방에 미처 입수하지 못한 책들은 보조가방에 들어간다. 아이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개운한 표정이다.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은 흡사 전쟁에 나가는 장군의 기개가 보인다. 혹여 엄마가 걱정할까, 무겁지 않은 표정으로 무거운 몸짓을 한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기특하고 예쁘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융통성이었다. 꺾이지 않을 듯이 꼿꼿한 의지보다 부드럽게 구부러지기도 하는 유연함, 틈이 있는 삶이 환기가 된다. 어떠한 순간이라도 유머가 있다면 기꺼이 즐길 수 있다.
일년간 아이가 성장했으면 (성적이 향상되었으면) 하는 점(과목)을 적으라는 통신문을 가지고 왔고, 나는 '융통성'에 대한 바람을 적었다. 교과목보다 '융통성'과 '유머' 그리고 '마음의 여유에 의한 배려'가 한층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은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