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소설쓰기를 좋아하는 첫째는 창작 영재이다. 작년에 학교장 추천과 영재교육원 시험을 통해 최종 합격을 했고, 나름 성실히 토요일마다 영재 거점학교로 향하고 있다.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던 날, 뛸 듯이 기뻐하던 아이의 표정이 생생하다.
아이가 쓴 독서록을 읽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교장선생님과, 아이가 쓰고 제본을 한 소설을 친구들에게 읽어주며 재능에 빛을 밝혀주신 선생님의 통찰과 진심 어린 조언들도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방학 때는 다소 힘들기도 했다. 재학 중인 학교의 방학과 동시에 영재학교의 집중수업이 시작되었기에 다른 친구들의 늦잠을 부러워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 먼 거리를 통학해야 했다. 아이도 그렇지만 함께 해야 했던 둘째와 나도 지난했던 시간들이었다. 찌는듯한 더위에 커피숍에 앉아 반나절을 기다리며 에어컨 바람에 지끈한 두통을 느꼈다.
차라리 햇빛을 맞자며 나가 걷다가 오돌토돌해진 팔에게 미안함을 고한다. ( 미미한 햇빛 알러지가 있다. 한여름, 땡볕에 5분 서 있으면 두더지처럼 솟아오르며 나타나는 알러지 녀석이다. 뿅망치로 치지 않아도 다음날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아니야. 엄마 나는 재밌어! 동네 산책도 신나고! 엄마랑 커피숍에서 주스 마시고 케이크 먹으면서 책 보는 거 좋아. 공부도 하긴 하지만 해야 할 것들이 끝나면 엄마가 핸드폰 게임도 시켜주잖아! 진짜 좋은데 흐흐흐 "
둘째는 생각보다 초연했다. 오히려 즐기고 있었달까! 아이들은 현재를 산다. 순간에 몰입하여 즐기기에 시간이 다채롭게 흐른다. 어른은 감사하며 현재를 즐기자고 말하지만, 실은 감사함을 생각하는 순간도 '지금'이 아닌 '조금 전의 일들 or 과거'에 대한 감사함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 현재에 몰입하여 빠져들면 행복해진다. 그리고 쉬이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된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힘이 되는 행복한 유년의 기억들은 가족과 유대하며 순간 속에 오롯이 빠져들었던 진심의 날들일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동자에 나를 담고 정성스레 바라봐주었던 누군가가 있었기에 나의 기억은 생명력을 더한다. 그리고 성실히 오랫동안 무언가를 해내었던 기억은 성취와 좌절, 기쁨과 고통의 과정이 퇴적되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올해의 수료과정은 두 달 남짓 남았다. 영재시험을 치르기 전 몇 번을 물었었다. 시작하면 쉽지 않은 시간들을 겪어야 할 것인데 각오가 되면 도전을 해도 좋다. 하지만 시험을 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응시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는 꼭 합격이 되어 창작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알람도 필요 없다. 몸이 기억하는 7시가 되면 아이는 귀엽게 졸린 눈으로 거실을 향해 좀비처럼 걸어 나온다.그리곤 밤새 느슨해진 심신에 힘을 주어 기지개를 피고 욕실로 향한다. 씻고 나와 옷을 챙겨 입고 외모를 단장하며 연신 거울을 보는 아이는 어느덧 12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부모들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컸니?"
오늘 아침은 식감이 좋고 고소한 호두 통밀 식빵에 크런키 땅콩버터와 크림치즈를 취향껏 바르고, 사과, 바나나와 요거트, 삶은 계란을 곁들였다. 막 끓여서 식혀둔 보리차를 홀짝거리며 아이는 눈을 껌벅거린다. 밤새 가라앉은 기운에 온기를 주기 위해 일어나면 늘 따뜻한 물을 한 컵씩 마신다.
큰 아이는 수업에 들어가고, 작은아이와 근처 스벅에서 반나절을 보낸다. 토요일 반나절을 기다림으로 채우는 우리 둘은 알차게 가방을 꾸린다. 아이는 공부할 교재와 읽을 책 두어 권, 그리고 핸드폰도 야무지게 충전하여 가방에 넣어둔다. 나도 읽을 책과 키보드, 노트를 챙기고 보온병에 물을 담아 넣는다.
날이 좋은 날에는 함께 근처 산책을 하느라 가득히 채워온 가방을 한번 열어보지도 못한 채 짐짝이 되어버리고 말지만, 다음번에도 어김없이 심사숙고하여 가방을 싼다. 산책을 하다 운 좋게 그 동네의 장날과 맞닥뜨리게 되면 이것저것 먹고 사는 재미로 연신 양손이 무거워진다.
창작 영재는 비교적 다른 영재 분야에 비해 생소한 분야이다. 문해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독서교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지만, 유튜브와 미디어에 익숙한 아이들도 더 많아지고 있다. 배우는대로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은 메타버스와 코딩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능숙히 다루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결과 없는 과정을 음미해야 하는 독서와 글쓰기에는 개인 편차가 크다. 독서를 하고 감상을 말할 줄 모르고, 고심하여 글을 쓰지 못한다. 왜냐하면 명확한 답이 없으니까. 두려움이 앞서면 이내 목적을 잃어버리고 만다.
읽고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창작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뚜렷한 목적지와 정해진 소요시간이 없으니 내비게이션도 필요가 없는 그 길을 개척해가며 달리는 즐거움을알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