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인연에 대한 소회
누구나 그렇듯 나도 몇 번의 연애를 거치고 결혼을 했다. 또 누구나 그렇듯 그중 유독 힘들었던 이별이 있었다. 정말이지 이 사람과 헤어지면 죽을 것만 같은 절망감에 휩싸여 보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연애 속에서도 뿌리가 단단하고 튼튼한 만남이 존재한다.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에 태풍으로 뿌리째 뽑혀버리면 휑한 빈자리엔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막막함이 채워진다.
한 사람의 바운더리 안에서 튕겨져 나갔다. 바로 어제까지 소란했었던 장소가 불현듯 호젓하게 느껴졌다.
포근했던 공기는 서늘해졌다.
같은 장소에서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허망함을 마주했다.
그 사람과 만나며 여러 개의 교집합이 생기고, 합집합 속에서 우리는 공존하고, 촘촘하게 믿음을 색칠한다. 그리고 소나기처럼 문득 여집합이 되고야 만다. (남자 친구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가서 그의 좋은 지인들과 집합을 이루게 되면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이것이 내 바운더리였던 것 마냥)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쉴 새 없이 불어닦치는 불안함과 절망감의 이유 중 삼분의 일 정도는 그것이었던 것 같다. 탁구대 안에서 존재했는데 어느 날 문득 튕겨져 나가 버린 탁구공처럼 갈 곳을 잃었었다.
시간이 약인지라 절망도 먼지처럼 가라앉아 쓱쓱 닦아내고 잘 살아가지만, 그 후로 일대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헤어짐은 한결 가벼우리라 생각했다. 여집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집합과 합집합보다 차라리 공집합이 나았다. 그렇게 나의 바운더리를 만들었다.
00학번인 내가 대학시절 만났던 인연에 대한 십오년이 훌쩍 넘어가는 오래된 이야기이다. ( 참 많이 좋아해서 주도성을 잃어버리고 빠져버렸었던 .) 하지만 여전히 명절이 되거나, 새해를 맞으면 합집합 속의 지인들이 안부를 물어온다. 매번 먼저 안부를 전해야지 마음 먹지만, 언제나 한발 늦는다. (어김없이 미련하게) 이번 추석도 안부인사를 먼저 받았다. 나는 여집합이 되어 절망했지만, 어쩌면 부분집합이었을까...
명절이면 받는 뻔한 안부인사들을 뻔뻔스럽게 받고 흘리지 않으려 되새긴다. 그리고 기록한다.
귀하고 감사한 인연을 생각한다. 받았던 마음과 잃었던 마음의 차집합에 대하여. ( 아니, 환산할 수 없는 오래된 마음에 대하여 )
고마워요!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