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태어난 빠른 년생

생일에 대하여

by 예담

"82년생이지만 공공 학번입니다."

82년 1월생, 공공 학번이고 친구들은 81년생이다.


초등학교 때 키순서로 번호를 매기면 늘 3번 안에 들었다. 나는 지금 167이지만, 초등학교 때는 한 살 많은 친구들보다 한 뼘만큼씩 꼭 작았다. 6학년이 될 때쯤 엇비슷해졌던 것 같다. 키도 작고 마음도 작아서 잘 울고 겁도 많았다. 꼬맹이는 겨울방학이 오면 억울했다. 친구들처럼 따스한 봄에, 푸르른 여름에, 선선한 가을에 생일파티를 하고 싶었다. 4교시 쉬는 시간쯤에 초대장을 나누어주고 "야! 나 내일 생일 파티해. 우리 집에 와"라고 말하는 상상을 해보며 피식 웃다가 달콤함의 끝인 초콜릿 케이크로 상상 속 장면을 전환시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가서 축하해주었다.


"네 생일은 언제야?"

"응. 나는 1월이야. 겨울방학 때! 그래도 꼭 와야 돼! "

꼭꼭 약속을 받아냈지만 아득했다.




방학 때 생일파티를 못해봤던 건 아니다. 어느 겨울방학 때는 생일이 다가오자 입이 뾰로통해져서 댓 발 나왔나 보다. 엄마가 아이들을 불러 파티를 열어주셨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고 친구에게 직접 초대를 할 수 있었다면 기분이 조금 달랐을까. 엄마가 아는 엄마에게 하는 초대는 흥이 안 났다. 우리 반 친구들이 아니라 아파트 친구들이 왔다. 그저 그랬다. 즐거움이 억지스러웠다.


학기 중에 교실에서 좋아하는 친구를 툭툭 치며 새침하게 초대하고 싶었다. 괜히 어깨를 으쓱하고 싶었나 보다.

온전히 나로서 주목받고 싶은 하루, 다가올 행복을 모두 준비해놓고 하나하나 맛보고 싶은 하루였다.

그러니까 다가올 행복을 큰 가방에 가득 담고 짜잔 하고 열고 싶었다. 말랑말랑한 젤리와 달콤한 초콜릿에 두둥실 날고 싶었던 마음은 피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쉽게 가라앉아버렸다.


따뜻한 봄이나 명랑한 여름의 달고 생기 있는 공기와 달리, 겨울은 칙칙하고 무거웠다. 콧물 찔찔 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사회에서 나이를 말해야 할 때면 항상 덧붙이게 되는 말, " 82년생이지만 공공 학번입니다. 빠른 년생이라서요."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그 말을 덧붙이는 걸 보면 '나 꼰댄가?' 싶기도 했다. 한 살 그게 뭐 대수라고. 구질구질 챙겨댔는지.


'너는 친구고 너는 동생이야! 왜냐면 나는 빠른 이거든.'

'아이고! 의미 없다.'




"이번 주에 가족 다 같이 밥 먹자. 소고기집 예약했어! " 생일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그것까진 참말 좋았는데, 따라오는 이유가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아버님 생신, 내 생일, 조카(시누이 아들) 생일, 우리 딸 생일 겸겸 겸!!!이라는 거다. 자그마치 몇 개를 갖다 붙였는지 택도 아닌 말을 들으면 순간 멍해지는 것처럼, 머릿속이 정지했다. 그리고 불쾌했다.


"아버님 생신만 하자. 뭘 다 갖다 붙이고 그래. 아버님 생신으로 밥 먹는 걸로 하자!"


남편은 그건 그냥 타이틀이고 같이 밥 먹는 게 중요한 거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진짜 모른다. 참으로 담백한 사고다. 미묘한 감정의 들숨과 날숨을 모른다.

양력 생일과 음력 생일의 애매함으로 결혼하고 몇 번 아버님과 같이 생일을 맞았다. 초를 불긴커녕 박수만 치다가 끝에 받은 축하인사는 영 떨떠름했다. 축하만 하고 싶었다. 아버님 생신과 함께라는 것도 뭔가 송구했다.


무엇보다 퉁치고 싶지 않았다. 원 플러스 원 마냥 가성비 좋은 축하는 별로였다.

아무리 그래도 생일은 가심비 아니냐!





일 년의 하루 생일, 우리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함에 집중된다. 가까운이 들에 게 축하를 받고, 당연한 의식 속에 일상의 빈틈이 채워진다. 어제까지 균열되었던 틈새가 말랑함으로 채워진다. 반복되는 삶이라 할지라도, 다시 벌어지고 말 틈새라 할지라도, 채워질 수 있다면 언제든 노프라브럼이 되는 것.

채워질 수 있다는 믿음은 작은 배려로 쌓인다. 헤아려보면 아주 작은 마음들.

고작이 전부가 되는 사랑이란...



겨울에 태어난 것이 때론 심통 났던 아이였던 나도 겨울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겪고 나서야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한겨울 출산을 해서인지 몸조리를 잘 못해서인지 겨울이 올 때마다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유독 추위를 더 타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힘들게 누워있을 때 할머니의 실망한 표정과 차가운 말에 더 한기를 느꼈을 거다. (그로부터 2년 뒤 따뜻한 봄날에 엄마는 남동생을 낳았다. 할머니의 사랑을 봄햇살만큼 듬뿍 받았던 우리 동생 )

축하 아닌 축하를 가시처럼 받았을 엄마의 겨울이 나의 생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사랑받고 싶어 발을 동동 굴렀던 그 날은, 엄마가 몸과 마음을 축 늘어뜨린 채 나를 세상에 보내었던 날이었다.


나의 생일은 엄마에게 시린 겨울 속 따뜻했던 하루였을까.

수만 가지의 빛나는 감정에 눈이 부셔서,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타고 흘렀던 나의 아이가 세상에 온 그날처럼.


한 해의 시작과 끝인 겨울, 모두에게 겨울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자 설렘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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