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과 세로토닌
맥주를 마시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냉장고 속에 맥주는 영문을 모른 채 멀뚱멀뚱 쳐다보지만 애써 고개를 돌린다. 어떤 다짐이나 계획과 함께 시작된 금주가 아니었다. 하루 이틀 가까이하지 않다 보니 시나브로 멀어졌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모유수유라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면 본격적인 육아의 시대, 제2막이 열린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한 지난한 육아의 쉼표는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살금살금 나와서 마시는 맥주 한잔으로 충분했다.
아프지 않은 일상의 날들에 감사하여 건강하게만 자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던 마음이 전부일 때가 부모에겐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부모는 학부모가 되었고 학생이 된 아이는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엄마, 근데 어른들은 왜 술을 마시는 걸까? 어린 왕자 책에서처럼 기억을 잊고 싶어서야? 마시면 생각이 안 나게 돼?"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럴듯했다.
아이들의 말은 가만히 되뇌어보면 작은 파동이 멀리 퍼져간다.
"음, 너희들이 과자나 젤리를 먹으면 기분이 좋은 것처럼 어른의 간식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지. 생각을 멈추거나 잊는다기보다는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인 것 같아. 마음을 환기시키는 건데, 환기가 뭔지 알지? "
"응. 공기를 새롭게 바꿔준다는 거니까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거?"
아이와 나눈 대화를 복기해 보니 영 마뜩잖았다.
한 줌의 바람에도 들썩이며 부대끼던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친구관계로 힘들어할 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네 기분은 너의 것이야.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너의 기분을 정할 순 없어. 마음과 생각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야. 타격받지 말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을 해봐." 조언이 무색해졌다.
밤에 슬그머니 맥주를 꺼내려던 손이 한 템포 느려지며 멈칫거렸다. 하루이틀 마음이 향하지 않게 되니 그뿐이었다. 그리 애달프지도 않아 머쓱했달까.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고 맑은 정신에 시작하는 하루가 무엇보다 좋다. 와인은 다음날 두통이 있었고 남편이 권하여 마셔본 위스키는 숙취가 없어 놀라웠지만 당신의 취향만 존중하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소주와 막걸리는 안 마신지 십년쯤 된 듯 하고 그나마 나와 가장 친했던 맥주는 에일과 라거 각각의 매력에 취해 골라마시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개운한 기쁨이 더 반가워졌다. 술 마시지 않는 어른도 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느낌도 꽤 괜찮다. 삶의 매력을 다르게 느끼게 되니 변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이 아니라 삶이 변하고, 가치가 달라진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오늘의 나의 태도가 정해진다.
무수한 감정의 의식에 술을 제외시켜 보기로 했다. 강력한 자극을 주는 도파민의 기쁨에 현혹되지 않고 소소하고 은은하여 존재감을 드러내진 않지만 작은 행복을 전해주는 세로토닌의 충만함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한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왔고, 아이들과 함께 마시는 차 한잔이 잠들기 전 우리의 세로토닌이 되었다. 지난주부터 마시고 있는 생강차는 처음에는 비호감이었으나 비염이 미미해지는 효과를 느낀 아이들은 이젠 꿀떡꿀떡 잘도 마신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가 편안해보이면 나의 밤도 고요해진다. 작은 행복은 그렇게 저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