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눈에 비치는 부모의 민낯
이비인후과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크게 웃으며 마주 잡은 손을 흔들어댔다. (아... 암만 생각해도 이유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이들한테 다시금 물어봐도 까무룩 하다.) 생각이 묘연한걸 보니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였나 보다. 아마도 보통의 시시콜콜한 웃음이었을 텐데... 아이가 던지는 한마디에 순간이 멈추었다.
"엄마! 나는 기쁜 엄마가 좋아."라고 말하며 잡은 손을 두 손으로 끌어안으며 애교를 피운다. "응?"이라고 다시금 묻자, "나는 기쁜 엄마가 좋아. 엄마가 좋은 게 좋아."라고 했다. 순간 서늘했다. 늘 기쁜 엄마였다면 매일 한결같이 웃어주는 엄마였다면 가볍게 넘겼을 텐데. 그래 주지 못했던 순간들이 깊은 구석에서 차갑게 스친다. 스친 살결이 따갑다. 마음이 순식간에 부어오른다. 못났다. 오늘 아침에도 마스크가 어디 있는지 못 찾는다는 시답잖은 이유로 눈을 흘겼던 것이 생각난다. 부끄럽다.
알지. 왜 모를까. 세상 엄마들이 다 알지만 쉽지 않은 그 무엇.
엄마의 민낯.
아이가 잠든 밤에 엄마는 번뇌를 한다. 곁에 잠든 아이를 매만지며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하루를 되감기 한다. 그런 마음이 있다. 모자라고 벅찬 마음.
덜 주면 애가 타고, 더 주어도 허기진다.
물속에서 수영하듯이 힘을 빼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랑임을 나는 안다. 알고도 틀린다.
나는 알고도 틀리고, 그는 모르고도 맞춘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 친구 누구는 아빠한테 혼났데." "엄마, 내 친구 누구는 아빠가 술 취해서 와서 거실에서 잤데." "엄마, 내 친구 누구는 아빠가 무섭데."
종알종알 친구의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의 표정이 은근히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자꾸만 느끼하게 웃는다. 왜인가 했더니, 뒤에 이어진 아이의 말들이 망울망울 기껍다.
"내가 그랬어. 우리 아빠는 절대 혼도 안 내고, 착하고, 친절하고, 술 취한 적도 한 번도 없어."
어깨를 으쓱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나 보다.
엄마, 우리 아빠는 너무 바빠서 같이 놀러 가기는 힘들지만 안 바쁠 때는 우리랑만 있어준다고 아이가 말한다. 작은 입으로 차근차근 아빠를 자랑한다. 큰 선물을 사준 아빠가 아니라, 좋은 곳에 여행을 데리고 간 아빠도 아니라, 고작 다정한 아빠를 있는 힘껏 크게 추켜세운다.
좋은 아빠란 무엇일까? 함께 있으면 편안한 아빠.
쇼파귀신이 되어 아빠가 편안한 그 느낌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있는 아이의 마음이 평온한 그것.
여유 있게 기다려주고, 웃으며 나를 바라봐주는 아빠. 실수투성이인 나를 믿어주는 바보 같은 아빠.
"에이, 그런 아빠가 어딨어?"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우리 아빠를 보며 자란 내가 믿지 못했던 상상 속 아빠가 우리 남편이었다니!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 남편은 비현실적인 바다였다. 아이들은 드넓은 아빠의 바다 안에서 몸에 힘을 빼고 수영을 만끽했다.
아이가 자랑하고 싶은 아빠의 모습이 근사해서 사뭇 부러웠다. 나와 몇 곱절의 시간을 더 보내고 있음에도 우리 아이들에게 바다는 아빠다. 가족이지만 우리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염없이 믿고 존중해주는 이가 있다면 내면의 힘은 더 단단해질 것임은 자명하다.
한 인간이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부정의 시기가 필요하다. 이때 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인 나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 삶에 집중해야 한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지금 내가 행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