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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주일 후

다른 건 몰라도 학교는 가야 한다.

by 예담



은주가 죽은 지 일주일이 넘기도 했고 남조선으로 온 지 일주일이 넘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내가 지옥 같은 상념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줌마는 날 병원에 데려가서 붕대를 감게 했고 생각보다 많은 치료들과 그로 인해 꽤나 큰 의료비로 아줌마의 안색이 흐려졌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셨지만 예민함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운 나에게는 훤히 드러났다. 이 정도면 굳이 붕대를 감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해주었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편할만한 점을 짚어주고 배려해 주었다.


다리에선 샛노란 진물이 흐르고 피가 새었을 자국에서 불쾌한 냄새가 났고 일주일째 방치해 둔 흙과 모래가 묻은 내 몸에선 역한 냄새가 났다. 아줌마의 말을 안 듣고 버틴 탓이다. 의사는 분명 몸을 깨끗이 씻고 같이 처방해 준 약을 잘 바르라고 했지만 그냥 흘려들었다.


처음 보는 부부와 함께 사는 동안 하루하루 깊은 동굴 속 안에서 잠만 자는 게으른 곰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난 원래 게으른 성격이 아닌데. 조금만 더러워도 비위가 약해서 절대 못 견디는데...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부부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왜 날 도왔는지 그런 구질구질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관심 없었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흥미로웠지만 그런 사치를 누리면 안 되었다. 마음이 동할 때마다 은주를 생각했다.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다가 은주 옆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부부는 나에게 더 많은 걸 요구했다. 한마디로 인간답게 살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싫었다. 다시 시작한다 해도 아주 많은 세월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런 귀찮고 까다로운 일을 하는 것보단 편하게 나를 차차 잃어가는 것이 더 편했다. 하지만 계속 모른 척하며 지낼 순 없었기에 내 이름 세 글자를 불러주었고 나이와 몇 가지 시시콜콜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조선이란 곳이 궁금했고, 기대와 의심도 들었다.

내가 차츰 적응하는 것을 보던 아줌마는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영애야, 다른 건 싫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


아줌마는 어색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눈빛은 자꾸만 아줌마의 깊은 눈빛을 과녁 피하듯 피하기 일쑤였다. 겁나서였을까. 그건 모르겠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냥 친절하고 상냥한 줄만 알았던 그들은 생각보다 단호하게 학교를 보내려고 했다.


부부는 엄청난 책임감을 가지고 나에게 에너지를 쏟았다. 내가 내 인생을 망치든 보란 듯이 성공하듯 그건 그들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왜 학교에 가야 할까. 감히 내가 학교를 간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아줌마는 당연한 듯 이야기한다.


북에서는 인민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경제과제로 파지나 파철을 가져가야 했고, 겨울 난방에 필요한 화목비 등의 학교 운영비를 내야 했다. 교재도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큰 부담이었다. 당연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고 결국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부모님의 사정이 빠듯하여 일을 돕는 동무들도 있었다.


교육의 기회가 남조선처럼 평등하지 않다. 부모님의 출신이나 경제력, 정치적 지위에 따라 기회는 달라지고 심지어 공부를 아주 잘해도 부모님 출신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학교란 평양에 사는 공산당 고위간부의 자녀들이 받는 교육과 다름없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쉽사리 호의를 받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는 은주였다. 자유를 찾아왔지만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은주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시간이 지나자 방에 틀어박혀서 잠만 자는 것도 지루해졌다. 아줌마는 내가 머무는 방에 컴퓨터를 가져다주었다. 평양사람들이 쓴다던 뒤통수가 납작한 컴퓨터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아줌마가 나갈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방문이 닫힌 후 입을 벌린 채 가까이 다가갔다.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키보드를 만져보며 한동안 조정법을 익혔다. 게임도 해보고 영상들도 보았다. 컴퓨터에 집중하니 시간이 빠르게만 갔다. 무엇보다 두고 온 은주에 대한 죄책감과 지난 상흔들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집착하며 빠져들었다. 하지만 회피하고 지나친 시간은 상처를 더욱 곪게 만든다.

방에 박혀 컴퓨터만 하는 나를 내가 못마땅해하며 앉아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문을 벌컥 열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비장한 표정이다. 뭐야 전쟁이라도 난 거야?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 짜증이 났기에 아저씨를 노려봤다.

"영애야 나와서 교복 입어보자. 오늘 학교에 가서 서류도 제출했고 이제 정말로 학교에 가는 거다."


“일없습네다.”


시선은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한 채 짧게 답했다.


"사람은 혼자보단 함께 어울려서 지내야 해. 학교에 다니며 또래들과 어울리고 공부도 시작해 보자. "


입을 삐죽 내밀며 미동이 없는 내 앞에 교복을 가져다 대며 아줌마는 미소를 지었다. 옷에서 봄꽃의 냄새가 난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줌마는 교복을 깨끗이 씻고 주름하나 없이 다리기까지 했다. 이 아주매는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잘해주는 걸까?


혹시 간첩인가? 나를 북으로 다시 끌고 가려고? 생각이 얼기설기 엉켜버렸다.


"잘 맞을 것 같아. 이제야 학생 같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너무 긴장하지 마. 학생은 학교를 가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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