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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아원에서 만난 백은주

교환일기

by 예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물먹은 휴지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만약 은주가 살아있다면 같이 학교에 갔겠지. 은주가 교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리의 처지가 뒤바뀌었다면 은주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보다 씩씩하고 아줌마 아저씨에게도 공손하고 밝게 지내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오마니를 만나서 전과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 어깨가 펴지고 두려움으로 차 있던 마음에 용기가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끔찍했던 너의 마지막 순간이 아닌 빛나던 너를 떠올린다. 앞으로 있을 미래만을 기대하던 반짝이던 너의 모습을! 고된 현실 앞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너의 표정을, 그리고 당찼던 너의 걸음을.


교환일기.


그것을 시작으로 은주와 나는 가까워졌다. 내가 살던 곳은 고아원이었다. 건물이 낙후되고 열악한 고아원에는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우리는 늘 배가 고팠다. 배정된 양은 턱없이 적었다. 아침에는 늘 옥수수 송대가루로 쑨 죽을 먹었다. 맛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쓰레기를 뒤져서 먹다가 병에 걸리는 동무들도 많았고 영양실조는 당연했다.


좁은 방에서 많은 아이들이 함께 지내야 했기에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사춘기가 시작되고부터는 불편함 이상의 불쾌함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불평을 하면 안되었다. 노동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동무들은 중국으로 팔려간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 동무들 중 종종 사라지는 동무들이 있었다.


굶어 죽거나 팔려가는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은 복종했고 노동으로 지친 아이가 선생님께 혼이 나는 걸 목격한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쉬지않고 모래와 돌을 날랐다.


당시에 새롭게 고아원에 입소한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백은주였다. 백은주는 고아원으로 들어오는 그날 처음 보는 까만 승용차를 차고 한 아저씨와 같이 들어왔는데 그 남자는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꽤나 잘생긴 신사였다. 아빠인가?


긴 머리에 백옥 같은 얼굴, 오뚝한 코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던 은주는 동무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도대체 저런 애가 왜 고아원에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복조선에서는 탈북을 시도하거나 준비하다 발각된 사람은 북한 국가보위성, 중국 공안부, 북한군 보위국등에 체포되고 아이들은 고아원에 보내지는 일이 많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척들도 함께 체포하였기 때문에 홀로 남게 되는 동무들이 많았다.


혹시 가족이 탈북을 해서 고아원에 보내지는 걸까?


동무들이 모두 은주 옆에 몰려있으니 혼자 공간을 누릴 수 있어서 오히려 편하다. 그런 쾌적함을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뭐 나쁘지도 않다. 쓰다가 남은 공책들을 북북 찢은 뒤 서로 엮어 일기장을 만들었다. 나의 유일한 낙은 작은 공책을 엮어 만든 일기장이었다. 일기가 지루해지면 동물을 그렸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생각하며 머릿속의 장면을 실현해 그릴 때면 쉽게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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