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멈추라.
정확히 한 달 뒤 정말로 너는 고아원을 나섰다.
아직은 어두운 시리게 추운 새벽녘의 눈길을 너는 주저 않고 나섰다. 발을 동동거리며 걱정하던 나는 뛰어나와 간신히 널 붙잡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같이 길을 걸었다. 그저 나는 은주를 돕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가슴이 미친 듯이 쿵쿵거렸고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깜깜하고 구불한 산길은 여기저기 풀들이 무성하여 더욱 무서웠다.
“나에게 다 생각이 있어. 영애야 걱정하지 마라.”
은주가 콧노래를 부르며 신이 난 듯 큰소리를 낼 때마다 왠지 나는 두려움이 일었다. 두려움에 이빨이 덜덜 떨리는 것도 모르고 은주는 날이 밝으면 기온이 올라갈 거라고 차가운 내 손을 잡았다.
“3시간 정도 걸으면 부둣가가 나온다. 거기서 배를 타자우.”
“거기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을거인데. 일없갔어?”
“안 들키면 되갔지. 걱정하지 마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은주가 멍청해 보였다. 아니면 멍청한 척하며 불길 속을 뛰어드는 걸까?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풀숲을 헤치며 바작바작 쉬지 않고 걸었다. 숨이 차올라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불안이 엄습하기에 입을 다물었는지도 모른다. 행여 바람을 타고 소리가 전해질까. 찬바람에 기침이 나올 때면 입을 틀어막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걸은 터라 발은 쥐가 난 듯 아파오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지만 두려움은 조금이나마 사라져 있었다.
“쉿, 멈추라.”
은주가 풀밭에 주저 없이 수그리며 소곤댔다. 팔뚝이 나뭇가지에 긁혀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눈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이는 걸 보고 서둘러 바짝 엎드렸다.
“반대편 숲으로 들어갈 기야. 거기 뒤쪽에 부둣가가 있다. 낚싯배 아저씨가 도와줄 거이네. ”
은주는 소곤거렸다. 너의 이상한 말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을 기운조차 없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둣가는 최소한 100미터는 넘어 보였다. 주위에 일렁이는 그림자는 한둘이 아니었고, 틈을 보는 너와는 달리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덮쳤다.
“조용히 기어가야 한다. 저 인민군들 피곤한 시간이라 아마 눈치 못 챌 거라우.”
소곤대는 너의 목소리에 울음이 맺혀있다.
은주의 운동화 바닥만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기었다. 돌멩이와 흙이 배에 쏠려서 너무 아프고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얼어붙고 손은 숲을 헤치느라 상처투성이였지만 죽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인 두 명이 바로 앞에 있다. 이 구간만 통과하면 되는데.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알아차릴 만큼의 거리였다. 바닥에 몸이 닿이는 소리마저 신경이 쓰여서 몸을 조금 일으켜서 숙이며 걸었다. 다행인 건 군인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는 거였다. 가끔 큰소리로 웃을 때마다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은주가 무사히 도착하여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바로 앞에 보인다. 급한 마음
에 달리려고 자세를 잡았다. 바람이 얼굴을 탁탁 치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턱!
둔탁한 소리에 계속되던 군인들의 말소리가 멈췄다. 기분 나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등 사이사이로 식은땀이 물 흐르듯 나고 심장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듯 크게 들린다.
괜찮을 거야. 펌프질 하는 심장을 달래며 수풀사이에 쭈그려 앉았다.
“거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