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금방 갑니다.
대단지 아파트 내에서는 종종 장터가 열린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그러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터가 열리고, 과일과 야채를 비롯하여 갓 튀겨 나오는 어묵, 뻥튀기 아저씨가 가져오시는 견과류와 정겨운 손과자에 갖가지 군것질거리들이 풍성해지는 날이다. 아이들도 장날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시끌벅적 들떠있는 분위기가 아이를 닮았다. 어렸을 적 나도 엄마손 잡고 장 보러 가는 것을 설레 했다. 엄마는 항상 호떡이나 어묵을 사주셨는데 그게 그렇게나 맛났었다. 뜨거운 호떡을 호호 불어 먹으며 졸래졸래 따라 걷는 시장 구경은 눈과 입 모두가 진수성찬이었다. 정신없이 먹다가 갈색설탕 국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옷에 묻기라도 하면 엄마의 잔소리를 한 움큼 같이 먹어야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집에서 듣는 잔소리보다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흘려듣기 좋았달까. 암튼 그것마저 호떡 속 찐득한 설탕처럼 달았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터 간식은 어묵과 함께 풍덩 담겨 있는 물떡! 그리고 회오리 감자와 호떡이다. 요즘은 회오리감자에 꽂혀서는 바비큐 소스를 뿌려달라고 주문까지 하는데 (마치 뿌셔뿌셔에 뿌려먹는 스프와 매우 흡사한...) 어쩌겠냐. msg 흩뿌려진 자태가 영 찜찜하긴 하다만...(맛 있 잖 아!)
회오리 감자와 호떡을 사러 간 어느 날! 주문을 해놓고 다른 찬거리들을 사러 다녀오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하여, 호떡과 소스 뿌려진 회오리감자를 주문하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많이 기다려야 해요? "
"세월은 금방 갑니다."
호떡 사장님이 넉살 좋은 얼굴로 웃으시며 답하신다.
"네. 그렇지요. " 웃으며 대답을 하고 짐짓 여유 있는 척하며 기다린다. 일상에는 유머가 필요하다. 같은 질문에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으면 우리는 어묵집으로 향했을 테고, 조금만 기다려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으면 또 시간을 재촉하며 기다림에 집중했을까. 그렇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유머는 자잘한 조바심들을 가뿐히 가라앉힌다.
그렇지요. 세월은 금방 가는데요. 일 년도 이렇게나 쏜살같이 지나갔는데, 튀겨지듯 구워지는 호떡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오 분 십 분이 머 대수라고 조금 더 빨리 못 받아 안달이었을까요. 걔내들이라고 뜨거운 데서 오래 있어봤자 얼마나 견딜 수 있으려고요.
바뀐 신호에 단 일초도 못 참고 빵빵 빨리 가라며 클락션을 울리는 어른들, 학교를 마친 후 이학원 저 학원으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아이들의 시간 속에는 유머가 얼마나 있을까요?
잠깐의 기다림도 익숙치 않아 스마트폰을 휘리릭 내리기 바쁘고, 가만히 읽으며 생각하는 여유보단 유튜브가 편합니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편리함엔 기다림이 없어서 애틋함도 없죠.
유머가 있는 사람은 유연하다. 일상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희로애락을 즐기고 유연하게 노를 젓는다.
아이와 놀 땐 오롯이 아이가 되기 위해 애쓰곤 했다. 나이에서 자유로운 나이 듦이란, 어려지기 위해 가꾸는 것이나 철없이 마냥 즐기는 것도 육체의 건강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의 유연함이 아닐까.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 시절 차장님이 그러셨다. 회사에서 버텨내려면 플렉시블 해야 한다고.
비록 플렉시블하지 못해 퇴사했지만, 지나고 보니 정말 모든 순간 필요한 것은 유연함이었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거쳐온 시간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생각의 유연함.
다만 나는 내가 속하는 곳에 한정되어 있는 생각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말을 곱씹는다. 유연하지 못해 화르륵했던 순간은 늘 한발 늦게 자각됨이 오류지만, 겨울밤은 깊고 길어서 괜찮다. 추위로 움츠려 들고 온기로 따뜻함을 느끼며 말랑해진다. 기다림이 있는 12월의 밤은 제법 근사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기다림 속에서 동그랗게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