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을 그만두고 도서관으로 간다.

프롤로그

by 예담


내가 말하고 있는 학습목표에 대해 '내가' 동의할 수가 없었다.


하여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아이들을 참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육아를 하며 더러 지쳤지만 소통하며 가르친다는 것은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부모님들과의 상담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도움이 되기 위해 아동심리공부와 교육서적 읽기에 공을 들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부모교육도 진심으로 임하였다. 감사하게도 정원마감에 대기가 이어졌다.


아이들의 뇌를 자극하고 고르게 발달시키기 위한 학습을 학부모들께 설명하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홍보를 하면 백이면 백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었다. 그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리이고 부모라면 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분명하게 뇌발달에 도움이 되고 학습적인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사상이 차츰 변했다. 책을 읽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피어나는 한 줌의 의구심은 점차 짙어졌다.


아마추어인 내가 연구결과에 반박하기란 미흡하겠지만 현장은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은 모두 제 각각이기에 어떠한 통계로 똑같은 교육을 하기에는 아깝다는 사실이었다. 알맞게 부합이 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다른 길로 가야 하는 아이들이 존재했다. 똑같은 학습을 하러 오지만 결괏값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차라리 그 시간에 밖에서 뛰어노는 게 훨씬 뇌자극에 도움이 된다. 창의력을 운운하며 문제를 풀리고 있었으나 그 나이 때의 창의력이란 자연과 함께 뛰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 자극을 받으며 놀거리를 찾아 헤매며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심심할 때까지 가만히 두어야 뇌가 움직이고 '뭐 하고 놀까'라고 골몰하며 창의력이 생긴다. 부모에게는 그것이 어렵다. 가만히 두면 사고를 칠 것 같고 우리 아이만 아무것도 안 하다가 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 때문이다. 게임기와 놀거리가 풍족하며 평일에는 짜인 플랜 속에서 학습하고 주말에는 부모가 짜놓은 외출의 시간표를 또 성실히 이행하는 세계의 아이는 결핍에서 오는 창의력을 얻을 수가 없다. 다만 창의력학습이라는 것을 하며 위안을 찾을 뿐이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이야기가 아이들의 뇌를 움직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아이들이 찾아내는 것이어야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이야기 안에는 연구결과나 수치, 인과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장의 씨앗이 있다.


책에서 읽은 글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뿐 바다를 잡을 수는 없다.]

지중해 어부들이 나눠가졌던 삶의 지혜라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쓰이고 있는 말은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에 몰두하기에 바다를 보지 못한다. 드넓은 대양을 누리지 못한 채 우리 아이가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는가, 다른 아이들은 몇 마리를 잡았는가, 더 쉽게 방법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는지에 정성을 쏟게 되는 것이다.


대치동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대입로드맵이 짜인다고 한다. 문해력도 학원을 다니며 배우고 사고력문제는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유형을 접해 외워버리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영어는 절대평가로 바뀌면서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과정까지 마무리 지어서 중고등학교 때 시간을 벌어야 된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고 작문을 해야 하는지, 문제를 풀기 위한 어떤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득과 부작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아이들이다. 얼마 전에 보게 된 다큐 프로그램에서 한 선생님은 '지적인 학대'라는 표현을 쓰셨다.


물고기를 잡는 최상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 아이는 이제 대어를 낚는 기술을 배울 차례가 될 것이고 그다음 플랜도 척척 짜여 있지만 최상의 스팟에서 물고기를 잡느라 유유히 대양을 항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생각으로 교재를 보여주며 뇌발달과 학습능력의 향상을 운운하는 상담을 하고 바르게 앉아서 공부를 하는 어린아이들을 칭찬하는 것에 진정성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가세요. 아이들을 도서관에 풀어주고 마음껏 책을 읽으라고 하세요.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아요. 수많은 책들의 냄새를 맡고 책표지를 구경하게 하세요.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게 해 주세요.

조용히 책에 집중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경외심을 갖게 해 주세요.

영어학원 레벨테스트 대신 도서관에 있는 영어동화책을 마음껏 탐닉하게 해 주세요.


하여 나는 내 앞에 놓인 잘 닦여진 길로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길이 아닌 숲을 통해 걸어보기도 다짐했을 때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분명히 잃은 것이 있었지만 얻어낸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행복은 스스로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