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갑자기? 왜?
원체 느리고 여유 있는 사람인데 마음이 놀라 말이 바빠졌다.
답변을 기다리는 남편의 눈에 당혹감이 비친다. 동그랗게 치켜뜬 큰 눈보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작은 눈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덤덤하게 말을 받았다. 의뭉스럽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혼자서 면접을 보았고 모든 것이 마무리된 뒤에 출근을 앞두고 툭 꺼내놓은 보따리에 남편은 적잖이 당황했는지 두서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수다스럽지 않은 성격인 나는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답했다.
응. 수학 강사!
영어가 아니고?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서 있는 아저씨.
편견을 버리세요! 언제 적 영문과예요? 우리 애들 가르치면서 수학교육에 대한 책들은 모조리 읽었고 수학 싫어하는 따님 덕분에 수학교육에 관심이 아주 많아졌어요.
즉흥적인 편이다. 촘촘한 계획을 세워두고 불현듯 모든 걸 바꿔버리기도 한다. 깊게 생각하지만 찰나의 마음 한 점에 선뜻 하루를 내어 주기도 하고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한치의 조바심 없이 담담히 해내는 것이 나의 장기일 수도 있겠다. 한마디로 무모하다. 호기롭게 무모한 사람이 뜬금없이 계획에 없던 취직을 했다.
전조는 작년부터 있었다. 사춘기특유의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말을 덤덤히 넘기는 척했지만 달아오른 속을 식히느라 심호흡을 하고 인내하는 것이 언제나 쉽지는 않았다. 사춘기가 시작된 큰 아이와 균열이 일 때마다,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아이에게 서운함을 느끼며, 아이들과 내가 분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어느 시기부터, 친구가 소중해진 아이들을 기껍게 바라보며 한편으론 외로움을 느끼는 스스로를 자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에게 두었던 시선을 절반쯤 거두어들이고 나에게 돌려야 했다. 자아가 뚜렷해진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내가 어떤 모습인지 복기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보는 사춘기 아이의 모습이 아닌 사춘기 아이가 보는 부모의 모습! 거꾸로 돌려 보면 틀어졌던 프레임이 전부 아이의 탓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삐뚤어진 시선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장과정을 이해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함을, 받아들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좋은 본보기가 되어 자양분이 되어 주어야 했다.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경외감을 주기 위해서라도 다시 나의 삶에 충실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살아야겠다. 나의 불안과 결핍에서 기인한 무엇을 사랑으로 포장하여 통제하고 설계하여 아이에게 완벽한 삶의 도면을 그려주지 말자 다짐하며. 예측불가능한 아이의 삶에 나는 비중 있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아름다운 서사가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언제나 난국을 헤쳐 나아가는 이는 주인공이며 주위엔 본받을 이가 존재했다.
이루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동시에 이력서와 면접을 준비했다.
큰아이가 유독 어려워하던 과목이 수학이라 수학교수법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던 터였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기다림을 동반한다. 기다리지 못하고 친절을 들이밀면 아이는 달콤한 과실을 먹을 수 있지만 4계절 내내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금세 실망감을 내비친다. 모르는 문제를 붙들고 생각을 확장시켜 가며 고뇌하는 아이를 쉬이 기대해서도 안된다.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 여정을 동행하며 아이들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졌다. 해서 호기롭게 이력서를 들고 입시학원으로 향하고 면접을 보았다. 전공이 영어인데 왜 수학을 지원하냐는 물음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데 매력을 느껴서, 아이들에게 몰입하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서.
있는 그대로 포장할 것 없이 담백하게 면접을 보고 오케이! 그로부터 2주 뒤 실전에 투입이 되었다.
하교 후에 집에서 늘 아이들을 맞아주고 간식을 준비해 주었던 엄마의 부재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염려는 정말이지 기우였다.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쩍 성장해 있었다. 큰아이의 학원시간이 늦어서 저녁을 혼자 챙겨 먹고 나가야 함이 마음에 걸렸는데, 오전에 싸두고 간 도시락을 말끔히 먹고 설거지까지 해 두더니, 어느 날부터는 오믈렛도 만들어 먹고 담아놓은 도시락을 재조리해 먹기 시작했다. 예컨대 햄은 전자레인지용 용기를 데워 먹는 것보다 프라이팬에 다시 볶아 먹는 것이 맛있고, 국도 레인지보다 팔팔 끓여서 먹는 게 맛이 있다며 나름의 응용을 하기 시작한 맛잘알 녀석이다. 어쩌면 살면서 알아야 할 지혜들은 살아가는 기본적인 능력인 것을, 너무 보듬어 키웠다 싶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날 선 말투와 투정이 사라졌다. 마주하며 일상이 되었던 간섭이 사라져서일까,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서로에 대한 연민과 애정 때문일까, 아니면 출근 전 매일 써두고 간 나의 편지 때문일까,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생활할 수 있는 집의 자유에 취해서일까. 무엇인들 어떠리. 한결 보드라워진 아이의 말과 행동에 집안의 공기마저 가벼워진 듯하다.
아무튼 사춘기 아이는 달라졌다. 반신반의하며 소귀에 경 읽기 하는 심정으로 알려준 자잘한 생활규칙들을 생각보다 잘 숙지하고 있다. 다정함과 꼼꼼한 생활태도까지 바라기는 욕심이지. 각종 문제집이 쌓이고 프린트물이 여기저기에, 충전 안된 패드와 화장품들, 애완 달팽이까지 엉망이 된 책상을 보며 어제의 나는 기어코 한소리를 하며 스스로 치우라고 다그쳤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바빴던 날들,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어느 날, 우리 엄마가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었을 때의 안정감과 평온 같은 것. 내가 받았던 긍정의 기운을 떠올려본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쁘게 돌아가는 아이의 하루에 엄마인 내가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정리정돈이라고도 여겨진다. 잔소리 없이 아이의 책상을 말끔히 정리하고, 침대에 동그랗게 말려있는 잠옷을 건조기에 에어살균 하여 가지런히 걸어두고, 대충 개어 놓은 이불을 탈탈 털어 커튼을 젖혀 햇빛소독을 해 놓은 뒤 쪽지를 썼다.
"사랑하는 담아, 정리정돈을 직접 해야 물건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쓸 수 있어. 그렇지만 네가 깜박할 땐 엄마가 정리를 도와줄게. 중요한 프린트나 물건은 따로 잘 보관해 둬. 종종 설거지 도와줘서 고마워."
"응. 엄마 매일 맛있는 도시락 싸줘서 고마워."
당연한 건 없다. 소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범사에 감사하며 그렇게 아이들은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묵묵히 나의 일을 하며 아이에게 가졌던 시선을 서서히 거두어들이는 시기이다. 그저 지금도 충분하다고 믿으며 아이가 오늘 하지 못한 것 대신, 해낸 것을 살피고자 한다. 그것이 관심이고 사랑이며 긍정의 신호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 몫의 수학을 다 풀지 못했다면 관점을 양이 아닌, 풀어낸 몇 문제의 질에 두는 것이다. 한 문제라도 과정을 써 내려가며 풀어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고르고 매치해 보다 그대로 겹겹이 널브러진 옷가지들이 보이지만 그 와중에 세탁기에 가져다 넣어둔 빨랫감도 있다. 나름의 구분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어쩌면 사춘기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된 부모아이를 어르는 시기가 아닐까. 관점을 돌려 보면 울퉁불퉁 못생겼던 것들도 어느새 근사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성장하기로 한다.
백발의 시인이 보기에 젊음이란 인생에서 어느 특정한 기간의 명칭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나이도 능가하는 하나의 가치이다. 밀란 쿤데라 <생은 다른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