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아이의 교육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홈스쿨에 대한 작은 불씨를 키웠던 날들이 있었다.
끌 수도 없었고 섣불리 키우기도 겁이 났던 불씨로 인해, 홈스쿨과 대안학교 그리고 사립초등학교도 알아보았음을 고백한다. 제도권 교육과 아이의 자존감 성취감 사이의 간극. 오전에는 공교육 오후에는 사교육, 보이지 않는 시간 마스크를 쓰고 숨 쉴 틈 없이 바쁜 요즘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므로 유치원, 학교, 학원 등 아이들의 발길이 매일 닿는 곳의 어른의 역할은 조심스럽게 중요하다.
오늘 잘 해내는 것이 목표가 아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교재와 아이의 손끝보다, 눈빛과 표정을, 그리고 마음과 의지를 읽어내야 한다. 지금 이 페이지를 완벽하게 마스터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일 다음 페이지는 얼마나 더 몰입해서 잘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가늠하며 북돋아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저희는 소수 수업이라 개인별 맞춤 수업을 합니다.”
“학교는 다수 수업이라 한 명 한 명 봐줄 수가 없어요. 단체생활이니 알아서 해야지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소수 수업이라도 선생님이 아이의 교재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교재 맞춤 수업이지 아이 맞춤 수업이 아닐 테고,다수 수업이라 할지라도 선생님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결과가 아닌 과정, 틀림이 아닌 다름에 있다면 아이들은 분명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아도 그 마음을 느낄 것이고 성취의 쾌감과 배움의 짜릿함을 알게 될 것임을!
아이들이 분류되고 있다.
학교에서는 주류(잘하는 아이) 비주류(못하는 아이)로. 학원에서는 레벨에 따라 반으로, 혹은 책에 쓰인 숫자로 분류된다. 사실 레벨 맞춤 수업보다 성취 맞춤 수업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멀리 뛸 수 있고 뛰고 싶은 의욕이 충만하지만 1로 평가된 아이에게 “이번 시간은 2와 3을 해보자.” 수준이 3으로 평가되었지만, 지치고 하기 싫은 아이에게 “자 4와 5 할 차례구나.” 수준별 수업이 아닌, 교재별 수업 아닌가?
몰입이 가능한 아이에게는 앎의 재미를 충분히 만끽시켜 주어 성취감을 크게 얻을 수 있게 만들고, 어깨가 처진 아이에게는 하나를 주되 크게 반응해주어 내일은 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수업. 그런 수업이 내가 원하는 수업이자 배움의 즐거움이다. 사교육 업에 몸담았었지만 지키고 싶었던 신념이었고, 돌이켜보면 나 또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겨 무기력해졌던 때도 있었음을...
교육에 대한 무수한 생각이 강을 이룬다.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언제나 생각의 뿌리는 아이의 마음에 기반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