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자존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by 예담


꽃이 피어오르는 봄이 오면, 아이들도 새로운 곳에서 움트기 시작한다. 새학기 상담을 하며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엄마들을 만나 학교 및 학원이야기를 하며 학원을 함께 보내고, 아이의 새로운 친구도 만들어주는 모습이 3월엔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정답은 아니다.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내 가치관이 아닌 공유된 정보의 틀 속에 아이를 맞추는 것은 부모가 아이의 손발이 되어 푹신한 길을 걷게 해주려는 것 아닐까. 그것들의 가장 큰 함정은 자존감과 자기주도의 힘,그리고 좌절 내구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잡은 손에 조금 힘을 풀어야 한다.지켜 보고 관심을 가지되 간섭은 줄여야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칭찬에 힘을 조금 빼고 격려와 위로에 더 큰 힘을 더하는 것! 좌절내구력이 튼튼하게 길러지도록 말이다.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아이의 장점은 더욱 부각시켜서 크게 칭찬하지만, 정작 아이의 모자란 점은 모른 척 하거나 가리며 고쳐주기에 급급한 부모들이 많다. 칭찬받을만한 행동을 한 아이는 자존감이 강해지고 으쓱해진다. 그 아이에게 칭찬은 크게 한번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더해지면 자만이 되고 나중에 자신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을 수 도 있으니. 실수를 많이 하거나, 서툴고 부족한 아이는 불안하다. 자신감도 없고 자존감도 약할 터. 다그치며 고치려 하기 전에, 아이를 바라보고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형편없다고 느낄 때 나를 바라봐주는 단 한사람이면 충분하다고. 그 사람이 가정에서는 부모가 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예컨대, 다른 아이들에겐 쉬운 것을 우리 아이만 못 할 때, 혹은 아이가 큰 실패를 경험했을 때, 스스로 자신이 볼품없다고 풀죽어있을 때 물을 주고 사랑을 주는 단 한 사람 말이다.


느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남편에게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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