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 마세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by 예담

언제 이렇게 컸을까?

7살인 아들은 내년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둘째는 사랑이라고 했던가? 아기 때 잔병치레가 심했던 아들은 태어나고부터 언제나 내 걱정 내 사랑 내 불안 내 관심사 일 순위였다. 두 살 터울인 딸은 뭐든지 안정되게 잘했다.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아파도 잘 이겨냈으며, 가르쳐주지 않아도 뭐든 야무지고 차분하게 잘 해내었다. 시간을 주면 제 몫을 톡톡히 하는 딸아이와, 시간을 곱절로 내주고도 길 위에서 딴짓을 하는 아들의 시야는 달랐다. 같은 놀이를 해도 너무 과격해서 다치고야 마는 아이를 보면 당황스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 해주어야 함에도 상처를 보면 속이 상했다. 고백한다. ( 놀다가 다칠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딸아이와 비교했음을. )


같은 길을 걸어도 묵묵히 그 길에 집중하여 걸으며 목표에 집중하는 아이가 있고, 개미를 보느라 개미집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뒤처지는 과정에 집중하는 아이도 있다. 모두 지극히 정상적이다. 부모가 추구하는 관점에 따라 아이들은 평가될 뿐이다.


이번 명절에도 비교를 당했다. 그리고 명절이 되기 며칠 전에도 남편이 비교가 섞인 걱정을 했다.

첫째가 7살일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요는 그렇다. 첫째는 5살 때부터 글을 읽고 6살 때는 책을 읽고 논술을 하고 심지어 그맘때 자격증도 땄는데, 둘째는 왜? 왜? 시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놀기만 하냐고. (놀기만 하진 않아요! 책읽고 필사는 합니다만, 그것이 학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점의 차이겠지요.) 학교 가야 하는데 왜 천하태평이냐고. 부모님과 남편은 종종 걱정을 앞세워 흐릿하게 나를 타박하고 아이를 재촉한다. (걱정이라면 뒷짐은 풀고 어깨를 당겨앉아 진심을 담던지, 타박이라면 구체성을 담던지, 이도저도 아니라서 결국은 상처다. )


왜 답답하지 않겠냐만은, 심지어 첫째를 한 달에 80주고 5살에 놀이학교 보냈던 사람도 나인데. 달라요! 달라서 그런 것뿐! 아이마다 필요한 것이 달라요. (결이 다른 아이들을 로봇처럼 교육할 수 없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매번 설명한다. 조금 빨리 책을 읽고 문제를 푼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아이마다 키워주고 바라봐줘야 하는 것이 다를 뿐. 더 낫고 더 부족한 것을 벌써부터 찾으려 하지 말자고.


평균에 맞추려 애쓰면 아이는 평균에 다다르게 된다. 잘하고 못하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 존중하면 잘하는 것이 생긴다. (가만히 기다리면 어느 순간 하나둘씩 쑤욱 올라오는 막대그래프가 있다. )


아들과 딸의 차이. 그리고 각각의 아이마다의 성향의 차이.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똑같이 양육할 순 없다. 딸은 언어적으로 빨랐고 (본디 통계상 대부분 여자아이가 빠른 면이 있다.) 차분했으며 집중력이 좋았다. 아들은 발육이 빨랐고 (현재 키를 누나보다 앞질렀음) 계속 뛰고 싶어 하고 (에너지를 분출해야 하고) 말을 콧구멍으로 듣는다. (거꾸로 말했던 청개구리 엄마의 심정을 십 분 이해한다.)



아무튼 그런 아들에게 집중력을 키워주기 위해? 차분함을 관철시키기 위해? 교육기관에 보내어 체계적인 공부를 시킨다? No! 공부를 핑계로 아이를 길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아들은 학습은 느리지만, 아주 밝고 활달하다. (애교도 넘친다.) 모르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많고 뭐든 알고 싶어 한다. 허기가 졌을 때 뷔페에 가면 막상 많은 음식을 앞에 두고 골고루 먹지 못한다. 헛배가 불러 순간을 채워버리고 배를 두드리며 멍해지지 않도록, 하나하나 천천히 주고 싶다. 그리하여 배움에 대한 갈증이 계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한 자릿수를 배우는데 이미 세 자릿수의 덧셈, 뺄셈, 심지어 곱셈까지 가능한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 따로 심화학습을 할까? 공교육에서? "아우 시시해! 야 넌 저것도 모르냐?" 틀리거나, 고민 중이거나, 집중해서 풀고 있는 아이들을 비웃는다고 한다. 아이는 문제를 쉽게 푼 만큼 자만했다. 긴장과 설렘을 안고 시작한 학교생활은 시시하다 느껴진다. '고작 이렇게 쉬운 걸 배우다니!' '나는 다 아는데.' 배움이 시시해지면 재미가 있을 리 만무하고, 학교는 급식 먹고 쉬는 시간에 놀다 오는 곳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학교의 배움에 대한 습관이 초등학교 때 그렇게 잡힌다면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서도 굳어진 사고는 바뀌기 어렵다. 그렇게 사교육과 공교육이 자리가 뒤바뀌고 마는 것이다.


독서고수는 책을 많이 읽은 아이가 아닌 편하게 책을 집어 드는 아이라고 했다. 독서를 통해 재미를 즐기고 이야기에 공감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 공부 고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닌, 즐기는 아이 일터다.



비교하지 말아요. 느리게 갈께요!

아직은 그 속에 무엇이 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사고력과 창의력은 여유에서 비롯됩니다.










다름을 인정받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존재감을 느낀다.


조각을 하려는 목적은 일단 원래의 재료를 변형해 다른 형상을 빚어내는 데에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세공사의 역할은 다르다. 원석을 세공하는 사람은 원석 본연의 성질은 살리면서 재료 그 자체를 드러내고자 애쓴다. 단언컨대, 모든 아이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믿음보다 더 훌륭한 사랑의 증거는 없다. 실패보다 더 큰 성공은 없듯. [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프랑스 부모들의 십계명]


인간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평가하는 세상이 될 때,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과 공생하면서 더욱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사회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지성이 가야 할 미래입니다. [열두 발자국] 정재승


자연은 두서없이 움직이지 않고,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움직인다. 덧없는 야망이란 바람에 휩쓸려 낙엽처럼 땅바닥을 나뒹군다.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가 필요한 시기에 함께 걷고 질문에 답해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지금 이 순간도 흐르고 있고, 당신도 모르게 그냥 지나치고 있을지 모르는 골든타임. 내 아이를 빛나게 할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
앎을 느끼려면 반드시 '멈춤'이 있어야 한다. 바람과 똑같은 속도로 움직여서는 바람도, 나도 느낄 수 없다. 멈추고 바람이 스칠 때 그 시원함을 느끼고, 시원함을 느끼는 나를 인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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