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김치는 따뜻해.

김장김치와 덜 익은 딸

by 예담

김치냉장고는 맥주로 채우는 게 딱인데... 숙성 말고, 보관으로 해서 익지 않는 기능으로 해두면 을마나 시원하게요. "아아 여름엔 김치를 안 담그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엄마한테 등짝 맞을 덜 익은 소리를 내면, 엄마는 여봐란듯이 더 다양하고 많은 김치를 보내는 것이었다.


"진아, 이번 김치 맛있지? 깊고 시원한 맛이 나지?"

"아니. 맥주가 시원하지. 엄마 김치는 엄마 생각나서 마냥 따뜻해요."



어김없이 엄마는 김장을 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김치를 보내왔다. '어김없이' 어김없이 전해오는 엄마 루틴이 애틋함과 동시에 그 노곤함을 조금은 내려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김 있음'도 괜찮다고. 매년 약속한 듯 비밀스레 이루어지는 김장 작전을 어겨보라고.

엄마는 딸인 나도, 며느리도, 김장에 부르지 않는다. 이전에는 동네 엄마 지인분들 불러서 다 같이 둘러앉아 하하호호 자식 이야기를 간식 삼아 김장을 했고,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아빠와 엄마, 부옥이 아줌마(엄마 지인), 그리고 남동생을 불러서 김장을 했다고 한다. 힘쓰는 일은 남동생에게 시키고 아빠는 심부름 담당이다. 며느리와 딸은 일절 부르지 않는다. 이번에는 옆에서 거들며 김장을 배우고 싶었는데, 엄마는 다음에 시국이 좀 괜찮아지면, 애들이 조금 더 크면, 엄마가 좀 더 늙으면, 이라는 조건을 내건다.

아직은 당신이 해 줄 수 있으니 해주고 싶다는 엄마의 뜻에 못 이기는 척 받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제법 컸노라며 테니스 초보티를 팍팍 내며 날아오는 공을 호기롭게 받아치지만, 이내 놓쳐버린 공들 사이로 가쁜 숨을 몰아세운다. 아직 한참을 멀었다. 조바심 내지 않고 차분히 사랑의 간극을 좁혀나가기로 한다.

사랑에도 실력 차이가 있다. (엄마의 사랑은 어나더 레벨.)



엄마가 빚으신 도자기 그릇에 담은 엄마표 김치. 내가 떠서 보내드린 모자와 목도리. (색감이 이쁘다고 좋아하셨다.)




백종원 유튜브에 올라온 무생채를 보고, 생애 처음으로 무생채와 깍두기에 도전하던 날이었다. 냉동실을 들여다보니 엄마가 보내준 고춧가루가 간당간당하다. 고춧가루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고춧가루가 이렇게 비싸다니. 머뭇거리다 , 필요한 양만 소심하게 집어 든다. (그러곤, 내 새끼들 먹일 간식은 제일 좋은 걸로 머뭇거림이 없...)

"엄마! 나 오늘 마트 갔다 왔는데 고춧가루 가격이 원래 이래요? 너무 비싸 깜짝 놀랐어요. 게다가 맛도 없어. 살짝 쓴맛도 났어요"

"아휴! 그럼 고춧가루 가격이 얼만 줄 알았냐? 비싼 거 아니야. 원래 그렇게 해. 마트 파는 거 맛없을 건데, 사지 마. 엄마가 좋은 걸로 구해서 보내줄게."


당연한 듯 썼다. 몰랐다. 밑바닥이 보일 때쯤이면 엄마가 와서 채워주던 고춧가루의 값어치를. 유리병에 담긴 꼬숩은 참기름과 들기름을. 된장과 고추장의 진하고 깊은 맛을.




카레 할 때 쓰는 커다란 스텐냄비가 맘에 쏙 들었다. 브랜드는 '휘슬러'네. 크기별로 몇개 더 사려고 검색하다 멈칫한다. 뭐가 이렇게 비싸?

엄마가 사준 휘슬러 냄비들은 수육 할 때도, 카레 할 때도, 국을 오래 푹 끓일 때도 언제나 유용했다.

엄마가 사준 그릇과 수저, 보온병, 그리고 엄마가 손수 만들어 구워준 도자기 그릇들도 하나같이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한다. 으레 그러려니 했건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할 만큼 좋은 것들이었다. 엄마에게 받은 것들로 삶이 채워지고 빛을 밝히며, 그 빛을 따라 걸어왔더니 어느새 여기다. 혼자 걸어온 알았는데 엄마는 주위를 밝혀주고 있었다. 걸을 때는 모른다. 한참을 걷고 난 뒤, 뒤돌아보며 그제야 알게 되는 삶의 궤적은 조금 염치가 없다.




엄마에게 택배를 받는다. 호박고구마 한 박스. "엄마 친구 농장에 가서 직접 캔 거라, 흙이 많이 묻어있는데 좋은 것들로 만 골라 담았으니까 잘 보관하고 튀김도 하고 삶고 굽고 부지런히 해묵어."

며칠 지나 다시 멸치 한 박스 "남해에 아빠 친구가 직접 부쳐준 거라. 그거 최상급이니까는 지퍼락에 소분해서 냉동실에 챙겨 넣고 부지런히 해묵어." 다시 모과청, 쨈, 김부각, 고추장아찌, 키위청, 생강청. "진아, 아이스박스에 최대한 넣었는데도 몇 개는 못 넣었어. 받으면 바로 냉장고 넣고, 청 타서 자주 마셔. 김부각은 냉동실 넣고 조금씩 꺼내서 살짝 튀겨먹고, 키위청은 불고기 절일 때 쓰라고 보낸 거야."


그야말로 부지런히 우체국을 들락날락 거리며 무언가를 계속 보내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위험한데 돌아다니지 마요. 우체국도 그만. 엄마 아빠 잘 챙겨 먹어요." 기껏해야 하트 이모티콘으로 마음의 언저리를 띄운다. 그러고 보니 당연스레 받기만 했던 엄마의 마음. 어제도 주고 오늘도 줬으면서 내일은 뭐 줄까, 그 계획만 세우고 있는 것 같다. 엄마의 마음이 자꾸만 내 마음을 툭툭 쳐댄다.


똑똑 노크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고, 바람결에 덜컹이는 마음들. 알아. 알겠다고. 더 잘할게.



온전한 사랑.

크고 동그란 마음을 빚어서 너에게 줄게.

진부하지만 엄마의 사랑만큼 깊은 이야기는 없다.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엄마의 꿈을 듣고서야 엄마가 자신에게 해 준 모든 것이 희생이었음을 깨닫는다. 정아는 언제나 엄마에게 요구하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오늘의 엄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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