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아르바이트의 함정

노동의 가치

by 예담


완성된 글을 앞에 두고 머뭇거렸다. 함정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다른 말이 없을까 해서. 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함정에 빠졌었으니까.


대학생이 하는 아르바이트를 생각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과외이다. 과외를 하고 받은 첫 아르바이트비는 생각보다 더 달달했다.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많은 시간을 뺏지 않고, 나름 아늑한 곳에서 지식을 나눠준다는 느낌은 꽤 괜찮았다. 갓 입학한 대학생에게는 수능 공부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으므로 크게 수업 준비라 할 것도 없었다. 날것의 펄떡 뛰는 생생함과 다듬어지지 못한 서투름이 뒤섞여 희한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과외의 간편한 수익을 맛본 어느 날 문득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한 아이를 도맡아 성적에 책임을 지어야 함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방학을 이용한 학원강사 아르바이트는 수입이 좋았다. 친구들이 하는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시간 대비 페이도 높은 데다 나름의 뿌듯함도 덤인 것이었다. 게다가 주니어 영어를 가르쳤기 때문에 시험대비 보충수업도 없었다. 주니어 영어수업은 교재도 흥미로운 데다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즐거웠다. '아, 나는 어린아이들 하고 잘 맞는구나. 같이 있으면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구나.' 하는 시그널이 전해왔다. 수업을 마친 나에게 수업 중인 내가 보낸 시그널.


사실 사립대학 4년간의 등록금과 매달 받는 용돈, 원룸월세는 모두 부모님이 내어주셨으니 굳이 아르바이트도 필요없었다. 그러니 힘든일은 해 볼 엄두도 내지 않았고, 가르치는 일을 제외한 다른 아르바이트를 경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조금 다른 해석인데, 첫 단추가 가지런히 잘 맞아떨어져서 다음 단추부터는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첫 단추를 따라 꿰면 되었음이 나의 함정이었다. 처음은 조금 틀려도 되었었다. 그래야 다시 고민하고 꿰어 볼 다양한 선택지를 보고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 결핍이 있어야 했고, 노동의 힘듦과 그것을 통한 가치도 느껴봤어야 했다. 결핍과 불안이 자연스러웠을 시절에 나는 헛배만 불렀다. 헛배가 꺼지고 난 뒤에도 몰랐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다시 헛배를 채우고 유유자적했다.(물론 세월이 지나고 나니 하는 말이지. 나름의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것이다. ) 그렇게 안전한 테두리안에서 맴돌았다. 평균보다 높은 시작이면 무얼 하나, 안주하고 맴돌기만 하니 고이기 마련이었다.


청춘은 달큰했고 자주 자유에 취했다. 이제와 굳이 돌이켜보자면, 사랑이나 공부가 아닌 노동의 가치도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박함 같은 감정은 사람을 궁지로 몰지만 다른 길을 끊임없이 찾고 걷게 한다. 하지만 여유는 사람을 잡아세웠다. 지금의 편안함을 유지하면 된다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덕분에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음에 감사하고 천직이라 느꼈지만, 가끔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해 생각한다. 곱고 평탄한 삶이 아닌 부딪히고 일어나는 삶에 대하여, 그런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존경을 표한다.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대리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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