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유년이 그리워지는 여름 냄새

by 예담


방학이 다가오면 놀 생각에 들떴고, 연이어 심장이 쿵쿵거리고 침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학이 주는 설렘과 통지표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오는 양가적 감정이었다. 저학년 때는 선생님께 통지표를 받아오다가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통지표는 방학의 시작과 맞물려 우편으로 보내져 왔다. '수 우 미 양 가'와 등수로 매겨졌던 그때의 통지표. 한 학기 동안의 학교생활이 고작 한 글자와 숫자로 표현된다는 건 왠지 억울한 일이었다. 국민학교 성적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아무튼 수수수 위용을 드러내며 뽐내던 통지표에서 엄마가 찾는 건 숫자였다. 앞집 미희보다 잘했는지, 반에서 몇 등이고, 전교에선 몇 등인지 엄마의 눈은 숫자를 찾기에 바빴다. 엄마의 동공의 크기와 눈꼬리 각도를 보고 통지표의 효용가치를 판단했다. 비교적 잘했으나 비교는 언제나 싫었다.


방학 탐구생활이 끝나면 엄마는 빙수기계를 꺼냈다. 원기둥 모양의 얼음통에 큰 얼음을 얼리고, 꽝꽝 언 얼음을 꺼내어 빙수기계에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곱게 갈려진 얼음이 우수수 떨어져 소담하게 쌓였다. 우리 남매는 돌아가며 빙빙 돌리는 힘을 나누었는데 딱 그럴 때만 다정했던 것 같다. 하하. 엄마가 꺼내 준 예쁜 유리그릇에 쌓인 눈처럼 고운 얼음을 담고 흰 우유를 따랐다. 엄마가 정성스레 삶은 팥을 취향에 맞게 몇 스푼씩 올리고 (팥이 싫었지만 등짝을 맞기 싫어서 최대한 스푼에 작게 퍼서 눈치껏 조금 담았음.) 엄마가 미제 가게에서 사다 놓은 젤리와 시럽을 뿌리고 (이것이 하이라이트!) 기분이 최고치에 이르러서 한 스푼 입에 넣곤 그야말로 세상의 행복을 다 가졌던 기억이 난다.


여름방학은 빙수와 함께 왔다. 여우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듯 얼음이 얼리기를 기다리며 꽝꽝 얼은 얼음을 꺼낼 때면 이미 입속은 달콤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령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즐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될 거란 말이지. "

"보통의 날들과는 다른 하루를, 보통의 시간들과는 다른 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거야."


함께 웃던 순간들, 매미소리와 함께 기억되는 충만한 행복감, 맛은 모르겠지만 그때의 기분과 마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방학의 중간 즈음엔 정해진 코스처럼 친척집 투어를 했다. 외할머니댁부터 시작해서 시골의 친할머니 댁, 이모집, 외숙모 집, 큰엄마 집을 뱅뱅 돌며 눈떠서부터 해질녘까지 밖에서 사촌들과 놀고 또 놀았다. 남해 미조면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던 친할머니 댁에 가면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모래를 덕지덕지 붙여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 할머니 집에 이르면, 기다리던 엄마가 바가지에 물을 퍼서 온몸에 부으며 씻겨주던 기억이 난다. "앗 차가! 앗 차가" 하며 마당을 뛰어다니면서도 내내 낄낄거렸었다.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으셔서 담배를 피우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느낀 낯섦과 담배냄새도 우리 할머니여서 괜찮았다.


울산에 있는 이모집에 가면 장난기 만렙을 가지고 있는 사촌오빠가 있었다. 사촌오빠는 우리들의 대장이 되어 갖가지 이상하고 재미있는 놀이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소심한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던 사이에 사촌언니와 동생은 두꺼비집을 내리고 뛰어서 도망을 가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다. 집에 와서는 이모 몰래 두꺼운 줄이 뱅뱅 돌아간 그 시절의 커다란 집 전화기에 모여 앉아서 키득키득 대며 장난전화를 해댔다.


"여보세요, 거기 주전자 씨 댁이죠? "

"아닙니다."

"아줌마 집엔 주전자도 없어요?"

뚜뚜뚜...


후다닥 끊고 나서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장난전화의 대본을 짜느라 나름 진지했던 우리는 이모가 찬거리를 사러 슈퍼를 가기만을 기다렸다. 놀이터에 가는 길에 놓여있던 요구르트 아줌마의 카트에서 요구르트를 하나 꺼내서 달아나는 사촌오빠를 말리다 쥐어박히기도 하고, 콧물 질질 흘리며 집에 가고 싶다고 혼자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깨끗이 씻고 저녁을 먹고 난 밤에는 한 방에 모여서 배추도사 무도사 역할놀이를 했다.


"실례 실례~하압니이다아"

"실례실례하세요오오오~~~ ."

"쏙 쏘옥~~ 들여다보는 부채도사 집이 맞나요오오? "


당시에 유행했던 티브이 프로그램을 흉내 내며, 몸짓과 목소리에 한껏 흥을 불어넣은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언젠가 마흔이 넘은 사촌오빠에게 유치원 때부터 국민학교 때까지 위험하고 이상하며 재미있는 놀이는 오빠한테 다 배웠었다고, 심지어 중고등학생 때도 원카드와 고스톱도 오빠한테 배웠었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촌오빠는 멋쩍게 웃었다. 우리들의 아이들이 그 시절의 우리만큼 자란 지금, 그 사촌오빠가 자신의 아들에게 "사이좋게 다 같이 놀아. 모두 친척동생들이고 가족이야."라고 말하던 모습에 뭔가 뭉클해졌던 기억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여름방학이 되면 우리 가족은 친하게 지내는 아파트 사람들과 텐트를 들고 계곡으로 떠났다. 여섯일곱 집 정도 함께 떠난 여행, 밀양 얼음골도 가고 지리산도 갔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이 캠핑이었네! 요즘처럼 캠핑장비가 풍족한 시대가 아니었음에도 부족할 게 없었다. 오로지 텐트와 먹을 것만 잔뜩 사들고 떠난 여름 여행. 그때의 아파트 아줌마 아저씨들과 아직도 계를 하고 있는 우리 엄마 아빠, 옛날 사람들의 정이란 그렇게나 깊고 길다.


계곡 근처에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실컷 하곤 젖은 옷으로 매미를 잡으러, 송사리를 잡으러, 자연을 벗 삼아 여름을 즐겼다. 더위와 벌레도 우릴 막을 수는 없었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용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나의 뒤에 엄마 아빠가 있다는 든든함 하나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며 개울을 건넜을 테다. 나를 잡아줄 사람,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도전 앞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소소한 일들도 품을 들이면 귀해지고, 작은 기쁨이 주는 행복이란 때론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 기운으로 더 많은 것을 하고 서로 나눌 수 있음을 우린 안다.


두 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쉽사리 어디에 갈 수 없는 지금, 이 시간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무얼 하면 좋을까?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중 -



꽃은 꽃만으로 아름다워서 열매가 되기 위해 피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랑스러운 꽃의 꽃술이 이윽고 부풀어 올라 열매가 된다면 꿈처럼 맛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매실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슴속에 확실히 생겨난 순간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최고의 것을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얻었다는 점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힘을 빼도 된다. 가장 좋았던 시절의 눈이나 귀나 코나 혀를 써서 알아낸 것을 똑같이 재현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걸로 좋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 잃은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해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것은 멋지다. 그러나 성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다다를까. 소중히 여기는 것을 풍성하게 길러나갈 수 있으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분명 퇴화하는 부분도 필요할 것이다. 매일 요리에 쓰는 육수가 최고의 육수만은 아니듯, 다양한 것을 품고 섞고 받아들여서 깊은 맛이 나는 육수가 된다면 아마도 그걸로 괜찮으리라.


기억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맛을 발견할 수 있다면 행복할 테고, 그 맛을 찾기까지의 길 또한 즐겁다. 그 맛을 좋아했지, 하며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다가 여기에 해마다 조금씩 개량한 맛을 겹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 가족의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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