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홍보다. 홍보가 필요 없는 직업이 있을까?
연예인, 가수, 영화배우, 제작자, 사업가,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대통령,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학문을 연구하는 직업은 다르겠거니 하면 오산이다. 작가도 홍보가 절실하고, 연구원도 연구에 대한 성과를 기고하는 등의 간접 홍보가 필요하다. 인정과 지지가 수요의 기본이기에 홍보를 하며 다수의 관심을 끌어당기려 경쟁한다. 요즘에는 셀프 홍보의 시대인지라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출연하는 일반인들의 연애 프로그램도 인기이다. 용기 내어 자신을 내비쳤음에도 선의가 상황에 따라 변질되어 나타나기도 한다지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는 타인의 구구절절한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다. 다만 내가 느낀 공감이 계획된 홍보는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요즘 같은 선거철이 되면 거리는 홍보로 넘쳐난다. 홍보에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이 들어가고, 나중엔 검은돈이 알려져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지만 일단은 이기고 봐야 한다는 전쟁 같은 홍보는 갑옷으로 무장을 한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틈이 보인다. 사거리마다 줄지어 서서 리듬에 맞춰 번호를 흔들며 후보자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의 열정에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너 정말 순진하구나.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열정과 믿음으로 거기 서 있는 줄 알았냐? 그런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지하는 정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호든, 불호든 알려져야 지지를 얻어낼 수 있고, 설령 불호라 할지라도 모르는 것보단 제대로 아는 게 낫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질 않던가. 제대로 잘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도대체 어떤 믿음을 주었길래 저렇게까지 애타게 응원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허무하게 풀려버렸지만, 나이가 들고 알게 된 홍보의 내면은 생각보다 더 깊은 미로 같았다. 여기까지가 홍보이겠지.라고 생각하면 이미 그것보다 더 깊게 돌고 돌아가 있는 것이었다. 마치 공휴일의 맛집 줄처럼.
집값을 올리기 위해 대동 단결하여 단점을 쉬쉬하고 장점을 부각하여 아파트 이미지 상승에 골몰하는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입주민 단톡방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입주민이 건설사의 시공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며 언론사에 흘렸다가 뭇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옳은 말이 아닌, 돈이 되는 말을 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살고자 하는 마음보단 잘 팔고자 하는 마음이 큰 게지.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집값이 비싼 아파트의 속내는 텁텁하고 생각의 환기가 원활히 되질 않는다. )
인스타의 대중화로 인해 sns를 이용해서 뜬구름 같은 상품들을 엮어 파는 인플루언서가 늘어나고 있다. 홍보가 관건이다 보니 연예인들이 주로 하고 있었으나 요즘은 팔로워 수를 늘린 다수가 상품을 팔거나, 어떤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헉 소리가 나오게 정갈하고 세련된 집 사진을 넋 놓고 보고 있다가 미니멀리즘을 앞세운 정리용품과 친환경세제, 예쁜 그릇들을 판매하는 페이지를 마주했을 때의 그 떨떠름함이란.
유명한 영재들의 sns에서 판매되는 전집 판매글이나, 책상, 문제집 공구 페이지를 마주할 때의 실소란.
(하루 종일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지켜보지 않을 뿐,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빛나는 시간이 있다. 인플루언서의 아이의 정갈한 책상이 아닌 나의 아이의 흐트러진 책상을 사용하기 편하게 정리법을 알려주고, 영재가 읽는다는 전집을 공구하는 대신 읽고 싶은 책을 학교도서관에서 매주 3권씩 빌려와 읽는 습관을 키운다.)
하지만 열정과 시간을 아낌없이 기울여 이루어 낸 결과물을 홍보하는 이들은 가히 존경스럽다.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고 성과를 발표하는 이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상상도 못 할 시간과 정성을 쏟고 애정 어린 홍보를 하는 이들, 많은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결국은 이겨내었던 올림픽 선수들의 웃는 모습이 담긴 광고들, 매작품마다 감탄할 연기를 보여주고 홍보에도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 한 그릇에 진심을 담아내는 요리사들, 달고도 고통스러운 글쓰기의 과정을 완주하여 출간을 앞두고 홍보를 시작한 작가들,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외롭고 고되었던 자신의 일에 묵묵히 발걸음을 내어 세상의 길을 만들어 준, 모든 이들의 노력은 존경할만한 가치가 있다.
출산을 하고 육아에 돌입한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이 비슷한 육아용품과 손쉽게 먹일 수 있는 먹거리들을 sns에 수놓고 있는 이유는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유대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꼭 필요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면 순기능일 것이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뜬구름 같은 제품에 홀려 사게 된다면 소비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개인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한 세상이다. 자신이 바로 서있다면 흔들릴지언정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회사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은 센스도 남달라야 하지만 성격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막힘없는 사람이 홍보에도 한결 자연스러울 테니까. 회사를 다닐 때엔 타인의 마음이었다. 홍보부가 아니었지만 일을 하다 보면 어떤 프로젝트엔 조금씩의 홍보가 필요하기도 했다. 신입사원이었을 때 수박의 겉이나 핥고 있다가 수박 프로젝트가 끝이 나면 자괴감이 들곤 했다. '이건 나를 위한 이득이 아니고 회사를 위한 홍보잖아!'라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홍보에 거리낌(영혼)이 없어졌다. 영혼 없이 적극적으로 임했던 일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며 학생을 모집하거나, 학부모 상담 시즌으로 바쁠 때, 학원을 위한 홍보이지 개인의 이득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면 얼굴에 철판까진 아니어도 얇은 막을 둘러줬다. 학원이나 본사에 소속되어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면 모순에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예컨대 내가 홍보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최고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때가 그러했다. 더 나은 프로그램과 교재가 있다는 걸 알지만, 지금 내가 속해있고 홍보해야 하는 교재와 프로그램을 알려야 할 때 가끔은 입을 닫고 싶어졌다. 학부모의 신뢰에 찬 눈빛과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 죄책감마저 들 때가 있었다. 홍보가 괴로웠던 순간들이다.
소속되어 있는 입장에서 벗어나 내가 주체가 되었을 때 나는 정말로 모든 것이 순조로울 줄만 알았다. '열정을 다해 최선을 최고로 만들어내야지. 하나를 위해 열 번 연구해야지. 적어도 마음에 닿지 않는 학습법을 홍보하지 않아도 되잖아.' 하지만 교육청에 등록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부는 바람이 순간 서늘했다. 뭔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불현듯 느껴졌고 그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가진 어른의 마음 같았다. 멀리서 볼 땐 가벼워 보였던 자유의 무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현수막을 걸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현수막을 걸면 문의전화가 밀려들고 학생이 차례차례 들어오리라 하는 기대는 사람을 안일하게 만들었다. 전단지를 제작하여 업체에 맡겼다. 문의전화와 함께 항의 전화가 왔다. 우리 집 우편함에 광고지 넣지 말라는 호통이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광고지를 수거하러 다녀오는 길, 엉거주춤 서 있다가 어깨를 쭉 펴고 정면으로 앞을 바라본 느낌이 들었다.
쭈뼛쭈뼛하지 않는 태도, 여유 있는 표정,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이내 물렁해지고야 말았다. 나에게 홍보는 그만큼의 정신노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며 탄력이 생겨갔다. 홍보를 하는 입장이 아닌 받는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완 상관없는, 전혀 필요가 없는 광고지를 받게 되면 나 또한 언짢을 것 같다. 필요한 사람은 알아서 정보를 찾고 빠르게 행동한다. 필요한 사람이 찾기 쉬운 곳에 정보를 두면 된다. 무조건 '좋아요.' '우리껀 다 좋아요.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할게요.' 같은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은 말들과 차갑도록 명확한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는 접어놓기로 했다.
우리가 어떤 제품의 상세페이지보단 리뷰를 살펴보는 이유, 학원을 보낼 때 커리큘럼에 앞서 직접 보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홍보를 떠나서 생각해보면 부모들이 일상에서 가장 궁금해하고, 알면서도 잡히지 않는 무엇 때문에 멘털이 흔들리고야 마는 육아와 교육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했다. 다 알법한 만고의 진리들이 아닌 내 아이를 키우며 겪은 나의 이야기, 극복 방안, 그리고 실패에 대하여 썼다. 블로그와 입주민 카페에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보석 같은 문장들을 캐면 공유하는 글도 썼다. 첫 글은 소심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쓰면 쓸수록 탄력이 붙었다. 좋은 글 감사하다는 이웃들의 댓글이 달리면 더욱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담으려 기쁜 마음으로 애쓰게 되었다. 감사하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아! 지금인가? 글을 쓰고 하단에 [입회문의: 전화번호]만 달면 끝이다.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이내 지우고야 말았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던 이들에게 '사실은 말이에요. 홍보를 위한 밑 작업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안될 건 없지만 내키지가 않았다.
상담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입주민 카페에서 글을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한다. 뭐지? 전화번호를 올리지 않았는데? 카페의 특성상, 닉네임이 동호수로 표시되었고, 아파트에 새로운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닉네임이 표시되어 있는 작은 사진을 공부방 사진으로 바꾸었다. 이 정도면 필요가 있는 사람은 찾아올 것이고, 관심 없는 이들은 부담 없이 스쳐갈 테니, 적당하다 싶었다.
그렇게 나의 첫 클래스에 동네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교재부터 커리큘럼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기에 준비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지만 밤을 새워도 신이 났었고, 잠을 못 자도 에너지가 넘쳤다. 계속해서 글을 썼고 전화번호를 적는 것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진심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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